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공정성은 '해석하기 나름'이 아니라, ‘명확함’에서 나옵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지.”
조직에서 규정이 명확하지 않을 때, 혹은 힘 있는 자가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비틀 때 우리는 이 말을 씁니다. 현장에서는 이를 ‘유연한 해석’이라 포장하곤 하지만, 사실 이는 원칙 없는 결정을 정당화하고 조직의 공정성을 무너뜨리는 기회주의적 언어에 가깝습니다. 수천 번의 규정 심의를 거치며 조직의 뼈대를 세워온 오십 대의 인사부장은 이제 이 속담을 다르게 읽습니다. “귀걸이냐 코걸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처음부터 ‘걸 데’를 명확히 정해 두지 않은 리더의 태만이 문제입니다.”
인사(HR) 현장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바로 ‘해석의 여지’가 지나치게 많을 때입니다. 오래전, 회사가 기틀을 잡아가던 시기의 일이었습니다. 성과급 시즌을 앞두고 기분이 좋아진 대표이사는 직원의 정성적 헌신을 보상하겠다며 야심 찬 규정 하나를 신설했습니다. 부서장이 ‘탁월’하다고 판단하는 인원에 대해 20%의 재량 가산점을 줄 수 있게 한 것이었죠. 대표는 스스로를 인간미 넘치는 리더로 여겼지만, 저는 우려가 앞섰습니다. 하지만 대표는 “현장을 잘 아는 부서장들의 신뢰를 믿으라”며 제 걱정을 일축했습니다.
사내 평화는 성과급 통지서가 발송되기 직전까지만 유효했습니다. 통지서가 나가자마자 영업본부 박 대리가 제 방 문을 박차고 들어왔습니다. “제 매출이 팀 내 1위인데, 왜 실적이 낮은 최 대리가 S등급입니까? 부서장 담배 친구 해주고 주말마다 같이 등산 가준 게 협업입니까? 이게 ‘귀걸이 코걸이’식 인기투표지, 무슨 성과급입니까!”박 대리가 나간 뒤에는 개발부장이 초췌한 얼굴로 들어와 서류를 내던졌습니다. “팀원들이 서로 ‘네가 왜 탁월이냐’며 싸우고 제 방 앞에 항의 줄이 서 있습니다. 도대체 ‘현저히 탁월함’을 어떻게 증명하고 직원들을 납득시키란 말입니까?”
조직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모니터가 아닌 부서장의 표정을 살폈고, ‘재량’이라는 틈새로 ‘정치’와 ‘줄 서기’가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긴급 소집된 부서장 회의에서도 평행선은 이어졌습니다. 야근이 탁월함인지, 기술적 해결이나 분위기 메이커가 탁월함인지 저마다 자기 팀에 유리한 해석을 내놓느라 여념이 없었죠. 화이트보드는 순식간에 각자의 ‘탁월함’에 대한 정의로 가득 찼습니다. 저는 3시간째 이어지던 화이트보드의 내용을 모두 지우고 딱 한 문장을 썼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싸우는 이유는 우리가 나빠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쥐고 있는 이 ‘고무줄’ 때문입니다. 회사가 여러분 손에 무기가 아니라 독배를 쥐여 드렸군요.”
그날 밤, 저는 대표를 설득해 모호한 단서들을 모조리 폐기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전사 게시판에 단 한 줄의 개정안을 공표했습니다. “모든 가산점은 KPI를 120% 초과 달성한 경우에만 자동 부여한다. 부서장의 정성적 가산점은 전면 폐지한다.” 정이 없다느니, 너무 사무적이지 않느냐?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그런 부분이 있다..등 많은 비난이 쏟아질 줄 알았지만, 오히려 그 많던 항의가 거짓말처럼 뚝 끊겼습니다. “억울하다”는 말 대신 “다음엔 120%를 넘기겠다”는 다짐이 들려왔습니다. 걸 데를 ‘숫자’라는 단 한 곳으로 정해주자, 더 이상 코걸이를 만들 여지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기준이 투명해지자 에너지는 비로소 ‘해석의 전쟁’에서 ‘성장의 열정’으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저에게 이 속담은 유연함을 뜻하는 재치의 언어가 아니라, 원칙의 부재를 꼬집는 ‘경계의 언어’입니다. 조직의 규정에 ‘가급적’, ‘상황에 따라’, ‘현저히’ 같은 모호한 단어들을 숨겨두지 마십시오. 당신이 유연함이라 믿고 남겨둔 그 틈새에서 누군가는 특혜를 누리고 누군가는 억울한 눈물을 흘립니다. 오십 대가 되어 돌아보니, 가장 훌륭한 복지는 화려한 사내 시설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명확한 기준’이었습니다.
리더의 역할은 규정을 고무줄처럼 늘려 선심을 쓰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그 기준을 의심하지 않도록 단단한 말뚝을 박아주는 것입니다. 기준이 투명할 때 비로소 구성원들은 신뢰라는 토대 위에서 각자의 가능성을 펼칠 수 있습니다.“당신의 조직에서 누군가 지금 규정을 코걸이처럼 쓰고 있다면, 그것은 혹시 당신이 남겨둔 애매한 문장 때문은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