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13 잔상

[2부. 기계의 눈]

by 새보음

Ch.13 잔상



눈을 감았다 뜨면 찰나의 잔상이 남는다. 이것을 양성 잔상(positive afterimage)이라고 한다. 망막의 광수용체가 이전 자극을 잠시 유지하기 때문이다. 정상 시각의 정상 현상이다.




IRIS에는 망막이 없다.




잔상이 있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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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3년 2월, IRIS 가동 후 5개월째였다.


처음 나타난 것은 연구실의 복도에서였다.


그날 아침 로비에서 루이스가 평소와 같이 인사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닥터 태드." 게이트 옆의 같은 자리에서, 같은 톤으로. IRIS가 보여주는 그의 심박은 64. 불안이 없는 사람의 수치. 나는 "좋은 아침이야" 하고 대답하면서 IRIS의 오버레이가 그의 근무 기록, 입사일, 전역 경력까지 띄우는 것을 보았다. 실명 시절에는 그의 목소리가 건물의 첫 번째 좌표였다. 왼쪽에서 오는 바리톤이 로비의 크기와 방향을 알려주었고, 그 목소리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지금은 데이터가 목소리를 덮고 있었다. 숫자들이 그의 얼굴 위에 떠 있었고, 인사의 톤은 숫자 아래에 묻혔다. 이미 모든 것이 보이는 건물에서 좌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오후 3시. 복도를 걷고 있었다. 왼쪽 창문으로는 캘리포니아의 오후 빛이 비스듬히 들어오고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연구실 문들이 줄지어 이어졌다. 리놀륨 바닥에 구두가 닿을 때마다 그 소리가 유리와 철제 문짝 사이를 오가며 복도를 가득 채우며 가로질렀다. 내 소리만.


그때 복도 끝에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IRIS의 데이터 오버레이가 작동했다. 하지만 그 형체에 대한 정보가 뜨지 않았다. 이름도, 데이터도 없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직원일 수 있었다.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지 않은 방문자.




하지만 가까워지면서 이상함을 느꼈다.




형체가 흐릿했다. IRIS의 해상도 문제가 아니었다. 다른 모든 것은 선명했다. 벽, 바닥, 창문, 소화기. 하지만 이 형체만 다른 해상도에 속해 있었다. 경계에서 픽셀이 번지듯 주변 배경과 섞이고 있었고, 색이 탁했다. IRIS가 처리하는 현실의 색 공간과 다른 색 공간에서 온 것처럼, 레이어가 다른 이미지가 하나의 화면 위에 겹쳐진 것이었다.


여성이었다. 나이는 판별하기 어려웠고 검은 머리카락에 작은 키였다. 얼굴의 해상도가 균일하지 않았다. 머리카락은 한 올 한 올 셀 수 있을 만큼 선명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끝단의 갈라짐, 두피에 닿는 뿌리의 각도까지. 나는 예전의 습관대로 분해하려 했다. 색소의 밀도, 굴곡의 반경, 빛의 반사율.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시선이 이마를 넘어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 분해가 멈추었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눈이 없었다. 움푹 파인 것도, 감긴 것도 아니었다. 피부색 노이즈가 눈꺼풀의 경계를 지우고 그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없어야 할 것이 있는 얼굴이었다. 입은 윤곽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는데, 그 안쪽이 비어 있었다. 어둠도, 혀도, 이도 없는 빈 공간. 렌더링이 포기한 영역처럼 텍스처 없는 검정이 고여 있었다. 이것에는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


걸음이 느려졌다. 멈추고 싶었지만 다리가 멈추는 법을 잊은 것처럼 한 발, 한 발 앞으로 갔다. 아까까지 복도를 채우던 구두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심장이 그 자리를 대신 채우고 있었다. 목 뒤로 무언가가 훑고 지나가는 감각과 함께 손가락 끝이 차가워졌다.




5미터. 형체가 사라졌다.




사라졌다. 어둠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빛 속에서 녹아내린 것처럼. 윤곽이 흐려지다가, 배경의 픽셀에 흡수되듯. 0.3초 만에. IRIS의 로그에는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았다. 카메라가 촬영하지 않은 것을 뇌가 보여준 것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Aria, 지금 시간."


