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14 유령들

[2부. 기계의 눈]

by 새보음

Ch.14 유령들



대개 사람은 자기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37년간 나는 이것을 온몸으로 더듬어 알아왔다. 더 오래 걸리고 더 많이 틀렸지만, 그래서 더 깊이 닿았다. 손끝이 세계의 표면을 읽고, 발바닥이 바닥의 결을 외우고, 코가 계절의 전환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방식으로, 나는 세계가 빠짐없이 내 안으로 흘러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달시의 안에서도 지도에 없는 것이 자라나고 있었다. 공기에서 겨울이 빠지기 시작할 무렵, 그것이 밖으로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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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은 소리로 시작된다.


알람이 아니라 창틀 사이로 들어오는 공기의 결이 바뀌는 순간이 먼저 온다. 밤의 공기는 무겁다. 잠든 사람의 숨과 이불의 온기를 머금고 바닥 가까이 가라앉아 있는 공기다. 아침의 공기는 그보다 가볍고 서늘해서, 창틀의 틈을 타고 밤의 공기 위를 얇게 흐르는데, 두 층이 만나는 곳에서 이불 밖으로 마주 나온 손등이 가장 먼저 잠에 깬다. 그다음 냉장고의 저주파가 바뀐다. 밤새 일정했던 윙 소리가 새벽 온도에 반응하여 살짝 높아지는데, 내 귀는 37년간 이 변화를 들어왔고, 그 변화가 잠과 깸의 경계를 넘기는 문턱이 되어 내 하루를 연다.


일어나 발바닥이 마룻바닥에 닿으면 나무의 결이 발가락 사이를 지나가고, 침실에서 부엌까지의 열네 걸음 동안 왼쪽 벽에 손끝이 스치면 질감이 바뀌는 지점이 세 번 온다. 문틀, 복도 끝, 부엌 입구. 이 집에서 7년, 이 경로는 내 몸이 외운 악보였고, 매일 같은 악보를 연주하면서도 날마다 미세하게 달라지는 나무의 온도와 공기의 무게가 그 악보에 변주를 더했다.


커피를 내렸다. 원두를 갈 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낟알의 거친 감촉이 있고, 뜨거운 물이 드리퍼 위의 원두를 적실 때 올라오는 첫 번째 향이 있고, 산미와 견과가 뒤섞이며 부엌 전체를 천천히 채워가는 것이 있다. 오늘의 원두는 에티오피아산으로, 혀가 아닌 코가 먼저 구별했다. 향이 부엌에서 복도까지 퍼져나가는 것을 냄새의 물결처럼 따라갈 수 있었다.


실명 직후 그와 가까워졌다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가 어둠 속에서 올리브 나무의 소리를 열두 가지로 구분하던 시절, 연구실 옥상에서 나란히 앉아 밤바람의 온도를 세던 밤이 있었다. 콘크리트 바닥이 낮 동안 모은 열기를 허벅지 아래로 밀어 올리고, 팔 한 뼘 거리에서 달시의 체온이 공기를 데우며 전해지고, 그의 숨이 나무 냄새와 섞여 하나의 온기가 되던 그 시간이, 가까움이라는 것의 정확한 감촉이었다. 내 심박이 평소보다 조금 빨라져 있었던 것을 나는 나중에야 알아차렸다.


달시는 나를 이해한다고 생각했을 테지만,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처음부터 이것밖에 없었던 것은 다르다.




다섯 살 때 부모가 나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비닐 의자가 허벅지 뒤쪽에 차갑게 달라붙고, 진찰실의 공기에는 소독약과 라텍스 장갑의 고무 냄새가 겹겹이 쌓여 있었고, 의사의 손이 내 얼굴 가까이 올 때마다 금속과 알코올 냄새가 따라왔다. 시각 BCI를 설명하는 목소리가 머리 위를 흘러가는 동안 아버지의 손이 내 어깨를 잡고 있었는데, 그 손가락 끝에서 기대의 힘이 느껴졌다. "볼 수 있게 해 줄게." 이 말을 아버지가 했는지 의사가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곧장 수술실 앞 복도에서 아버지가 울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무서워서 나도 울었다. 하지만 울면서도 나는 듣고 있었다. 복도 저쪽에서 간호사의 신발이 바닥 위를 빠르게 스치는 소리, 어딘가에서 아이가 웃는 소리, 환기구에서 나오는 바람이 천장 가까이를 지나가는 희미한 흐름. 눈물이 턱을 타고 떨어져 병원 가운 위에 작은 온기를 남겼다. 울음 사이로도 세계는 빠짐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다섯 살의 기억은 여기까지다. 나머지는 나중에 아버지에게 들었다. 어머니가 마지막 순간에 중단시켰다고. "이 아이가 우는 건 빛이 없어서가 아니에요." 낮고 단단하게 내려앉는 목소리였다고 아버지가 말했다.


