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기계의 눈]
인간의 눈은 380 나노미터에서 780 나노미터 사이의 전자기파만 볼 수 있다. 전체 전자기 스펙트럼에서 이것이 차지하는 비율은 1%에 불과하다.
우리는 세상의 1%를 보면서 전부를 본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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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며칠은 세상이 선물처럼 풀려 나왔다. 연구실로 출근하는 길에 가로수의 잎맥을 세었는데, 10개월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을 것이다. 빛을 잃어본 적 없는 사람은 잎맥을 세지 않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버튼의 글자를 읽었다. 손끝이 아닌 눈으로. 이 단순한 전환이 기적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마치 첫 출근 같았다. 같은 건물, 같은 복도, 같은 사람들이었지만 처음 보는 곳이었다. 로비 게이트를 통과할 때 왼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닥터 태드. 다시 보여서 다행입니다."
루이스. 10개월간 매일 같은 인사를 건넨 사람의 얼굴을 IRIS가 보여주었다. 사십 대 후반의 짧게 깎은 머리, 넓고 다부진 어깨를 가진 사내가 로비 게이트 옆 의자에 똑바로 앉아 있었다. 목소리로 그려온 사람과 달랐다. 바리톤의 목소리에서 상상한 것보다 눈가의 주름이 깊었고,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10개월간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매일 아침 같은 톤으로 인사를 건넨, 낯설지만 친숙한 얼굴.
"원래 이 얼굴이에요." 루이스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웃었다. 최근 몇 주간의 웃음은 전부 IRIS의 성과 앞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것은 달랐다.
10개월 동안 소리로만 알던 팀원들의 얼굴을 하나씩 확인했다. 리사는 내가 상상한 것보다 젊었다. 마이클은 상상한 대로였다. 아르티스도 내 기억과 예상과 달랐는데, 목소리가 그려준 아르티스와 IRIS가 보여주는 아르티스 사이에 간극이 있었다. 목소리의 아르티스는 날카롭고 정밀한, 직선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었다. IRIS의 아르티스는 생각보다 부드러운 턱선과 넓은 이마를 가지고 있었다. 선글라스 위로 보이는 눈썹이 생각할 때 미세하게 움직였는데, 이는 시각을 잃기 전에도 보았지만 의식한 적 없던 움직임이었다. 10개월간 나는 이것 대신 그녀의 호흡과 침묵의 길이로 같은 것을 읽어왔다. 미시감에 휩싸인 채 나는 문득 목소리의 아르티스가 더 선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지가 오히려 무언가를 가리고 있었다.
이미지가 보여주는 것 중 소리로는 알 수 없었던 것도 있었다. 바로 직원들의 귀 뒤와 관자놀이에 부착된 작은 장치들, 감각 BCI였다. 가진 사람과 갖지 않은 사람이 같은 복도를 걸었는데, 마찬가지로 이것은 소리의 세계에서는 보이지 않던 구분이었다.
나는 실명 전에도 한 번도 저것들을 쓴 적이 없었다. 뇌를 연구하는 사람이 자기 뇌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는 것을 보고 동료들은 아이러니라고 했다. 하지만 신경과학자는 자기 뇌의 기질을 깨끗하게 유지하려 한다. 변수를 통제하는 것이 본능인 사람이 자기 뇌를 변수로 만들 이유가 없었다.
실명 뒤에는 다른 이유가 추가되었다. IRIS를 위해 뇌를 비워두어야 했다. 청각이나 촉각 BCI의 신경 신호가 IRIS의 캘리브레이션을 오염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어둠 속에서 예민해진 감각들을 인공물로 덮고 싶지 않았다.
IRIS 가동 후 2주째였다.
