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타기

2002년 7월 21일

by 서재진

이번 여름 코스타에 가겠다고 마음먹고 4월에 이미 등록을 마쳤다. 그런데, 막상 그곳까지 가려고 보니 어떻게 가야 할지 막막했다. 우선 비행기부터 알아보니 시골동네 이타카에서는 별로 비행기가 많지 않아 비행기 삯이 587 불이었고, 그나마 시라큐스에서 떠나는 건 190 불 가량이었다. 시라큐스행을 끊는다 해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이타카에서 시라큐스까지는 자동차로 운전해서 1시간 반이 족히 넘게 걸리는 데 누구에게 ride를 부탁할 것인가?


학기 중에는 학교 기숙사에서 별 불편함 없이 살다가 이렇게 어디를 갈라치면 내 발이 묶이고 또 다른 분들께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고... 미국에서 차 없이 혼자 사는 삶이 다 이렇지 뭐 하다가도 이내 초라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이를 어쩔까.. 수중에 돈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TA 하면서 부모님께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어렵게 모은 돈이 한꺼번에 휙 하고 나가는 것 같아서 맘이 좀 편치 않았다. 우선 교회 교육부장님께 차편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고 나서 안되면 다른 방도를 모색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주일에 유아반 아이들과 재미있게 성경공부, 찬양과 율동을 하고 아이들을 부모님께 데려다주고 다시 짐을 챙기러 3층으로 올라가려 하는데, 여선교회 회장님이신 소연 언니께서 나를 부르셨다. 터프한 목소리로 “이리 와봐, 우리 차 한자리 비는데 괜찮으면 같이 갈까? 그 대신 우리는 Ohio Cleveland에 있는 Six Flags Water Park에서 한 2 ~ 3 일 놀다 갈 건데, 괜찮겠어? ” Water park이니 Six Flags 가 뭔지 감도 잡히지 않았지만, 어쨌건 차편을 구했다는 안도감에 서슴없이 “네~!”라고 대답을 하고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2 ~ 3 일찍 출발한다면 월드컵 기간에도 그렇게 난리를 치며 안 빠지고 들었던 청강과목 유기화학 수업도 빠져야 하고 좀 내가 계획했던 것과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아니겠는가 싶어, 넙쭉 유기화학 선생님께 찾아가서 4월부터 등록하고 계획한 시카고로 여행을 가게 되어서 금요일부터 한 일주일간 수업을 못 들을 것이며, 또 선생님께서 배려해 주셔서 청강이긴 하지만 안 빠지고 치렀던 시험 중의 대단원인 기말고사를 못 보게 될 것 같다고 너무나도 당당히 말씀드렸다. 그리고, 선생님과 TA(Teaching assistant 강의 조교)만 괜찮으시다면, 기말고사는 시카고를 갔다 온 다음 주 TA Office Hour에 Make-Up Exam 형식으로 보고 싶다고 제안까지 드렸다. 참, 감사하게도 Have Fun~! (잘 놀다 와~)라고 답해주시며 선생님께서 흔쾌히 허락하셨다.


일주일간 시카고 간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냈다. 이메일 리스트에 있는 분들께 물어보지도 않으셨는데 시카고에 가기 때문에 일주일간 멜 답장 못 드린다고 전체 멜을 돌렸다. 물론, 교회 게시판에는 유아반 아이들이 벌써부터 눈에 밟힌다는 인사말과 청년부 게시판에는 왕언니가 이타카를 떠나니 그동안 이타카 시내 뒷정리를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면서 그렇게 요란을 떨면서 금요일 아침 이타카를 출발했다. 한 10시간가량 차로 갔을까? 드디어, Ohio 주에 있는 Cleveland에 도착했다. 어렵게 Six Flags에 가까운 모텔을 잡고 모텔에 딸린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며 여독을 풀었다.


이런 나들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초등학교 때 식구들하고 참 잘 놀러 다녔는데.. 아빠가 결혼 전 꿈이 아이들 다 데리고, 산으로 바다로 캠핑하는 거였단다. 그래서, 우리 식구들은 비록 외진 시골, 개발제한구역에 살고 있었지만 동해로 서해로 덕적도 섬으로 참 잘 놀러 다녔다. 그런데, 내가 중학생이 되면서 오빠들이 고등학교 그리고 연이은 4남매의 정신없는 재수 삼수로(?) 그만 우리 집은 여행을 못 가게 되었다. 이런 8일간의 긴 여행은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대학 때는 정신적인 독립을 위해서는 내가 먼저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해야 해 하면서 4 ~ 5개씩 과외하느라 MT도 한번 제대로 갔다 온 기억이 없다.


더군다나, Six Flags라는 놀이동산은 고등학교 때 학생과장님 몰래, 안양에 있는 신성고등학교 연극반과 우리 안양여고 연극반이 서울 대공원에서 단체 미팅을 하고 나서 선생님 몰래 와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야간에 서울랜드에 가서 롤러코스터를 잠깐 탔던 기억이 내겐 전부다. 그래서, 난 정말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부풀고 설레었다.


