재진아, 그거 느낄 수 있었니?

2004년 4월 17일/ 24일

by 서재진

내가 그 경우가 되어보니까 알겠어 [4월 17일]


어제 새벽 2시가 훌쩍 넘어 집에 들어갔다. 정확히 말하면 오늘이 되겠지. 오늘 새벽에 집에 들어가서 씻고 뭐 하고 3시가 다 되어서 잠이 들었다. 오전 10시가 족히 넘어서 겨우 일어난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어제 사온 시리얼이랑 Vitamin A & D 우유를 말아서 먹고, 식빵을 꺼내 토스트기에 구워서 새로 산 새로운 맛의 크림치즈를 발라 먹었다. 헤이즐럿 커피도 메이플 시럽을 푹~ 적셔서 먹고. 꿀차냐? 커피냐? 왜 이리 달달하냐?


샤워하고, 화장하고,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 조금 하다가 회색 모자티에 청바지 입고 나왔는데 게다가 두 손에 파카 잠바를 들고 왔는데 너무~ 더운 거라~! 그래서, 파카잠바는 다시 집 거실 의자에 걸쳐놓고 학교까지 beebe lake를 따라서 걸어 나왔다. 한마디로 너무 좋다. 날씨도 좋고, 따가운 햇살 아지랑이도 좋다. 햇살의 눈부심도 좋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의 햇살이 내게도 비춘다는 사실이 정말이지 너무 좋다.


학교에 와서 멜을 확인하고, 인터넷을 좀 하다가 유진이랑 전화통화를 했다. 그러고 나서 2주 정도 나가지 못했던 청년부 모임 오늘 나가서 찬양인도하고 기도모임까지 참석해야겠다는 결심이 새롭게 굳혀졌다. 잠시, 교수님 방 문이 열려있길래 찾아가서 minor 교수님 일정 말씀드리고, 선생님 hand writing 알아볼 수 없는 것들 여쭤보고 2층 올라가서 떡국을 끓여 먹었다.


냉커피 한잔 타서 디저트로 과자 하나랑 같이 결들여 마신 뒤 말씀묵상을 하고, 청년부 찬양인도할 것 준비하러 교회에 갔다. 은혜가운데 찬양하고, 조별 모임하고, 중보기도 모임까지 다 참석했다. 그리고, 쓴소리도 한마디 했다. 중보기도 모임을 했으면, 그걸로 끝내야지, 오른손이 한 기도 왼손이 모르도록 해야지, 전체가 기도하고 있으니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돼 가냐는 등의 영적으로 교만한 말은 중보기도를 받고 있는 그렇지 않아도 힘든 지체한테, 더더군다나 그 사람이 작은 그룹에 속한 사람이라면 절대 입뻥끗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여 말했다. 내가 그 경우가 되어보니까 알겠어. 나를 위해 중보기도를 해준다는 그 말 자체도 너무 받아들이기 힘들어. 내가 그럴 정도까지 영적으로 다운되어서 다른 이들이 모두 내 이름을 놓고 기도를 해줘야 할 만큼 내 상황이 처절하구나라는 사실을 난 정말이지 받아들이기 힘들더라고. 모임 뒤에 천천히 걸어서 내 오피스에 왔다. 늦은 밤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 차 안 얻어 타고 내 발로 걸으니까 속이 다 시원하다. 고집쟁이. 고집불통 서재진.


오피스에 짐 내려놓고 유진이랑 장시간 서서 전화통화했다. 서로를 위로하고, 은혜 나누고 귀한 나눔의 시간이었다. 일기 쓰려고 왔다가, 인터넷 이리저리 둘러보고, 딴청 피우고, 잠시 일기 쓰기 싫어서 멍하니 있다가 나를 십자가에 매다는 심정으로 나를 죽여가며 일기를 쓴다.


지금 다 썼다~! 새벽 1시가 또 넘어간다. 집에 들어가야겠다.


재진아, 그거 느낄 수 있었니? [4월 24일]


오늘은 하루를 어떻게 살았다고 일기에 기록해야 하나. 오늘 하루 이렇게 살았습니다~ 하고 정직하게 고백해야 할 순간에 여지없이 도망가고 싶다. 뭐 켕기는 일이 있나 봐?


어제 새벽 2시가 넘어서 집에 걸어가는데 점 무섭더라. 예전에도 이길로 집까지 많이 걸어갔었는데, 요새 나 무서움을 슬슬 탄다. 왜 그러지? 소녀처럼! 저렇게 새까맣게 코넬 경찰차가 나를 위해 캠퍼스 곳곳에 깔려있는데 말이야~ 대로로만 다니면 되는 거야. 으슥한 숲이다 싶은 곳은 절대 눈길도 줘선 안돼! 그럼 그럼 그렇고 말고.