"오후 3시 12분입니다."


"복도에 CCTV 있어?"


"2층 복도에 보안 카메라 2대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 위치의 영상을 확인해 줘."


"접근 권한이 필요합니다. 노라 칼라일의 승인이 —"


"됐어."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심박이 올랐고 손바닥이 젖었다. 무릎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것을 인정한 것은 한참 뒤였다. 목 안쪽에서 무언가가 올라오고 있었다. 이름이었다. 22년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던 이름. 나는 그것이 성대에 닿기 전에 '기계 오류'라는 네 글자로 덮었다. 과학자에게 이름 붙이기란 퇴마 의식과 같았다. 현상에 이름을 붙이면 유령이 사라진다.


IRIS의 AI 변환 엔진이 잡음을 패턴으로 잘못 해석한 것이다. 파레이돌리아. 인간의 방추상회는 두 개의 점과 하나의 선만으로도 얼굴을 조립한다. 콘센트의 두 구멍이 눈이 되고, 화성 표면의 그림자가 거대한 얼굴이 되는 것처럼. 생존을 위해 진화가 뇌에 새겨 넣은 과민 반응이었다. IRIS의 합성곱 신경망도 같은 편향을 물려받았을 수 있었다. 센서의 열잡음이 특정 형태로 뭉치면, AI는 그것을 의미 있는 윤곽으로 읽는다. 없는 얼굴을 만들어낸다.


기계 오류. 이것이 내가 빠르게 내린 진단이었다. 너무 빠르게.


하지만 그 형체의 인상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익숙함이었다. 어디서 본 적 있다는 정도가 아니라, 오래전에 알고 있었다는 종류의. 특정할 수 없는데 확실했다. 뇌가 부정하는 것을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그 기시감만이 복도의 오후 빛 속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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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1주일 뒤 집에서였다.


밤이었다. 서재에서 IRIS의 암시야 모드가 어둠을 걷어내고 있었다. 책장의 나뭇결, 책상 위 커피잔의 원형 자국, 창틀에 쌓인 먼지까지. 이 방에 어둠은 없었다. IRIS가 허락하지 않았다.


책상 위에서 IRIS의 로그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었다. 음성 명령으로 데이터를 호출하고, 시야에 겹쳐진 레이어를 하나씩 검토하고. 뇌가 숫자에 잠겨 있던 시간이었다.


시야의 주변부에서 움직임이 있었다.


왼쪽. 서재의 문 근처. 고개를 돌렸다.


같은 형체.


이번에는 더 선명했다. 여전히 흐릿하지만, 1주일 전 복도에서 본 것보다 윤곽이 잡혀 있었다. 작은 키의 검은 머리카락 여성. 그리고 이번에는 옷이 보였다. 흰색 계통의 원피스. 1990년대, 혹은 2000년대 초반의 오래된 스타일.


형체가 나타난 순간, 냄새가 왔다. IRIS는 냄새를 만들 수 없다. 카메라와 전극과 AI로 이루어진 시스템에 후각은 없다. 하지만 뇌에는 있었다. 비누. 말린 빨래. 인디애나 아파트의 문을 열면 밀려오던 냄새. 서재의 건조한 공기는 변하지 않았다. 에어컨이 내보내는 무취의 바람만이 피부를 스치고 있었다. 냄새는 코로 온 것이 아니었다. 뇌가 20년 넘게 밀봉해 두었던 것을 열어버린 것이다. 후각은 시상을 거치지 않고 편도체에 직접 닿는다. 이름보다 먼저 오고, 분석보다 오래 남는다. 그래서 막을 수 없었다.




형체가 나를 보고 있었다.




IRIS의 시선 추적이 감지한 것이 아니었다. 이 형체는 뇌 내부에서 생성되고 있었다. 뇌가 '이것이 나를 보고 있다'는 정보를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데도 피부가 반응했다. 존재하지 않는 시선의 무게를 느끼며 이마와 볼과 턱에 온기 같은 것이 번졌다.


형체가 입을 움직였다. 소리는 없었다. 입모양으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IRIS의 오버레이가 분석을 시도했다. "인식 불가." 나는 입모양을 읽으려 했다. 읽을 수 없었다. 눈이 없는 얼굴이 말을 하고 있었다.