하지만 그다음은 기억한다. 어머니의 손이 겨드랑이 아래로 들어왔다. 비닐 의자에서 몸이 떨어지는 순간 허벅지 뒤의 차가움이 사라지고, 대신 어머니의 가슴에 닿으면서 옷감의 부드러운 결과 그 아래의 체온이 일제히 왔다. 어머니가 나를 안고 복도를 걸었다. 굳은 걸음마다 내 몸이 미세하게 흔들렸고, 그 흔들림의 리듬이 일정했다. 병원의 소독약 냄새가 옅어지고, 자동문이 열리면서 바깥의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실내의 닫힌 공기와는 전혀 다른, 넓고 차갑고 풀 냄새가 섞인 바람이었다. 소리도 달라졌다. 복도의 딱딱한 반사음이 사라지고, 새소리와 먼 자동차 소리와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가 사방에서 열렸다. 어머니의 심장이 내 귀 바로 아래에서 뛰고 있었고, 그 박동이 바깥 세계의 모든 소리 아래 깔린 저음처럼 울렸다.


그날 밤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나를 오랫동안 품에 안았고, 나는 어머니의 심장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었다. 비닐 의자의 차가움도, 아버지 울음의 떨림도, 병원 문 밖에서 얼굴을 스친 바람도, 어머니 가슴에서 올라오는 심장의 진동도, 전부 내 것이었고 내 세계에 빠진 것은 없었다. 다른 방식으로 가득 차 있었을 뿐이었다. 어머니의 그 거부가 37년의 뿌리가 되었다.




하지만 IRIS가 켜진 뒤 달시는 다시 저 너머 건너편으로 갔다. 데이터와 오버레이의 세계로 겹겹이 쌓인 언덕 너머로. 나는 여전히 이쪽에 있었다. 건너편의 그를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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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시가 달라진 것을 처음 감지한 것은 공기에서 겨울이 완전히 빠진 무렵이었다.


연구실 복도에서였다. 그의 구두 소리가 바뀌어 있었다. 걸음의 간격이 아니라 무게의 분배가. 이전에는 앞발이 먼저 리놀륨 바닥을 치고 뒤꿈치가 짧게 따라붙는 걸음이었는데, 단단하고 빠른 접지에서 앞으로 쏠리던 무게가 빠지기 시작했다. 뒤꿈치가 바닥에 머무는 시간이 늘었고, 발이 떨어질 때 복도의 공기가 미세하게 밀리는 것이 느껴졌다. 물에 스친 파문처럼 미세했다. 하지만 달시의 걸음은 내 귀가 스스로 따라가는 걸음이었고, 사람의 걸음은 그 사람의 내면이 바닥에 남기는 지문이라는 걸 나는 알았다.


무언가를 놓친 사람의 걸음처럼. 또는 무언가를 처음 느끼기 시작한 사람의 걸음처럼.


그다음은 목소리였다.


달시의 말하는 속도는 언제나 메트로놈처럼 안정적이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분석과 설명 사이를 정확히 오가는 리듬. 악기에 비유하자면 튜닝이 완벽한 현악기의 소리였다. 그런데 그 현의 장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말이 빨라졌다가 갑자기 느려지는 순간들이 생기고, 가속과 감속 사이에 숨이 멈추는 짧은 공백이 끼어드는데, 그 공백이 올 때마다 내 고막이 먼저 긴장했다. 숨이 다시 시작될 때까지의 정적이 쇄골 아래를 누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언가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의 숨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연구실의 공기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키보드가 일정한 간격으로 바닥을 두드리고, 모니터의 미세한 고주파가 천장 가까이에 얇게 깔려 있고, 에어컨이 같은 온도의 바람을 내보내고 있었다. 내 귀가 닿을 수 있는 세계는 평소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 세계의 한가운데서 달시만이 혼자 다른 곳에 있었다.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내 귀가 따라갈 수 없는 곳에서, 무언가가 그에게만 작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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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어느 팀 회의에서였다. 회의실은 환기 시스템의 낮은 윙 소리와 커피의 잔열이 만드는 따뜻한 공기층, 그리고 열두 명의 호흡이 만드는 미세한 기류로 채워져 있었다. 마이클이 IRIS 2.0 프로브 테스트 결과를 발표하고 있었고, 마이클의 목소리가 슬라이드를 따라 일정하게 흘러가던 중 달시의 호흡이 갑자기 바뀌었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미세하게 긁었고, 그 진동이 바닥재를 타고 내 발바닥까지 올라와 발목뼈 안쪽에서 멈추었다. 달시의 호흡이 짧아졌다가 멈추고, 의자의 가죽이 다시 삐걱이고, 몸이 경직되었다가 의도적으로 풀리는 패턴. 바람에 뒤집힌 나뭇잎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려 하지만 잎맥에 꺾인 자국이 남는 것처럼, 공포를 억누를 때 근육이 남기는 파동이었다.