집에 도착하니 2시 반, 씻고 쓰러진 시각은 새벽 3시. 뒤척이다가 잠든 시간은 3시 30분으로 기억된다. 자기 전에 시계를 계속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 잘 알지~ 언제까지 뒤척이나 함 해보자고~ 하면서 내가 시계를 노려보고, 야려보고 그랬다는 거 아녀~ 하하~ 근데, 이게 웃을 일인가? 새벽 4시 50분에 알람이 울렸다. 끄고, 누웠다가, 다시 울리는 알람을 붙들고 누웠다가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웠다.


''기도해야 해. 다음 주 금요일 디펜스 날짜 기적적으로 잡은 거 주님 전에 달려 나가 감사기도 해야 해.''


아침요기를 하고, 커피 한잔을 타서 내 방에 가져왔다. 씻고 몇 모금 마신 뒤에 교회로 달렸다. 몸은 무척 피곤한데 새벽공기를 휘저으며 내달리는 내 두 다리엔 설명할 수 없는 커다란 힘에 이끌려 굴러가는 자동바퀴가 달린 듯하다. 신들린 듯이 그냥 그렇게 막 달려지더라. 예배당에 도착하니 교회에서 평소에도 나를 참 친딸처럼 아껴주셨던 성도님 한분께서 재진아~ 하고 부르신다. 나는 오늘 목사님께서 출타 중이셔서 공식적인 새벽예배가 없는 줄도 모르고 예전에 그렇게 해왔던 것처럼 예배당에 들어서자마자, 내 지정자리인 맨 앞 두 번째 줄 의자에 짐을 내려놓고, 앞이 안보이시는 목사님 위해 오시자마자 새벽설교 하실 수 있도록 설교 단상을 가운데로 옮겨서 다시 배치해 놨는데.


코넬한인교회게시판에 올린 내 글 ‘맹꽁이 유학생’을 읽으셨단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우리 집에 중고 TV 하나 있는데 그거 가져가~ 하시는 거다. 그 글의 포인트는 그것이 아녔지만 암튼, 감사한 말씀이다. 다 나 사랑해 주시고, 염려해 주셔서 하시는 말씀이니까. 이타카에서 머무는 것도 다음 주가 마지막이고, 다다음주 화요일엔 비로소 한국 들어간다고. 2000년도에 나와서 고집 피우며 한 번도 안 들어가다가 드디어 4년 만에 한국 들어간다고 말씀드렸다. 비자도 그렇고 여러 가지 일이 걸려서 별로 가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한국 들어가게 되었다고 말씀드렸더니, 그 사실 모르셨었나 보다. 다소 놀라시는 눈치다. 얘기를 마치고 나는 예전에 하던 대로 피아노 앞에 앉아 새벽예배 시작 전 찬양 몇 곡을 치는데, 오늘따라 ‘거룩하신 하나님’, ‘주님을 송축하리’, ‘주를 찬양하며’, 등등... 정말 찬양하고픈 마음이 가득 담긴 곡들만 우연히 치게 되었다. 우연이 아니겠지. 하나님께서 듣고 싶은 곡들을 우연을 가장해 내손으로 고르게 하신 거겠지.


갑자기, 내 찬양반주에 맞춰서 기도하시던 한분이 울음을 터뜨리셨다. 그냥, 내가 느끼기에는 방금 전 내 얘기를 듣고 다소 놀래시던 성도님께서 울면서 나 축복기도해 주시는 것 같았다. 그냥 그렇게 feel 이 팍~ 내 안에 꽂히면서 나도 눈물 콧물이 와락 나왔다.


은혜의 눈물은 이내 예배당 곳곳에서 기도하시던 성도님 한 분 한 분께로 전염이 되어서 새벽예배를 인도하시는 목사님 없이도 정말 뜨거운 은혜의 새벽기도로 이어졌다. 찬양하던 것을 멈추고 나는 내 고정석으로 돌아가 기도하는데 또 그렇게 눈물이 나네. 우두둑 우두둑 우박 떨어지듯이 솟구치는 눈물로 나를 주체하기 힘들었다.


우여곡절이 참 많았어도, 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유학생활을 두 단어로 요약하면 "은혜"요 "사랑"이었다.


하나님께서 내게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내가 너를 사랑했기에, 은혜로 이곳에 불렀고, 그래서, 네 이름도 은혜 Grace 라 새로 지어주었다. 단조로울 것 같아, 네게는 힘들겠지만, 나름대로 굴곡도 넣어주었고, 기쁨도 주었고, 주변의 넘치도록 풍성한 사랑도 네게 쏟아부어주었다.