3초 뒤, 형체가 사라졌다.


이번에는 기계 오류라는 네 글자가 올라오지 않았다.


두 번의 같은 형체. 같은 인상과 같은 익숙함. 그리고 이번에는 냄새까지.


그 순간 Aria가 알림을 전달했다. 노라 칼라일: "사고 관련 조사에 진전이 있습니다. 시간 내주십시오." 서재의 공기가 아직도 비누 냄새를 머금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은 안 됩니다." 노라: "오래 미루지 마십시오."


과학자의 본능이 나를 가까스로 붙잡았다. 분해할 수 있는 것이 남아 있다면, 아직 괜찮았다.


IRIS의 신경 활동 로그를 호출했다. 형체가 나타난 정확한 시간의 뇌 활동 패턴을 분석한 결과, 고차 시각피질 V4와 V5에서 비정상적 자발 활성이 기록되어 있었다. 외부 카메라 입력 없이 뇌가 자체적으로 이미지를 생성한 것이다.


하지만 패턴이 이상했다. 자발적 환각이라면 세부가 반복될 때마다 변해야 했다. 같은 형체가 같은 디테일로 두 번 나타나는 것은 뇌가 즉흥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이 패턴에는 출처가 있었다.


"마이클."


밤 11시였지만 전화했다. 손가락이 화면을 두 번 잘못 누른 뒤에야 통화 버튼에 닿았다.


"IRIS의 뇌 활동 로그를 확인해 줘. 오늘 오후 10시 47분의 V4, V5 활성 패턴."


마이클이 원격으로 접속했다. 5분. 그 5분 동안 서재의 시계 소리가 처음으로 들렸다.


"... 이상하네요. 이 패턴이 CORTEX의 메모리 브릿지 데이터와 유사합니다. 기억 데이터의 신경 서명(neural signature)과 유사도 73%."


"내 IRIS는 메모리 브릿지와 연결되어 있지 않아."


"물리적으로는요. 하지만 IRIS의 AI 학습에 아르티스의 뇌 데이터를 사용했잖아요. 같은 학습 파이프라인에서 메모리 브릿지의 기억 데이터도 처리된 적이 있어요. 잔류 가중치가 배치에 미세하게 포함되었을 가능성. 0.001% 수준이라 정상적으로는 뇌가 감지하지 못해요."


"내 뇌가 증폭했어."


자외선을 처음 감지했을 때와 같은 메커니즘이었다. 이번에는 카메라 데이터가 아니라 학습 데이터의 잔류가 뇌에 의해 이미지로 변환된 것. 다행이었다. 이름을 붙일 수 있었고, 이름을 붙이면 설명할 수 있었다. 아직은.


"그 잔류 데이터가 누구의 기억이야?"


"서버 로그를 확인해야 해요. 환자 기밀이라..."


"확인해 줘."


"...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서재의 밤. IRIS가 켜진 채로 방 안의 모든 것을 낮처럼 보여주고 있었다. 책장의 나뭇결, 커피잔에 맺힌 물방울, 천장 모서리의 거미줄까지. 어둠이 없는 방이었다. 그런데 보이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방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피부에 닿는 공기의 밀도가 달라 숨을 들이쉴 때 폐가 평소보다 늦게 따라왔다. 어둠보다 무거운 것이 내려앉고 있었다.


형체가 기억이라면. 누군가의 기억이 내 뇌에서 이미지로 재생되고 있다면.


그 여성은 누구인가.


왜 나에게 익숙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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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그 다음날, 연구실에서였다.


이번에는 형체가 아니라 풍경이었다.


회의 중이었다. 리사가 IRIS의 다음 버전 사양을 발표하고 있었다. 화면에 수치와 도표가 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보고 있었다. 보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슬라이드 위에 다른 이미지가 겹쳐졌다.


들판이었다. 여름의. 풀이 허리까지 자란 들판 속 풀잎 끝에 햇빛이 걸려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그 빛이 물결처럼 이동했다. 회의실의 천장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넓게 펼쳐진 하늘 아래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아이의 웃음소리가... 아니, 소리는 없었다. 이미지만 있었다. 하지만 이미지 안에 소리의 기억이 접혀 있었다. 아이의 웃음소리. 바람에 풀이 서로 스치는 소리. 여름의 소리들이 눈으로 들리고 있었다.


