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서른아홉 노처녀 차장에게 배워라

by 제니
만난 사람 모두에게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현명하다.
– by 탈무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영화의 편집장처럼 주위 사람을 얼어붙게 만드는 카리스마의 결정체는 멀리 있지 않고 투루의 회사에도 있어요. 첫 출근 때부터 투루를 긴장하게 했던 장본인은 다름아닌 강 차장이에요.

170cm에 50kg 늘씬한 체격의 강 차장은 1년 365일 항상 똑같은 어깨 길이의 검은 단발머리에 입술보다 조금 밝은 립스틱을 바르며 출근해요.


“신중하고 조용하며 집중력이 강하고 매사에 철저하며 사리분별력이 뛰어나다.

실제 사실에 대해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기억하며 일 처리에 있어서도 신중하며 책임감이 강하다.

집중력이 강한 현실적인 감각을 지녔으며 조직적이고 침착하다.

보수적인 경향이 있으며 문제를 해결하는데 과거의 경험을 잘 적용하며, 반복되는 일상적인 일에 대한 인내력이 강하다. 정확성과 조직력을 발휘하는 분야의 일을 선호하며 위기 상황에서도 안정되어 있다.”


MBTI(심리학자 융의 심리유형을 근거로 3대에 걸쳐 70년 동안 연구 개발된 성격유형 검사) 성격 검사의 ‘ISTJ’ 바로 강 차장의 유형이에요. 타 부서 남자 상사들도 대하기 어려워하는 얼음공주 강 차장은 39살 싱글이에요. 눈이 높은 건지 남자가 없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노처녀 히스테리가 장난이 아니에요. 완벽주의 성격으로 A부터 Z까지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 성격이라 오 주임과 투루는 덩달아 꼼꼼해져요. 눈매는 또 얼마나 날카로운지 무테 사이로 눈을 치켜 뜨면 순간적으로 움찔하게 돼요.


“다시 해오세요.”

‘후아… ‘ 오늘도 투루는 한숨부터 나와요. 아무리 보고하고 기획안을 만들어도 강 차장 눈에 차지 않아요.


“이거 오타 아니에요? 꼼꼼하게 확인하라고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들어요?”

보고서의 마침표까지 철저히 확인하는 강 차장 눈에 오늘도 오타가 발견됐어요. 투루가 볼 때는 전혀 보이지 않던 오타가 강 차장 앞에만 가면 200% 확대되는지 잘만 보여요.


“잘못된 게 뭐고 앞으로 어떻게 해결할지 30분내로 이메일로 보내세요.”

어김없이 반복되는 이메일 반성문쓰기. 숨 막히는 상황들 속에서 점점 참을 수 없는 투루는 최 대리에게 메시지를 보내요.


“대리님, 차장님 오늘따라 예민하지 않아요? 노처녀 히스테리도 아니고 매번 왜 이러는 건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정말 숨 막혀서 회사 못 다니겠어요. 전생에 나랑 무슨 원수가 졌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못 잡아 먹어 안달이에요, 내가 젊어서 질투하는 건가?”


“뭐라고?”

최 대리가 어이없다는 듯 썩은 미소를 날려요.


“강 차장님한테 배울 건 없어?”


“앙칼진 노처녀한테 배우긴 뭘 배워요. 나이 먹어서 저렇게 될까 무섭기만 한데요.”


“강 차장님이 카리스마가 강하지만 알고 보면 정 많고 배울 게 많은 사람이야.”


이건 또 무슨 쥐 풀 뜯어먹는 소리인지 위로 받으려다가 스트레스만 받아요.

‘강 차장한테 배울 게 있다고?’ 처음 들은 그 말에 투루는 잠시 강 차장과의 일들을 떠올려봐요. 작년 겨울 연사업 회의 때 강 차장 모습이 떠올랐어요…


“금요일 날 연사업 회의를 진행할 예정이니 모두 내년도 업무계획을 준비해서 오세요.”

