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에서 매몰될 뻔했던 내부 전문가 김 사원 이야기.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이 속담은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나 일일수록 오히려 그 가치를 몰라보거나 문제를 발견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우리에겐 참 익숙한 속담입니다. 등잔불은 멀리까지 밝히지만, 정작 등잔 바로 아래에는 그림자로 오히려 주변보다 어두워지는 현상을 표현한 것으로 입니다. 따라서 멀리서 답을 찾지 말고 가까운 곳부터 챙기라는 말, 주변 사람부터 제대로 보라는 역설의 말입니다.
조직에서도 이 말은 자주 등장합니다. 방심을 경계하고 내부를 돌아보라는 취지입니다만, 오랫동안 인사현장에서 인재들의 성장 모습 지켜보다 보니, 조금 다른 모습도 보입니다. 우리는 이 말을 하면서도 동시에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가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믿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깊이 보지 않습니다. 익숙함은 때로 가장 강력한 장벽이 됩니다.
하지만 오십 대가 되어 인사 업무를 깊이 돌아보니, 저는 이 속담을 조금 다르게 읽고 싶어 집니다. 등잔 밑이 어두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보지 않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몇 해 전, 회사는 브랜드 이미지 쇄신이라는 큰 과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고객층은 고령화되고 있었고, 경영진은 다급하게 “젊은 감성”을 주문했습니다. 전략 회의가 열릴 때마다 해법은 비슷했습니다.
“이번에는 확실히 검증된 외국계 컨설팅사에 맡깁시다.”
“요즘 제일 잘 나가는 광고 대행사가 어디죠? 억 단위가 들더라도 거기랑 계약해야 합니다.”
회의실 안은 화려한 외부 사례와 유명 전문가의 이름들로 가득 찼습니다. 반면 내부를 향한 시선은 차가웠습니다. “우리는 그런 감성을 몰라요”, “우리 조직엔 그런 인재가 없잖아요”라는 자조 섞인 말들이 정답처럼 굳어지고 있었죠. 저 역시 그 문장이 가슴에 얹힌 채 인사 데이터를 뒤적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한 직원의 프로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평소 무난한 평가를 받던, 회의 때는 존재감이 거의 없던 김 주상 사원이었습니다. 특이하게도 프로필 하단에 개인 블로그 링크가 하나 걸려 있더군요. 그날 밤, 별생각 없이 접속했다가 저는 한동안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브랜드 분석, 소비자 심리, 콘텐츠 기획... 우리가 수천만 원을 들여 들으려 했던 내용들이 훨씬 생생하고 날카로운 언어로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조회 수는 이미 수만 단위를 기록하고 있었죠. 다음 날, 저는 김 주상 사원을 조용히 불렀습니다.
“김 주상 씨, 어제 우연히 블로그를 봤어요. 이거 정말 본인이 직접 분석하고 쓴 글인가요?”
김 주상 사원은 당황한 듯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네... 그냥 퇴근하고 개인적으로 좋아서 해온 일입니다. 회사 업무와는 상관없는 분야라고 생각해서 굳이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아니요, 상관이 없긴요. 우리가 찾던 답이 여기 다 있는데.”
그 순간 확신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등잔 밑에 앉아 있으면서도 그 불빛을 전혀 활용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반대를 무릅쓰고 외부 계약을 보류한 채, 그를 프로젝트 핵심 멤버로 배치했습니다. “경험이 부족하다”, “조직 질서가 흔들린다”는 우려도 컸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제가 생각한 것과 같이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는 회사의 역사와 맥락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면서도, 고객의 언어로 이를 새롭게 풀어냈습니다. 캠페인은 대성공이었고, 회사는 한순간에 ‘젊어진 브랜드’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 이후 김 주상 사원을 바라보는 동료들의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조직에는 하나의 질문이 남았습니다. 우리 주변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등잔 밑이 더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익숙함은 때로 가장 강력한 장벽이 됩니다. 너무 오래 함께 일했다는 이유로, 서로를 ‘역할’로만 정의해 버린 채 그 안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닫아버리곤 합니다. 조직이 정체될 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밖을 봅니다. 더 유명한 사람, 더 화려한 결과물... 하지만 실제 변화의 씨앗은 이미 내부에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우리가 고개를 들고 멀리만 보느라,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았을 뿐입니다.
리더의 역할은 새로운 불빛을 들여오는 데에만 있지 않습니다. 이미 켜져 있는 불빛의 방향을 바꾸는 것,
그것이 진정한 리더십의 시작입니다. 오십 대 인사부장에게 이제 이 속담은 자책의 문장이 아니라 점검의 문장입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느껴질 때는 불을 더 밝히려 하기보다 시선을 낮추어야 한다". 새로운 사람을 찾기 전에 이미 곁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십시오. “당신은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요?”라고 말입니다.
인생에서도 조직에서도 결정적인 전환점은 늘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문제는 거리가 아니라 관심의 각도였습니다. 고개를 숙여 이야기를 듣고, 당연하게 지나쳤던 동료의 이름을 다시 불러주는 순간, 어둠이라 여겼던 그 자리에서 비로소 새로운 빛이 켜지기 시작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