이 들판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내 기억에 없는 풍경이었다. 인디애나의 들판과도 다르고, 캘리포니아와도 달랐다. 풀의 종류가 달랐고, 흙의 색이 달랐다.


이미지가 5초간 지속되었다가 사라졌다. 리사의 슬라이드가 돌아왔다.


"달시? 괜찮아요?" 리사가 물었다.


"... 괜찮아. 계속해."


괜찮지 않았다. 테이블 아래에서 양손을 깍지 끼었다. 손가락 사이로 땀이 밀려 나왔다. 내 머릿속에 내 것이 아닌 기억이 재생되고 있었다. 들판. 아이의 웃음. 여름. 이것은 누구의 기억인가.


그리고 이전의 형체가 떠올랐다. 여성. 검은 머리카락의 작은 키. 흰색 원피스.


이 조각들이 연결되기 시작했다.


아직 불명확했지만 느낌은 있었다. 직감이라는, 과학자가 신뢰하지 않는 것이. 이 형체와 이 풍경이 같은 사람의 기억이라는 직감과 그 사람이 나와 관련이 있다는 직감. 가슴 안쪽, 갈비뼈 아래에서 무언가가 조여 오고 있었다.


나는 이 직감을 억눌렀다. 먼저 데이터가 필요했다. 마이클의 서버 로그 분석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그날 밤 잠들기 전에 네 번째가 왔다. 이것은 달랐다. 복도였다. 형광등이 길게 이어진 복도. 누군가의 등이 보였다. 보안 카드를 목에 걸고 걸어가고 있었다. 걸음이 빨랐다. 어딘가를 향해 서두르고 있었다. CORTEX의 복도와 비슷했지만 같지 않았다. 벽의 색이 다르고, 천장이 더 낮고, 형광등의 빛이 더 차가웠다. 병원 복도 같았다. 이것의 출처를 나는 설명할 수 없어 뇌의 창작으로 애써 분류하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억누를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 여성의 모습이 나타날 때마다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선명해질수록, 윤곽이 잡혀갈수록, 도망칠 곳이 줄고 있었다.




그녀는 어머니를 닮아가고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의 결.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기울이는 습관. 어깨의 높이. 하나씩 맞아 들어갈 때마다 22년이라는 거리가 단숨에 줄어들어 16살의 내가 마지막으로 본 얼굴이 되돌아오고 있었다.


목 뒤가 서늘해졌다. 등을 타고 내려가는 냉기가 척추를 따라 허리까지 닿아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렸다. 손이 떨렸다. 이불 위로 나온 손가락이 하얘져 있었다. IRIS가 뇌의 경계를 열었지만, 열린 문으로 들어온 것은 빛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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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4일, 마이클이 보고했다.


"서버 로그를 분석했습니다. IRIS의 AI 학습 데이터에 메모리 브릿지의 잔류 데이터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전체의 0.0003%."


"출처는?"


마이클이 멈추었다.


"환자 번호 001."


001.


어머니.


CORTEX 메모리 브릿지의 첫 번째 기록이었다. 2021년. 어머니가 스스로 시작하고, 내가 마지막을 이어받은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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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치매 말기의 어머니가 사망하기 직전, 어머니가 시작한 것을 열여섯의 내가 이어받았다. 어머니가 더 이상 스스로 전극을 붙일 수 없게 되었을 때, 내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관자놀이에 패드를 붙였다. 어머니의 피부는 마른 종이 같았으며 관자놀이의 혈관이 종이 아래 비치듯 푸르게 드러나 있었다. 패드를 누르는 손끝에 맥박이 느껴졌다. 약하고 불규칙한, 꺼져가는 리듬. 기술은 부족했고 장비는 대학 연구실에서 빌려온 것이었지만, 어머니의 의지가 있었다. 그렇게 어머니의 뇌에서 마지막 신경 패턴을 추출했다. 원시적이고 파편적인 불완전한 데이터. 기억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조각들.


이 데이터를 나는 22년간 보관하고 있었다. CORTEX의 서버 한 구석에. 메모리 브릿지 기술이 발전하면 언젠가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서버를 이전할 때마다 이 데이터만은 직접 옮겼다.