회의소집을 알리는 강 차장의 솔 톤의 목소리가 들려와요. 홍보팀 중에서 가장 막내인 투루는 아이디어뱅크라 자칭하며 열심히 아이디어를 짜내서 엑셀파일로 정리해요. 스포츠 클라이밍을 진행하고 있는 허그홈과의 신규 칼럼계획도 포함되었고 사내 기자단 구성을 통한 컨텐츠 확보도 계획했어요. 준비를 하면 할수록 투루에게도 이런 면이 있었나 깜짝 놀래요.


금요일이 되자 정 부장, 강 차장, 최 대리, 오 주임, 투루 모두 모여 연사업 회의를 시작해요. 이미 몇 번씩의 경험이 있는 최 대리와 오 주임은 무난하게 준비했고 드디어 투루의 차례가 되었어요. 약간 긴장한 투루는 준비한 자료를 보여주며 후년도 업무계획을 함께 나눠요. 어제 과음했는지 정 부장은 고개를 떨구며 계속 졸고 있어요. 이런 우라질. 마지막 차례는 강 차장이에요. 평소 꼼꼼한 성격이라 잘 준비했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자료부터 장난이 아니에요. 보통 금년도 업무평가 및 후년도 계획만 준비했는데 강 차장은 5년, 10년 전 비교분석 데이터부터 시작해 후년도 계획 가상 시뮬레이션까지 짜왔어요.


“내년에는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들을 온라인 데이터베이스화 하겠습니다. DB를 구축한 뒤 시스템적으로 효율적인 운영을 시작하려 합니다.”

대선출마라도 하듯 장엄한 모습의 강 차장이 눈에 불을 켜며 이야기를 해요.

이게 끝이 아니에요. 이번에는 벤치마킹할 해외 사이트들을 정리한 화면을 보여줘요. 생전 처음 본 외국 사이트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요. 웹 DB가 잘 구축된 사이트, 트랜디한 사이트, 사진 레이아웃이 잘 정리된 사이트까지 강 차장의 내공은 어디까지일지 점점 더 궁금해져요. 회의실 앞 쪽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후년도 계획에 대한 로드맵을 그리고 누가 담당할지 업무분장까지 다 끝냈어요. 아! 역시 강 차장은 성격은 까칠하지만 엄청 프로페셔널한 사람이에요. 완벽을 추구하는 꼼꼼함이 강 차장에게 빠질 수 없는 점이란 걸 다시금 깨달아요.


그 동안 자신을 괴롭히기만 하는 무서운 상사라고 생각했는데 강 차장에게 생각보다 배울 점이 많아요. 강 차장의 배울 점을 잊을까봐 투루는 지금까지 강 차장에게 받았던 피드백을 떠올리며 메모하기 시작해요.

[투루의 직작생활노트]

* 강 차장 피드백 정리

1. 어떤 것을 맡길 수 있는지 여부는 <책임감>에 달렸다.
직급이 높은 사람일수록 진행하는 일의 범위가 넓고 기억해야 할 게 많기에 수시로 보고하자.
내가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수시로 <중간보고>를 하며 결과물을 보여주자.
내 스케줄에 맞춰 상사에게 스케줄을 요구하지 말자. <상의>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다.

2. 일에는 세 종류가 있다.
- <하고 싶은 일> 이것은 3순위로 조직이 그것을 원하는가, 내가 그것을 할 수 있는 실력이 있는가의 점검이 필요하다.
- <할 수 있는 일> 이것은 2순위로 회사나 개인이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자극이 없으면 오래 가지 못한다.
- <해야 하는 일> 이것이 1순위이며 이 일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것을 경험한다. ‘해야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일’이나 ‘하고 싶은 일’로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이 있지만 아직은 회사를 떠날 수 없기에, 투루는 그날부터 수첩에 적은 강 차장의 배울 점을 벤치마킹하기로 결심해요.


[TRUE Message]

1.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되는 상사에게도 배울 점은 있어요. 그 배울 점을 파악해 벤치마킹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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