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들썩한 세상 뒤로 홀로 멈춰버린 시간
"꺄르르!"
고막을 찢을 듯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공기 중으로 날카롭게 흩어졌다. 달콤하지만 어딘가 역한 팝콘 냄새, 먼지 섞인 공기청정기의 윙윙거림.
주말의 대형 키즈카페는 지나치게 밝았다.
구석 테이블에 몸을 웅크린 이수는 타오르는 목을 축이려 마른침을 삼켰다. 소음은 의미를 잃은 채 날아와 박혔다. 타인의 웃음을 천박하다 느끼는 이 지독한 오만. 그 잔인함을 알기에 그녀는 스스로가 더 미웠다.
하지만 이수는 그 서늘한 진실을 끝내 외면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려오기 시작했다. 약을 먹고 왔어야 했다. 아이들이 졸라대는 통에 급하게 나오느라 가방에 약을 챙겨 넣는 걸 깜빡했다. 그 작은 실수가 화근이었다.
‘괜찮아, 서이수. 그냥 애들 노는 거잖아. 별거 아니야.’
속으로 주문을 외워봤지만, 심장은 주인의 허락도 없이 제멋대로 박동 수를 높여가고 있었다.
쿵, 쿵, 쿵, 쿵.
점점 빨라지는 심장 소리가 키즈카페의 소음을 집어삼킬 듯 커졌다. 시야가 좁아지고 주변 소리가 물속에 잠긴 듯 웅웅거리며 멀어졌다. 공황이었다.
"엄마! 다은이가..!"
볼풀장에서 들려온 첫째의 울먹임이 이수의 귓가에 예리한 칼날처럼 박혔다. 둘째가 넘어진 모양이었다. 일어나야 했다. 가서 아이를 안아주고 달래줘야 했다. 그게 엄마니까.
하지만 이수의 몸은 의자 시트에 본드로 붙여놓은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세상은 이토록 시끄럽고 분주하게 돌아가는데, 나만 멈춰 있었다. 엄마라는 말이 이렇게 무거웠던 적이 있었나.
'움직여, 제발... 제발 좀.'
숨이 턱 막혔다.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아이는 우는데 엄마는 꼼짝도 못 하고 덜덜 떨고 있다니.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같았다. 수군거림이 환청처럼 들려왔다. 이수는 수치스러움과 공포에 질려 고개를 무릎 사이로 파묻으려 했다.
그 순간, 낯선 그림자가 이수 위로 드리워졌다.
"괜찮아, 씩씩하네. 안 다쳤어."
낮고 덤덤한 남자의 목소리. 이수가 힘겹게 고개를 들자 흐릿한 시야 사이로 한 남자가 보였다. 도진이었다.
도진은 이수 앞 테이블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시선을 맞췄다. 그는 섣부른 질문 대신, 하얗게 질린 이수의 입술과 떨리는 손을 가만히 응시했다.
"숨, 억지로 쉬려고 하지 마요."
도진이 자기 가슴에 손을 얹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그 손등에, 희미하게 긁힌 자국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내 눈 봐요. 다른 소리 듣지 말고, 내 목소리만 들어요."
이수의 동공이 갈 곳을 잃고 흔들렸다.
"하나, 하면 들이마시고. 둘, 하면 뱉는 겁니다. 자, 하나."
도진이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수는 홀린 듯 그를 따라 쌕, 하고 짧은 숨을 삼켰다.
"둘. 길게 뱉어요. 후우-"
마법 같았다. 낯선 남자의 차분한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귓가에서 윙윙대던 이명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도진이 물티슈를 한 장 뽑아 이수에게 건넸다.
"식은땀, 닦아요."
이수는 그제야 자신이 땀범벅이 된 채 낯선 남자 앞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치심에 얼굴이 붉어졌다.
"죄송합니다. 제가 갑자기..."
"쪽팔린 거 아니에요."
도진이 무심히 말했다. 그는 마치 오늘 점심 메뉴를 이야기하듯 건조하게 덧붙였다.
“나도 약 끊는 데 1년 걸렸어요. 끊는다고 다 끝나는 건 아니지만.”
그는 그 말을 농담처럼 흘려버렸다.
그 덤덤한 위로가 오히려 독이 된 걸까.
그의 말은 위로가 아니라, 내가 필사적으로 닫아걸었던 수치심의 문을 따고 들어온 무례한 침입이었다. 나만 앓고 있는 줄 알았던 이 비루한 병을, 저 남자가 너무나 평온한 얼굴로 발음하는 순간 내가 지켜온 가련한 자존심은 한낱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들켰다. 나의 밑바닥을, 이 구질구질한 병을 생판 모르는 남에게 들켜버렸다.
수치심이 발끝에서부터 차올랐다. 이수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방어 태세를 취했다. 무너져내리던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해, 그녀는 더 두껍고 단단한 껍질 속으로 급하게 숨어들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젠 괜찮아요."
이수의 목소리는 성에가 낀 듯 차갑고 딱딱했다. 억지로 꾸며낸 태연함이었다. 도망쳐야 했다.
"아빠! 나 쉬 마려!"
그때였다. 도진의 다리 옆으로 작은 사내아이가 달려와 매달렸다.
방금 전까지 세상 모든 짐을 다 짊어진 듯 건조하고 피로해 보이던 남자의 얼굴이, 아이의 목소리 하나에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우리 아들, 신나게 놀더니 급했어?"
아이를 번쩍 안아 올리는 순간, 도진의 휴대폰 화면이 켜졌다가 꺼졌다. 수신 부재 3통. 도진은 휴대폰을 뒤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이수는 그의 웃는 얼굴만 보았다. 그늘 한 점 없이 해사하고, 꾸밈없이 행복해 보이는 얼굴. 자신은 아주 오래전에 잃어버린, 어쩌면 평생 가져보지 못한 그런 종류의 미소였다.
'부럽다.'
저 남자가 부러운 게 아니었다. 저 표정이, 저 순간의 공기가 사무치게 부러웠다. 저 눈부신 미소는 한때 나에게도 당연한 계절이었을까. 내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조차 잊고 살았는데, 그의 웃음 한 조각이 억지로 내 손에 거울을 쥐여준 기분이었다.
'나도... 저렇게 웃고 싶다.'
도망치듯 걸음을 옮기는 이수의 등 뒤로 여전히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날 이후, 이수는 이유 없이 그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웃는 얼굴 말고, 잠깐 굳어 있던 그 표정이.
그게 왜 하필 그 남자의 얼굴이었는지, 이수는 알지 못했다.
세상의 소란이 나를 지울 때, 낯선 숨결 하나가 가만히 길을 내어줍니다. 부서진 조각을 들키고서야 비로소 참았던 숨을 길게 몰아쉽니다. 나도 그늘 없이, 한 번쯤 해사하게 웃어보고 싶어지는 찰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