커피의 맛이 달라졌다. 10개월간 맛으로만 마시던 커피를 이제 눈으로도 마시게 되면서, 혀 위의 해상도가 줄어든 것 같았다. 갈색이 이렇게 복잡한 색이었나. 잔 안에서 크레마가 소용돌이치는 것을 보면서 마시는 커피는 어둠 속에서 온도와 쓴맛과 산미의 층위를 세밀하게 느끼며 마시던 커피와 같은 음료가 아니었다. 과학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감각은 제로섬이 아니다. 하지만 "주의"는 제로섬이었다. 눈이 열린 만큼 혀가 닫혔다. 시각이 돌아오자마자 맛의 영토에서 땅을 빼앗기 시작했으며, 눈으로 보이는 갈색이 혀보다 먼저 커피를 점령하고 해석했다. 열두 가지 층위를 느끼던 혀가 '갈색'이라는 한 단어 아래 잠들어 있었다.
캘리브레이션이 진행될수록 시각은 선명해졌다. 첫날의 20/40이 일주일 만에 20/30으로, 2주 만에 20/25로 향상되었다. 뇌가 IRIS의 신호에 적응하면서 자체적으로 이미지 생성 능력을 최적화하고 있었다.
뇌가 학습하고 있었다.
이것은 예측된 결과였다. 하지만 예측을 넘어서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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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징후는 색이었다.
연구실에서 모니터를 보고 있을 때, 화면의 흰색 안에 다른 색이 보였다. 보랏빛이 도는 자외선에 가까운 무언가.
"리사, 이 모니터 자외선 방출은?"
"미량이요.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범위 밖이에요."
"나는 보이는데."
리사가 분광기를 가져왔다. 380 나노미터 이하 자외선 영역에서 미세한 방출. 정상 시각으로는 감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CMOS 센서의 감지 범위는 350 나노미터에서 1050 나노미터로, 카메라 자체는 자외선을 '볼' 수 있었다. 물론 AI 변환 엔진에서 380~780 나노미터 외의 데이터를 필터링하도록 설계했지만.
제이슨이 확인했다. "필터가 작동하고 있어요. 자외선 데이터는 뇌에 전송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보고 있는 건 뭐야?"
연구실 전체가 침묵했다.
"한 가지 가설." 내가 말했다. "필터가 걸러낸 건 원본 데이터야. 하지만 인접 파장에 미세하게 영향을 주는 잔류 흔적이 남아 있고, 뇌가 이 패턴을 증폭하여 시각화하고 있는 거야."
마이클이 계산했다. "가능합니다. 380 나노미터 데이터에 350~380 나노미터 간접 반영이 0.3% 수준으로 포함되어 있어요."
"뇌가 설계를 넘어선 거야."
IRIS가 1%의 창문을 열어주었을 뿐인데, 뇌가 스스로 그 창문을 넓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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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으로 필터를 해제한 것은 10월 3일이었다.
윤리적 검토나 IRB 보고 없이. 나의 판단으로.
"제이슨, 자외선 필터를 해제해."
"... 전체요?"
"350 나노미터까지. 자외선-A 영역."
"안전성 데이터가 없어요."
"뇌가 이미 처리하고 있어. 필터를 해제하면 뇌의 부담이 오히려 줄어. 스스로 증폭할 필요가 없으니까."
이 논리는 기술적으로는 타당했다. 하지만 제이슨이 망설인 것은 단순히 기술적인 이유가 아니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필터가 해제되었다.
인간의 눈이 보지 못하는 것을 나는 보기 시작했다. 이것이 복원인가. 원래 가졌던 것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가져본 적 없는 것을 얻고 있었다. 되찾는 것과 얻는 것은 같은 방향의 다른 속도가 아니라 전혀 다른 길이었다.
세상이 다시 한번 바뀌었다.
자외선이 보이는 세상. 꽃이 달라 보였다. 연구소 앞 화단의 팬지. 인간의 눈에는 노란색이었다. 하지만 자외선 영역에서 팬지의 꽃잎 중앙에는 짙은 보라색의 동심원 패턴이 있었다. 꿀벌이 보는 것. 꿀벌에게 이 패턴은 "여기 꿀이 있다"는 신호였다. 인간은 수십만 년간 이 신호를 보지 못했다. 꽃들이 수십만 년간 숨겨온 문장을 읽고 있었다. 꿀벌만 읽을 수 있던 편지를.
