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라

리더는 바른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다려주는 사람이다

by 심 홍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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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라.”


우리는 일상에서 이 말을 참 쉽게 꺼내곤 합니다. 상황이 아무리 불리하고 감정이 상해 있어도, 사실만큼은 왜곡하지 말고 정직하게 말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겉으로 보면 더없이 올바르고 단단한 말입니다. 조직에서도 이 문장은 자주 등장합니다. 변명하지 말고 사실대로 말하라는 요구, 감정은 이해하지만 팩트는 팩트라는 선언 앞에 우리는 반박하기 어렵습니다. 너무도 맞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사 현장에서 오십 대가 되어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이 말이 꼭 ‘정직’을 위한 도구로만 쓰이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누군가를 몰아붙이는 가장 손쉬운 방식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나는 바른말을 했을 뿐”이라는 명분 뒤에 숨어, 상대의 상황이나 두려움은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한 방패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 말은 어느 순간, 사실을 말하라는 요청이 아니라 침묵과 굴복을 강요하는 문장으로 변질되곤 합니다.


몇 년 전, 전사 결제 시스템이 한밤중에 멈춰 서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피해 규모가 커지면서 다음 날 아침 회의실에는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습니다. 사고 리포트의 원인란에는 운영팀 신입이었던 이 주임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단 한 줄의 설정값 입력 실수였습니다.

기술 담당 임원은 그를 회의실 한가운데 세워 두고 말했습니다.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야지. 가이드나 시스템 탓하지 말고 본인 과실을 인정해.”


분명 사실이었습니다만, 그 말이 이어질수록 이 주임의 어깨는 점점 움츠러들었고, 시선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는 결국 “문서가 조금 애매해서…”라는, 스스로도 납득하지 못할 말을 꺼냈습니다. 입이 삐뚤어진 것이 아니라, 그저 날카로운 질책 앞에서 버티기 위해 말을 구겨 넣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회의가 끝난 그날 오후, 인사팀으로 그의 사직서가 올라왔습니다.

저는 사직서를 들고 탕비실로 향했습니다. 밤을 새운 흔적이 역력한 그에게 커피 한 잔을 건네며 말했습니다.

“어제 회의에서 말이 조금 헛나온 것 같아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잖아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조금 더 천천히 말을 이었습니다. 사고가 나기 전 주에 그가 사흘 동안 서버실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던 것,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봐 밤새 로그를 확인하던 노력을 다 알고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졸아서 실수한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 실수 앞까지 오게 만든 당신의 책임감도 분명한 사실이에요. 지금 사표를 받으면 회사는 실수한 신입 한 명을 정리할 수 있겠지만, 대신 다시는 밤새 시스템을 지키려는 소중한 사람은 얻지 못할 겁니다.”

그제야 그는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이 주임은 자신의 실수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재발 방지 프로세스를 직접 정리해 제출했습니다. 그 문서는 이후 회사의 표준 매뉴얼이 되었고, 그는 시간이 흘러 시스템 오류를 가장 먼저 잡아내는 든든한 팀장이 되었습니다.


이 주임의 입이 다시 펴진 것은 누군가가 바른말을 강요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말해도 괜찮다는 ‘신호’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말은 ‘바르게 하는 것’보다 ‘바르게 전달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때로는 입이 삐뚤어진 사람을 탓하기 전에, 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지 그 상황을 먼저 들여다보는 것이 진짜 정직에 가깝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거짓말을 하고 싶어서 말을 비트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을 말했을 때 감당해야 할 결과가 너무 크기에,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말을 돌리는 것입니다. 질책과 낙인,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앞에서 사람의 입은 자연스럽게 삐뚤어집니다. 그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생존 방식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를 바로잡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합니다. 이 사람이 솔직해질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 지금 우리 조직은 진실을 말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인지 말입니다. 그 질문을 건너뛴 채 “바른말을 하라”라고 요구하는 것은, 결국 칼을 쥐고 정직을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조직을 망가뜨리는 것은 실수 그 자체가 아니라, 실수했을 때 말할 수 없게 만드는 분위기입니다. 진짜 리더는 바른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바른말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믿고 기다려줄 줄 아는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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