하지만 기술은 아직 이 데이터를 복원할 수 없었다. 너무 원시적이었고, 너무 파편적이었다.




그런데 IRIS가.




IRIS의 AI가 학습 데이터를 서버에서 받을 때, 어머니의 잔류 데이터가 극미량 포함되었다. 그리고 내 뇌가 IRIS를 통해 이 극미량을 증폭하여 이미지로 변환하고 있었다.


내 뇌가 어머니의 기억 조각을 보고 있었다.


복도에 서있던 어머니. 어머니의 들판. 어머니의 기억 속 어딘가의 여름. 병원 복도를 걸어가던 어머니의 등.


나는 이것을 기계 오류로 더 이상 분류할 수 없었다.


기계 오류가 아니었다. 기계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고, 데이터의 잔류가 있었으며, 뇌가 이것을 증폭하여 이미지가 생성되었다. 기술적으로는 설명 가능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 '설명 가능한 과정'의 결과가 22년 전에 죽은 어머니의 모습이라는 것.


기술인가. 기적인가. 지도가 영토의 전부가 아니듯, 기술이 이 경험의 전부가 될 수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온 것인가. 이 질문이 찰나에 머물렀다. 분석이 차단하려 했지만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뇌가 닫으려는 문을 몸이 붙잡고 있었다. 어머니의 데이터는 서버에 있었지만 어머니는 서버에 없었다.


어머니가 서버에 있기 전에는 부엌 식탁에 있었다. 매일 밤. 영어 의학 교과서를 펼쳐 놓고 단어를 소리 내어 읽었다. 발음이 어색한 채로. 식탁 위의 형광등이 교과서의 얇은 종이를 비추면 뒷면의 해부도가 비쳐 보였다. 나는 숙제를 하는 척하면서 어머니의 입모양을 보았다. 같은 단어를 세 번, 네 번. 한국에서 의대를 졸업한 사람이 미국에서 다시 시험을 치러야 했고, 마침내 세 번째 시도 끝에 합격했다. 처음 두 번은 말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다. 인디애나의 작은 병원이 검은 머리카락의 외국인 의사에게 야간과 주말과 공휴일을 배정했지만, 어머니는 불평하지 않았다. 새벽에 돌아오면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 소리가 났다. 조용히, 나를 깨우지 않으려고. 하지만 나는 매번 그 소리를 듣고 나서야 잠들 수 있었다.




나는 과학자였다. 답은 '기술'이어야 했다.




눈을 감았다 뜨면 잔상이 남는다. 망막의 잔류.


어머니의 기억이 서버의 잔류 데이터로 내 뇌에 나타난 것은 다른 종류의 잔상이었다. 죽은 사람의 잔상. 기억이 사라진 뒤에도 어딘가에 남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것. 하드디스크를 포맷해도 자기장에 흔적이 남듯, 사람도 떠난 뒤에 어딘가에 잔류하는 것인가. 새벽에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 소리처럼. 듣는 사람이 없어도 매일 밤 울리는 소리처럼.


IRIS에는 망막이 없다. 잔상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있었다.


아직은 과학자의 편에 서 있었지만 경계가 흔들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서재의 책상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나무의 결이 손바닥에 닿았다. 여기가 현실이라는 것을 확인하듯 손가락 끝으로 결을 따라갔다. 옹이가 있는 곳에서 결이 소용돌이치다가 다시 평행으로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무는 변하지 않았다. 이 책상은 변하지 않았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 현관 앞에 섰다. 올리브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예전처럼 열두 가지 소리를 세어보려 했다. 잎이 서로 스치는 소리. 가지가 휘는 소리. 바람이 잎 사이를 빠져나가며 내는 낮은 휘파람 소리. 셋까지 세고 이내 멈추었다. 소리가 달라진 것이 아니었다. 바람에 실려오는 올리브 잎의 풋내 사이로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조용히. 나를 깨우지 않으려는 따뜻한 발소리처럼.




그 순간 Aria가 말했다. "노라 칼라일로부터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나는 듣지 않았다. 올리브 나무 사이에서 어머니의 발소리가 아직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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