나는 이것을 보고 있었다.
다음은 적외선이었다. CMOS 센서의 감지 범위를 1050 나노미터까지 확장하고, 별도 탑재된 열적외선 모듈이 그 너머의 파장을 담당했다. 그러자 세상이 온도의 지도로 다시 태어났다. 사람의 체온이 색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마와 목, 손등에서 열이 피어오르고, 차가운 벽과 뜨거운 커피잔이 서로 다른 빛깔로 숨을 쉬었다. 이것을 한 문장으로 쓸 수 있었던 것은, 이쯤 되면 경이로움이 일상이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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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
데이비온이 이사회 시연을 요청했다. 3층 회의실. 이사 아홉 명 앞에서 IRIS가 포착한 적외선 영상을 스크린에 실시간으로 투사했다. 아홉 개의 몸에서 체온이 색으로 번지고 있었다. 의장의 이마가 나머지보다 0.7도 높았다. 마치 상대의 패를 다 보면서 치는 포커와 같았다.
아홉 명 중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뒷줄 오른쪽 끝. 다른 이사들이 모니터를 보거나 태블릿에 메모할 때, 이 사람만 나를 보고 있었다. 턱이 약간 들린 채 등이 의자에 닿지 않는 자세를 유지하는 이 자는, 특히 질문할 때의 어휘가 달랐다. “감지 거리”가 아니라 "탐지 범위"라고 했는데, 군사 용어의 잔상이 문장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IRIS가 그의 체온을 읽었다. 36.4도. 흥분이 없는 사람이거나, 흥분을 통제하는 사람이거나.
시연이 끝나고 데이비온이 복도까지 따라 나왔다. "이사회가 기대하고 있어. 좋은 의미로." 좋은 의미라고 했지만 IRIS가 읽은 데이비온의 심박은 분당 84회로, 평소보다 6 높았다. 기대가 아니라 계산을 하고 있는 사람의 맥박이었다.
문 앞에 서 있던 여성이 나를 불렀다.
"인상적입니다, 닥터 태드."
프라티마 란잔. CORTEX 신경윤리팀장. 눈이 날카롭고, 어깨가 곧았으며, 태블릿을 마치 방패처럼 가슴 앞에 세로로 안고 있었다.
"잔류 데이터 처리 프로토콜은 마련되어 있습니까? IRIS가 수집하는 타인의 생체 정보에 대한 수집, 저장, 삭제의 프로토콜이요."
나는 이 질문을 받기 전까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을 깨달았다.
"개발 중입니다."
말투는 정중한 질문이었지만, 그 안에 물러설 여지는 없어 보였다. 그녀가 타인의 생체 정보를 묻는 바로 그 순간에도 IRIS는 그녀의 심박을 읽고 있었다. 62. 긴장이 없는 사람이거나, 긴장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사람이거나. 프로토콜이 없다는 답변을 들으면서도 심박이 변하지 않았다. 마치 이미 그 답을 알고 온 사람처럼.
안타깝게도 나는 이 질문을 그날 안에 잊었다. IRIS의 다음 확장이 더 급했으니까. 프라티마가 돌아서면서 어깨가 곧은 채로 복도를 걸어갔다. 무언가를 준비하는 사람의 등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읽었다.
Nature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그다음 Science. 그다음 언론.
"CORTEX의 IRIS, 인간 시각의 한계를 돌파 '초인간 시각'의 시대 열리나"
솔직하게 쓰자면, 기사를 반복해서 읽었다. 세 번, 다섯 번, 그리고 셀 수 없이. IRIS가 단순히 시각을 '복원'한 것이 아니라 '초월'했다는 것. 나 자신이 되찾은 것 이상의 것을 얻었다는 증표였다. 화면 위의 활자가 내가 듣고 싶던 말을 정확히 해주고 있었다. 인간의 한계를 넘었다는 것. 바로 내가.
