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의 소속감
3목에 거는 사원증을 착용한 채 지나가는 사람들.
건물 안 엘베를 앞에 두고 사원증을 태그 하는 모습들. 여의도를 갈 때마다 보는 어딘가 소속되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들을 볼 때면 일을 갖고 있지 있는 나는 종종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여전히 직장을 다니고 있는 친구들이 떠 오를 때면 나도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더 늦기 전에 뭔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앞서다 보면 어김없이 잡코리아를 검색하게 된다. 집안일 끝내고 노는 시간을 임금으로 환산해 보다 보면 집에서 노는 내 시간이 아깝게 느껴진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막연한 의무감이랄까.
난 집에서 맨날 놀기만 하고 남편은 맨날 일하러 가고. 이거 너무 미안한 일이지 않은가? 나도 가정에 보탬이 돼야 되지 않을까?
내가 할 만 한 직업을 검색해서 찾아본다. 그러다 적당한 걸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긴장된 두려움이 몰려오며 지원하기를 망설이게 한다. 지원한다 해도 될 거라는 보장도 없는데 말이다. 워낙 오랜 시간 쉬어서인지 집안일 말고는 뭔가를 한다는 게 엄두가 안 나기도 한다. 남편은 집안일을 해 주는 덕분에 자신이 나가서 이렇게 벌어 올 수 있는 거라며 날 안심시키지만, 아무리 집안 일도 일이라지만 일의 시간으로만 따져봐도 남편에 비해 나는 집에서 노는 시간이 훨씬 길다.
수년째 하고 있는 집안일은 숙련된 노동자처럼 내겐 너무 익숙하고 쉬운 일이 돼버려서 이제는 일이라기보다는 역할로만 인식된다.
양육, 청소, 세탁, 다림질, 장보기, 식사준비, 어쩌다가 세금 처리, 어쩌다 집안 행사, 그 외 잔무들.
아마 집안일도 회사처럼 프로젝트가 있고 평가가 있고 승진이 있었으면 나도 직업으로 느꼈으려나.
그래서 이런 나에게 자부심을 넣어 주고자 나는 집안의 재무장관이라고 가족들에게 선언을 했다. 직업으로 의식하려고 한 말이지만 매우 이성적인 세계의 내 가족들은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진 않았다. 생각의 변화를 주고자 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 또한 기존의 인식세계를 벗어나진 못했다.
맨날 놀고 먹어서인지 매년 해가 거듭 될수록 남편이 벌어 오는 월급이 나는 수년째 감사하다. 남편은 깜깜한 새벽에 나가기도 하고, 밤을 새기도 하고, 감기가 들어도, 컨디션이 안 좋아도 출근이 정해 진 날이면 단 한 번의 결근 없이 항상 나갔다. 나중에 퇴직할 때 개근상을 만들어 기념으로 줄 생각이다.
남편의 출근하는 모습은 익숙해지지도 않는다. 익숙하면 당연 해질 텐데 익숙하지 않으니 매번 볼 때마다 안쓰럽다. 책임감으로 사명감으로 자부심으로 가족 중에 혼자만 일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같이 벌어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그리고 고맙다.
그래서인지 매달 들어오는 남편의 월급은 나에겐 매번 첫 월급처럼 다가온다. 월급을 받을 때마다 남편에게 카톡으로 편지를 쓴 지도 수년째다.
입안에 염증이 군데군데 생겨서 음식을 잘 삼키지도 못했던 모습도 떠오르면서 한 달 동안 고생했을 남편의 수고스러움을 너무나 잘 알기에.
많이 저축하고 남은 것은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고, 돈을 쓸 때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쓰겠다고 글을 쓴다. 어느 날 남편이 말하길, 퇴직이 점점 가까이 올 때면 남자들은 "내가 돈 벌 오는 기계인가?"라는 생각에 억울한 마음이 든다는데 난 왜 그런 마음이 안 들지? 라고 말한 적이 있다.
감사하다. 그런 생각이 안 들어서.
남편은 일을 통해 매일 성장하고 있는데 나는 베짱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집에서 할 수 있는,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했다. 그게 나에게는 독서였다. 나는 책 속에서 다양한 작가들의 시선과 그들의 경험을 만날 수 있었고, 그때마다 내 사유의 시선도 높아짐을 느꼈다. 아이에게 편지글을 써서 보내 줄 때면 나에게 권했던 브런치 작가가 떠 올랐다. 독서를 통해 실행의 중요성을 일치감치 깨달았던 나는 브런치 심사팀에 글 세편을 작성해서 보냈고, 며칠 후 작가가 되었다는 반가운 메일을 받았다.
지금까지 해온 매우 익숙한 집안 일도 변함없이 꾸준히 해내면서, 내가 바랬던 소속감을 느끼게 해 준 고마운 브런치에서 따뜻하고 다정한 글을 쓰고 싶다. 지면을 빌어 다양한 작가들의 글을 만날 수 있게, 그리고 그들의 창작 활동의 무대 공간을 만들어 주신 브런치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