재진아, 그거 느낄 수 있었니?


하시는 그분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그래서, 더 목놓아 울었다. 오늘은 속상하고, 원망과 한없는 자기 연민으로 가득 찬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그냥 이 모든 게 너무 감사하고 은혜로워서 그 자체로 내 안에서 흘러넘치는 눈물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를 새벽에 흔들어 깨우셨구나. 이 말씀을 내게 하고 싶으셔서 고단한 나를 새벽에 일으켜 세우시고 주님 전에 달려 나오게 하셨구나... 잠시 묵상기도하며, 그분의 은혜와 사랑을 느낀 것 같은데 시계는 벌써 7시를 가리킨다. 예배당을 나와 화장실에 들어가 대충 울어서 콧물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닦고 걸어도 걸어도 좋기만 한 캠퍼스를 가로질러, beebe lake로 일부러 돌아서 집까지 걸어왔다.


새벽예배 때 많이 울고 난 날은 무척 피곤하고 졸리다. 집에 돌아와 이불 위로 쓰러져 잠을 좀 더 청한 뒤 일어나, 샤워하고, 학교까지 역시, beebe lake를 따라 걸어 나왔다. 멜을 확인하고, 교수님 방에 들르니 안 계시다. 그래서, 2층 라운지에 가서 냉동밥 해동하고, 북엇국 끓여서, 돌김이랑, 오징어무침이랑 같이 잘 먹고 다시 교수님 방에 가니, 이제야 계시네. 앞으로, 이건 이렇게 수정하고, 저건 저렇게 하거라~ 하셔서 넵! 하고 나왔다. Mann 도서관에 가서 최근 논문들 format을 대충 한번 훑어보고, 오피스로 돌아오니, 하는 일없이 벌써 피곤하다.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냉커피를 한잔 타서 마시니까 좀 낫다.


말씀묵상을 하고, 청년부 찬양인도 준비를 하기 위해 교회에 일찍 갔다. 교회사무실 열쇠를 누가 가져가서 반환을 안 했단다. 그래서 나는 먼저 1층 founder''s room에 가서 피아노로 찬양곡들을 미리 연습하고, 덕재는 부목사님께서 여분의 열쇠를 갖고 교회 사무실로 오시면 기다렸다가 받으라고 시켰다. 극적으로 사무실 열쇠를 얻어 찬양할 곡들 transparency와 복사를 마쳤으나, 연습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오늘은 하나님께 제 열손가락을 맡기겠습니다~ 하면서 정말 기도로 청년부 찬양을 인도했다. 이럴 땐 정말이지 하나님께 죄송하고, 청년부 형제자매들한테는 미안하다. 더 준비했어야 했어... 하면서.


소그룹모임 마치고, 전체 기도모임이 있었는데, 유진이가 아파하는 것 같아 전체기도 모임을 가지 아니하고 유진이를 따라나섰다. 그 아이 눈가에 비친 이슬을 내가 훔쳐봤기 때문이다. 다리가 아픈 유진이를 위해 캐리언니가 나랑 유진이를 유진이 집까지 데려다줬다. 요즘, 유진이랑 나눔을 자주 하면서 하나님께 참 감사드린다. 내, 구닥다리 같은 푸념 다 들어주는 푸근한 친구 같은 동생이 있다는 사실에 정말 솔직히 감사드린다. 유진이도 자신의 힘든 일을 스스럼없이 나누면서 우린 서로를 위로하고 감싸고 중보기도한다. 이런 사람이 내 주위에 한 사람이라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축복인 것 같다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유진이 너를 코넬에서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린다고 유진이한테 그랬더니, 언니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헤어지는 것 같아... 하면서 약간 말끝을 흐린다.


유진이 집을 나와, tops express에 들려 자몽과 사과, 그리고, 다음 주 먹을 시리얼을 사들고 오피스에 왔다. 과일은 2층 라운지 냉장고에 넣고, 시리얼은 이따가 집에 갈 때 들고 가려고 한다. 그전에 짬을 내서 일기 쓴다. 내일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밤을 새워야 할 것 같은데, 활기차고 은혜로운 주일을 위해서 이 정도로 오늘 하루를 접어야 할 듯싶다. 지금 벌써 주일이다. 새벽 1:25분이니까...


집에 빨리 들어가야 쓰겠다. 아, 그리고 지금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 지금 이 순간 무지하게 행복하다. 진짜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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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마다 달려 나가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나를 품어줬던 고마운 Anabel Taylor Hall at Corn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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