오만이었을까. 그때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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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상의 반응은 열광만이 아니었다.
SenseJustice가 성명을 발표했다. "IRIS는 감각 빈부격차의 최종 단계다. 세계 인구의 0.01%만 접근할 수 있는 초인간 감각. 이것은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불평등의 완성이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느끼지는 못하고 있었다. 인류 중 유일하게 적외선과 자외선을 동시에 보며 느끼고, 이해하고, 분석하고, 볼 수 있는 사람. 세상에 단 하나뿐인 눈을 가진 사람이 격차를 이해한다는 것은, 산 정상에서 고도차를 체감하라는 것과 같았다. 숫자는 읽을 수 있었지만 무게는 느낄 수 없었다.
데이비온은 즉시 이 뉴스를 레버리지로 사용했고, 기업 가치는 IRIS 발표 후 한 달 만에 3배가 되었다.
"연구에 집중해. 나머지는 내가 할게."
나는 '나머지'가 무엇인지를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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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IRIS의 기능이 더 확장되었다.
움직임 추적 해상도가 인간 시각의 4배. 눈의 시간 해상도는 약 60 헤르츠. IRIS는 240 헤르츠.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의 궤적이 연속된 정지 화면처럼 분해되어 보였다. 리사가 떨어뜨린 펜이 공중에서 회전하는 것을, 각 순간의 각도와 속도를 개별적으로 인식하면서 관찰할 수 있었다.
줌. 카메라 어레이의 광학줌을 뇌에 연동시켰다. 의도적 집중만으로 시야를 10배까지 확대할 수 있었다. 50미터 밖 사람의 표정을 읽는 것이 가능해졌다. 때로는 읽고 싶지 않은 표정까지.
암시야(dark vision). 카메라의 감도를 극대화하면 달빛만으로도 낮처럼 볼 수 있었다. 밤이 사라졌다. 밤이 사라진 뒤에 남는 것이 낮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어둠이 어둠이 아닌 것.
10개월 전의 어둠은 소리의 어둠이었다. 올리브 나무의 바람, 문턱의 높낮이, 아르티스의 발걸음. 비어 있지 않은 어둠. 암시야가 보여주는 어둠은 형태의 어둠이었다. 윤곽이 소리를 대신하는 어둠.
지금 IRIS는 어둠 자체를 제거하고 있었다. 밤을 낮으로 정복하고, 어둠을 정복한 대가로 어둠이 품고 있던 것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빛이 더 많아질수록 그림자가 옅어지듯, 보는 것이 늘어날수록 느끼는 것이 줄어들고 있었다. 감각의 영토를 시각이 조용히 점령하고 있었다.
빛을 되찾은 뒤에 빛 때문에 잃어버리는 것이 있다면, 처음의 상실은 무엇이었는가.
이것이 좋은 것인가.
이것이 좋은 것이라고 나는 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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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어느 날, 늦은 저녁. 예전처럼 산책을 가기 전에 아르티스와 대화를 나눴다.
"IRIS의 시야 범위가 더 넓어졌어."
"들었어요."
아르티스가 선글라스 위로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이며 등을 곧게 세웠다. IRIS의 적외선 필터가 그녀의 척추 주변 체온이 0.2도 상승한 것을 보여주었다. 근육이 긴장할 때 나타나는 패턴.
"적외선, 자외선, 그리고 이제 암시야까지. 인간이 볼 수 없던 것들을 보고 있어."
"..."
"아르티스, 이건 복원을 넘어선 거야. 증강이야. 우리가 인간 시각의 한계를 넘은 거야."
"네. 알아요."
"무슨 생각해?"
아르티스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시각이 돌아온 뒤에도 다행히 나는 이 사이의 질감을 아직은 읽을 수 있었다. 아르티스의 멈춤은 선택하는 것이었다. 어디까지 말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한 가지 물어볼게요."
"어."
"적외선이 보이기 시작한 날 올리브 나무의 소리를 들었어요?"