드디어, Six Flags~! 에 도착했다. 표를 끊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거의 가족동반이나 연인들이 대부분이다. 나도, 이담에 공부 마치고 미국에서 기반을 좀 닦고 나면 토끼 같은 귀여운 내 조카들 그리고 눈물이 나도록 그리운 식구들 내가 다 데리고 와야지,,, 그전에 얘인이 생기면 여기 올까? 난 괜찮은데, 그 사람이 겁이 많으면? 벌써부터 이런 생각을 하며 김칫국 마시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좋아서 입 벌리고 있는 나를 보시고 소연이 언니가 물으신다.


“자기, 이런데 처음이야?”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네, 고등학교 이후로 그런 거 같아요.”


궁금한 얼굴로 또 물으신다


“대학 때, 애인이랑 이런데 안 와봤어? 왜 대게 연애하면 이런대로 자주 놀러 오잖아?”


예상했던 질문이긴 하지만, 막상 부딪치고 보니 좀 민망했다.


“대학 때 제가 좀 바빠서...”


흐흑... 아주 쪼~끔 비참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내 곧 이를 악물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열심히 공부해야지...’


Six Flags 이틀간 자유 이용권을 끊고 정말, 원 없이 놀았다. 90도 회전인지 180도 회전인지 하는 슈퍼맨에서부터, 360 도 돌려놓고 2초간 공중에서 정지하는 아동용 보트(?)도 탔다. 정말 롤로 코스타를 타면서 너무 무서워서 막 소리를 질르고 싶었지만, 코스타에 가서 변사를 해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에 불타서 소리도 못 지르고 개미 만한 소리로, ‘어~~~ 엄~~~ 마~아~~~~ 야~~~~’라고 비명 아닌 비명을 지르며 무서움과 흥분을 감춰야 했다. 이렇게 뙤약볕에서 내리 이틀 동안 놀다 가면 얼굴도 시커멓게 타서 거의 흑인과 다를 바 없이 될 텐데, 목소리까지 고릴라 같으면 새로 만나게 되는 Kostan (코스타에 참석하시는 분들을 부르는 호칭) 조원들께 너무 죄송할 것 같아서.


그중, 제일 재미있었던 것은 외부에 설치된 Water Park의 파도타기였다. 원래, 이타카에서도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수영을 할 정도로 수영에 푹 빠져 있는 나로서는 야외에서 작열하는 태양과 더불어 파도를 탄다는 것이 그야말로 이번 여행의 High Light였다. 작은 야외 풀장에 사람들이 가득 모여있다. 튜브를 들은 사람, 나처럼 수영복 차림의 맨 몸으로 그냥 물에 뛰어든 사람, 아이를 안고 1 Ft의 얕은 물가에 발만 담그고 있는 사람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전기파도가 시작된다는 경보를 눈이 빠져라 귀가 빠져라 촉각을 곤두 세우며 기다리고 있다.


“삐이익~~~”


“와아~, Wow( English version), 어어~~ 엄~~~ 마~~ 야~~~~”


그야말로 흥분의 독가니 그 자체다.


파도를 하루 웬 종일 그것도 얼굴이 토인이 되는 줄도 모르고 타나 보니 나름대로 재미있게 파도 타는 요령이 생겼다. 우선 내 키보다 아주 낮은 곳은 아동용이니 안전하다 해도 재미가 없다. 3 Ft 도 좀 낮다. 내 키보다 조금 낮은 5 Ft(약 150 cm)보다 약간 못 미치는 곳에 터를 잡는다. 그리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튜브를 가진 사람 근처로 정하면 안전하다. 정말 내 키를 덮고도 남을 만한 파도가 올 때 주의해야 할 것은 무섭다고 눈을 감지 말고 파도가 어느 방향에서 오는지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미리 점프를 하면, 정말 파도가 올 때 내 몸은 가라앉아 있을 것이니 점프를 하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시간을 잘 맞추어서 파도가 오기 바로 직전에 어릴 적 젖 먹던 힘을 다해 물속에서 두 손을 번쩍 쳐들고 점프를 한다.


“쏴~~~ 아~~~~”


파도가 나를 가르며 지나간다. 한번 지나간 파도타기에 행복해하며 안일하게 그냥 무방비 상태로 있을 수는 없다. 곧 또 다른 파도가 오기 때문이다. 다시 이번에는 어떤 방향에서 파도가 오는지 방향을 익히고, 하나, 두울, 세엣, 속으로 세면서 언제 점프할 것인지도 속으로 계산해 두었다가 내 키만 한 파도가 내 앞에 오기 바로 직전 점프를 한다.


“철~~ 얼~~ 썩~~~”


파도가 내 얼굴을 치고, 내 몸을 때린다 해도 이것이 아픔일리 없다. 난 지금 파도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삶에 있어서 나를 아프게 치고 지나갔던 파도를 생각해 보았다. 그때마다 난, 그저 아팠어. 지금의 이 상처 그때 그렇게 인생의 험란한 파도가 내게 아프게 남기고 간 자국이지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Water Park에서 즐겼던 파도타기처럼 인생의 파도도 즐기면 어떨까? 단, 정말 내가 넘을 수 없을 것처럼 내 키를 휙 덮고도 남을 큰 파도가 오면 그 거대한 모습에 미리 놀라 눈을 감아 버릴 것이 아니라, 파도가 어디서 오는지 방향을 보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가 두 손과 고개를 힘껏 쳐들고 점프를 한다. 그러면, 파도는 내 얼굴과 몸 구석구석을 시원하게 해 주며


“쏴~~~ 아~~~”


하고 지나갈 것이다.



2002년 7월 21일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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