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없는 것 같아, 나만

찐득하게 붙어있는 기억들

by 최용석

나만 없는 것 같아, 나만


“자네는 졸업하고 뭘 하려고 하나?”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를 더 하고 싶습니다.” “계속 생활비랑 학비 벌면서, 그 고생하면서 대학원을 다니겠다고? 그냥 건설사에 가서 야간 대학원을 다니게.”


그 당시 건축공학과는 졸업 논문을 쓰지 않았다. 대신 4년간의 배움과 경험을 보여주는 졸업 설계로 가늠했고, 그간 못 해봤던 본인의 설계를 마지막으로 보란 듯이 발휘하게 했다. 설계에 진심인 친구들은 대형 작품을 설계하려고 하였고, 졸업 작품전은 100주년 기념관의 넓은 공간에서 전시되었다. 그런데 작은 미술관을 설계한다고 하니 교수님께서 의아해하신 거다. 나름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셨으니 궁금하신 것이다.


4학년 졸업 설계 첫 수업은 세 개 반 공동수업을 시작으로 진행 중이었고, 세 분의 교수님과 각각의 조교들, 재학생, 복학생, 복수 전공 등 약 백이십 명의 인원이 수업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 교수님의 목소리는 근엄하고 묵직하며, 듣기 좋은 편인데, 그날따라 좀 목소리가 컸다. 수업 참가자들 모두가 잘 듣고 있었을 것이다. 난 뒤돌아서 내 자리로 돌아갈 수 없었다.

앞문으로 나가서, 복도를 서성이다 쉬는 시간에 뒷문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왜 나의 어려운 생활고를 그 타이밍에 말씀하시는 거야? 하필이면 내가 참 좋아하는 그 교수님께서.


교수님 바람(?)대로 건설사에 입사했다. 교수님께서 처음 직장을 잡았던 그 건설사로 입사한 것이다. 입사 때 희망 부서 지원란에 1지망 종합건축설계실, 2지망 해외 건축사업부, 3지망 국내 건축사업부라고 기재했다. 해외로 돌아다니며 근무해 보고 싶어 해외 건축사업부로 지원하고 싶었는데, 늘 내 인생이 2지망 인생인지라, 이번에도 2지망이 될 것 같았다. 대학도 2지망처럼 고르고, 학과도 2지망이 되었으니 2지망 인생이 맞다.

가고 싶은 부서를 2지망으로 쓰고, 경쟁이 제일 심한 부서를 1지망으로 올렸다. 내 인생이 늘 그렇듯, 역시 이번에도 내 의도대로는 되지 않았다. 지원자 중 인재들을 우선하여 뽑는다는 종합건축설계실로 발령이 났다. 회사는 나를 브레인으로 판단했다는 거겠지? 오호~


참 별게 다 자랑이다.


소속 설계팀은 전자 단지 프로젝트들이 주 업무였는데, IMF 이후에는 대북 사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교수님 말씀대로 야간 대학원을 진학하려고 했더니, 이 회사에서는 야간 대학원을 다닐 시간이 나지 않는다. 매일 야근하고 주말도 없었다. 설령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받는 급여로는 대학원 등록금이 감당이 안 될 듯했다. 아니, 교수님은 어찌 이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대학원을 다니실 수 있었던 거야?


재작년 자산관리사에 입사하고 나서 공학 대학원을 다시 다녀볼까 생각했다. “둘째가 고3이고 들어갈 돈이 많으니, 1년만 미루면 어떻겠냐?”라고 하는 아내의 의견을 따라 작년부터 다시 다니려고 했더니, 재작년 가을부터 주주사 간의 갈등으로 지속적인 근무조차 어려워졌다. 결국 스트레스에 건강도 안 좋아지고, 수술도 반복하면서 작년 6월 말 퇴사했다.


얼마 전 몇몇 설계사에서 수주 영업을 담당할 사장급으로 입사 요청이 왔을 때 다시금 공학 대학원 입학을 고민했다. 대학원 담당 교수인 후배에게 문의도 하고, 친구 교수들에게도 의견을 구했다. 긍정과 부정의 의견이 분분했고, 공학 대학원의 성격에 관해서도 공부와 교류 둘로 나뉘었다. 심지어 젊은 교수들은 30여 년 건설 현장을 경험한 사람에게 강의하기 부담스럽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대신 와서 강의를 해주셔야 하는 거 아니냐는 농담도 했었으니까. 난 그간의 건설 경험을 강의를 들으며 한번 차분히 정리하고 싶었지, 강의할 능력은 안 된다. 그저 건설 관련 최근 동향과 변화된 부분을 조금 더 공부하기만 해도 큰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업계 사람들을 만나서 인맥을 넓히는 것도 개인적으로 도움이 될 거니까. 작년까지 5학기였던 것이 4학기로 줄어서 시간적인 부담은 덜었는데, 경제적인 부담은 줄지 않았다. 한 학기 1,000만 원이라니, 너무 비싸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왜 매번 등록금은 이리도 비싼 건지, 원.


전문가들을 만나는 업무를 하다 보니, 학사 학위로 끝난 내가 많이 부족해 보였다. 이력서 학위란에 학사라고 쓰기도 좀 모자란 것 같아 보였고, 그때마다 석, 박사 출신들이 마냥 부러웠다. 나만 없는 거 같았다, 나만.


학위가 그 사람의 모든 능력을 대변하지는 않을 거다. 물론 더 공부한 사람이 그 분야에 더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런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 시간적, 경제적 노력이 더 요구되었을 테니까. 거기다 더 좋게 평가되고, 몸값을 높이기 위해서 학위는 꽤 괜찮은 수단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나는 나를 포장할 페르소나가 하나 더 필요한 것이었을까? 결국 난 공부보다 학위가 더 필요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더 이상 학위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다시 기회가 오면 글쎄, 다시 시도할지는 모르겠지만, 더는 안 할 것 같다. 남들 시선을 인식해서 하는 공부는 하지 말아야지.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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