"..."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적외선 필터를 해제한 날. 연구실에서 세상이 온도의 색으로 번지는 것을 처음 보았다. 의자를 당겨 앉아 눈앞의 열 지도를 들여다보다가 시간의 흐름을 놓쳤다. 퇴근길에도 자율주행을 끄고 직접 운전했다. IRIS로 도로의 열 분포가 보였으니까. 집에 도착해서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논문 초안을 쓰기 시작했다. 밤새.
올리브 나무의 소리를 들었는가.
"... 모르겠어."
"예전에는 그 소리를 열두 가지로 구분했다고 했잖아요."
"그랬지."
"지금도 열두 가지가 들려요?"
나는 정직하게 대답해야 했다.
"모르겠어. 최근에 집중해서 들어본 적이 없어."
아르티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3초. 그리고 다음 질문이 왔다.
"커피 맛은요?"
"... 뭐?"
"예전에 어둠 속에서 마시는 커피의 층위를 열두 가지로 느낀다고 했잖아요. 지금도 그래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나도 알고, 아르티스도 이미 알고 있었다. 시각이 돌아오면서 혀 위의 해상도가 줄어든 것. 갈색이 맛보다 먼저 커피를 해석하기 시작한 것.
"이 둘은 같은 패턴이에요." 아르티스가 말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반음 낮았다. "청각도, 미각도 후퇴하고 있어요. IRIS가 시각을 확장할수록 다른 감각의 영역이 줄어들고 있어요."
"감각은 제로섬이 아니야. 주의 배분의 문제야. 적응하면 돌아와."
"돌아온다는 데이터가 있어요?"
없었다.
"자외선 증폭." 아르티스가 말을 이었다. "뇌가 IRIS의 설계를 넘어서고 있다고 했잖아요. 자외선 스펙트럼을 자체적으로 증폭하고 있다고."
"그래. 뇌의 가소성이야. 좋은 일이지."
"좋은 일인지는 결과를 봐야 알아요." 아르티스의 손가락이 커피잔의 테두리를 따라 움직였다. 점자를 읽듯이 도자기의 곡면을 더듬는 것. "지금은 결과를 모르잖아요. 뇌가 스스로 변형되고 있는데 어디까지 변형될지 예측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관찰하고 있는 거야. 데이터를 모으고 있어."
"데이터를 모으는 동안에도 뇌는 계속 변하고 있어요."
"..."
"달시."
아르티스가 나를 이름으로 불렀다. 이것은 드문 일이었다.
"IRIS를 멈춰요."
형광등의 120 헤르츠 울림이 갑자기 선명하게 들렸다. 지잉. 지잉. 지잉.
IRIS가 아르티스의 심박을 읽었다. 68. 평소와 같았다. 이것은 충동이 아니라 숙고의 결론이었다.
"... 뭐라고?"
"이상하게 동작하면 중단한다고 했잖아요. 약속했잖아요."
두 달 전의 전화 통화가 떠올랐다. 수술 전날 밤, 아르티스의 목소리. 이상하게 동작하면 중단해요. 약속해요. 어둠 속에서 들은 그 목소리는 지금보다 무거웠다. 내 대답은 가벼웠다. 약속할게.
아르티스의 손이 테이블 위에서 움직였다. TouchRead BCI의 표면을 훑는 동작. 그녀가 불안할 때 하는 것. 자기 뇌의 언어를 가르친 기계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이 사람은 나보다 오래 생각해 왔을 것이다.
"범위를 말해줘. 뭘 멈추라는 거야?"
"확장을 멈춰요. 정상 시각 범위로 돌아가고, 뇌의 변화를 관찰할 시간을 가져요."
아르티스가 직접적으로 요구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10개월간 IRIS 프로젝트에서 그녀는 데이터를 제공하고, 분석을 검토하고, 우려를 표명했다. 하지만 멈추라고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었다.
나는 의자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의자가 삐걱거리면서 끼익 소리를 냈다.
"후퇴가 전진보다 위험할 수 있어. 이미 형성된 신경 경로를 강제로 비활성화하면 예측 불가능한 퇴화가 일어날 수 있어. IRIS의 확장은 뇌가 자체적으로 선택한 경로야. 그 경로를 끊는 것은 끊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위험을 만들 수 있어."
나는 숨을 쉴 틈 없이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야. 전 세계에 4억 명의 시각장애인이 있어. IRIS가 성공하면 그들 모두에게 길이 열려. 지금 멈추면 그 길이 닫혀."
아르티스의 어깨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의자 등받이 쪽으로 반 센티미터. 후퇴하는 몸이었다. IRIS의 적외선이 이것을 감지했다. 나는 이것을 보며 의미를 따라가지는 않았다.
"데이터가 위험을 보여주면 즉시 멈출게. 약속해."
"데이터가 위험을 보여줄 때는 이미 늦을 수도 있어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르티스도 더 말하지 않았다.
이전의 침묵은 열려 있었다. 문이 닫히지 않은 방의 고요. 지금의 침묵은 닫혀 있었다. 문이 닫힌 뒤의 고요. 같은 고요였다. 그런데 피부가 알았다. 온기가 없다는 것을.
"알겠어요."
아르티스가 늘 사용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번 것은 차가웠다.
"... 산책 갈까?"
"오늘은 괜찮아요."
그 말을 끝으로 아르티스는 평소보다 세게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도자기가 나무 표면에 부딪혀 짧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문 앞에서 반 초 멈추었다. 그녀의 뒷모습에서 어깨의 각도가 달라진 걸 IRIS가 보여주었다. 들어올 때의 어깨는 열려 있었다. 나갈 때의 어깨는 안으로 말려 있었다. 같은 뼈와 같은 근육이었지만, 다른 사람의 어깨였다.
문이 닫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옛날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다. 인디애나에서도 익숙한, 익숙해서 싫은, 이 소리를 들었다. 여덟 살. 어머니가 야간 근무에 나가면서 현관문을 닫을 때 자물쇠 돌아가는 소리. 나는 그 시간에 종종 혼자 라면을 끓여 먹었다. 냉장고에 한국어로 적힌 메모가 붙어 있었다. "3분만 끓여." 하지만 허기진 마음을 가진 소년의 밤에 3분이라는 시간은 조그만 방보다 넓었다. 설익은 라면을 호호 불며 허겁지겁 다 먹고 나서도 빈 냄비를 한참 동안 안고 있었다. 아직 따뜻했으니까. 새벽 두 시에 문이 열리면 어김없이 병원 소독제 냄새가 먼저 다가온 뒤 어머니의 목소리가 따라왔다. "아직 안 잤어?" 항상 같은 질문. 늘 같은 거짓말. "방금 일어났어."
아르티스가 산책을 거절했다.
시각이 돌아오면서 나는 다시 표정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르티스에게는 표정이 없었다. 선글라스 뒤의 얼굴은 시각적으로 읽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나는 10개월간 소리로 그녀를 읽었다. 지금 시각으로 읽으려 하면서 오히려 그녀를 놓치고 있었다.
시각의 독재.
아르티스가 처음 만난 날 말한 것. "시각은 독재자예요." 다른 감각을 억누르고, 시각만으로 세계를 해석하려 하는 것.
아르티스는 일전에 약속한 대로 중단을 요구했지만 내가 거부했다. 나는 다시 암흑 속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나는 이 독재에 다시 복종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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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IRIS의 세 번째 확장이었다.
데이터 오버레이. IRIS의 카메라가 촬영한 실시간 영상 위에 디지털 정보를 겹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의 얼굴을 보면 이름, 직함, 최근 이메일 이력이 시야에 떠올랐다. 건물을 보면 구조 정보, 에너지 효율 등급, 소유자 정보가 겹쳐졌다. 세상이 데이터의 레이어로 코팅되었다. 라미네이팅 된 세상 속 투명한 비닐 아래에서 모든 것이 반짝거렸지만, 손을 뻗으면 비닐만 만져졌다.
이것은 기존의 AR (증강현실)과 달랐다. AR은 화면 위의 레이어였다. 스마트글라스조차 결국 눈앞에 떠 있는 반투명한 이미지에 불과했다. 인식과 정보 사이에 미세한 간극이 있었고, 뇌는 그것을 '겹쳐진 것'으로 처리했다. IRIS의 오버레이는 뇌 안에서 생성되었다. 보이는 것과 데이터가 하나의 인식으로 통합되었다. 나무를 보면서 동시에 나무의 종, 수령, 건강 상태를 '아는' 것. 보는 것이 곧 아는 것이 되는 경험.
나는 이 삶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세상이 투명해지는 느낌이었다. 모든 것이 읽혔다. 사람의 얼굴에서 미세 표정을 읽고, 그 위에 그 사람의 데이터가 겹쳐지고, 적외선으로 체온 변화를 보면서 거짓말 여부를 추정하는 것. 누군가와 대화하면서 그 사람에 대해 상대가 말하지 않은 것까지 알 수 있는 것.
어느 날 리사와 대화하다가, 그녀의 얼굴 위로 인사 기록과 최근 논문 피인용 수가 겹쳐졌다. 리사가 웃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웃음을 보지 못했다. 데이터가 표정을 덮고 있었다.
문득 이것이 보는 것인지 감시하는 것인지, 이해하는 것인지 분석하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지만, 그럴 새도 없이 의식은 다음 목적지에 도달해 있었다.
질문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할 수 없었다. 너무 많은 것이 보이고 있었다. 시각의 폭포가 쉬지 않고 쏟아지고 있었고, 그 물살 아래에서는 어떤 목소리도 제 소리를 유지할 수 없었다. 아르티스의 질문도 그 물속에서 흐려지고 있었다.
당신은 무엇을 보고 싶어요?
나는 "모든 것"이라고 답했었다. 그리고 지금 정말로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인간이 볼 수 없던 것까지. 이것이 내가 원한 것이었다.
그런데 왜 완벽하지 않은 느낌이 드는 걸까.
이 느낌은 데이터가 아니었기 때문에 측정할 수 없었다. IRIS로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들.
이 단어가 아르티스와 산책하던 때는 다른 의미였다. 그때의 '보이지 않는 것들'은 아르티스의 발소리가 만드는 리듬, 함께 걷는 고요 속에 흐르는 체온, 나란히 놓인 손등 사이의 3센티미터. 눈이 아닌 곳으로 감지되는 것들이었다. 측정의 그물을 빠져나가는 것들.
지금 나는 그것들을 잊어가고 있는가.
인간의 눈은 1%를 보면서 전부를 본다고 믿는다. IRIS는 이 범위를 몇 배로 넓혔다. 2%? 5%? 하지만 여전히 전부가 아니었다. 그리고 어쩌면 전부를 본다는 것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 생각이 12월의 어느 밤 잠들기 전에 스쳤다.
그날 밤, IRIS를 끄고 누웠다. 어둠이 돌아왔다. 하지만 눈을 감기 직전, 잔상이 형체를 가졌다. 0.5초. 여성의 윤곽. 눈을 비비고 다시 감았다.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형광등의 잔상이겠거니, 나는 그렇게 판단하고 눈을 감았다.
다음 날 아침 IRIS가 다시 켜지고 세상이 데이터의 레이어로 빛나기 시작하면서 어둠을 물리쳤다.
초월한 시각은 질문도 초월하고 있었다. 더 많이 볼수록 더 적게 묻게 되었다. 보는 것이 곧 아는 것이 되는 세계에서 질문은 불필요한 마찰처럼 느껴졌다. 답이 눈앞에 있는데 왜 묻는가.
인간의 눈은 1%를 본다. IRIS는 그 창을 넓혔다. 하지만 창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이 질문에 도달하기까지, 나는 아직 많은 것을 잃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