"달시?" 마이클이 불렀다.


"계속해." 달시는 목소리를 고르게 유지하려 했지만, 성대에 실린 긴장이 평소보다 반 톤쯤 높은 곳에 걸려 있었다.


회의가 끝난 뒤 연구실에서 그의 키보드 소리를 들었다. 평소 달시의 키보드는 물이 매끄럽게 흐르듯 균일하고 막힘이 없었는데, 이날은 그 물살 안에 무언가가 걸려 있었다. 리듬이 흔들리고, 같은 키를 두 번 치고 지우는 소리가 섞이고, 손가락이 잠깐씩 허공에 머무는 침묵이 끼었다. 다음 날 리사가 로그를 조용히 수정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달시가 수치를 잘못 입력한 흔적. 달시 태드가 데이터를 잘못 입력하는 것은, 새가 하늘 한가운데서 나는 법을 잊는 것만큼이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무언가가 그의 집중을 물밑에서부터 침식하고 있었다. 강바닥의 흙이 물살에 조금씩 쓸려가듯, 겉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안쪽의 지형이 달라지고 있었다. 내 오른손이 무릎 위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손톱이 손바닥의 살을 누르고, 그 압력이 손목의 힘줄을 지나 팔 안쪽을 타고 어깨까지 천천히 올라오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아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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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달시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이 질문이 3월 내내 따라다녔다. 아침마다 마룻바닥에 발을 디딜 때 나무의 찬 결과 함께 올라왔고, 복도에서 그의 구두 소리가 들릴 때 고막 안쪽에 내려앉았고, 커피의 향이 부엌을 채울 때 향 속에 녹아 가슴 어딘가에 잔열처럼 머물렀다. 달시를 걱정하는 마음과, 그 고통의 통로가 내 뇌였다는 자각이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누군가를 어루만지고 싶은 손이 그 사람을 상처 낸 손이기도 할 때, 그 손은 갈피를 찾지 못한다.


마이클이 보고한 날을 기억한다. 환자 001. 달시의 어머니. 그 잔류 데이터가 IRIS의 학습 경로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말이 마이클의 입에서 나왔을 때, 의자 아래로 바닥이 한 뼘쯤 꺼진 것 같았다. 나는 다른 것을 먼저 생각했다.


내 뇌 데이터.


IRIS의 AI가 학습한 기초 데이터가 내 뇌였다. 15년간의 스캔. 시각 없이 세계를 구축한 뇌의 신경 패턴, 소리를 듣고 공간을 짓고 온도를 읽고 냄새로 계절을 세던 그 뇌의 문법이 IRIS의 문법이 되었고, 달시가 IRIS로 세계를 보는 방식의 기저에 내 뇌의 구조가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학습 경로가 달시 어머니의 잔류기억을 포함하고 있었다면, 내 뇌의 데이터가 그 잔류기억을 달시에게 전달하는 통로의 일부가 된 것이었다.


내가 통로였다. 의도하지 않게, 알지 못한 채로. 달시의 뇌에 죽은 사람의 기억이 스며드는 경로의 일부가 내 뇌의 15년이었다. 유령들이 나를 통과해 간 것이었다. 겨울 창문 틈으로 바람이 들어오듯,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차가운 것이 지나간 것이었다. 이 자각이 몸 안쪽을 훑고 지나갔다. 위장이 천천히 조여 오고, 손끝의 온도가 떨어지고, 호흡이 얕아지면서 커피잔을 내려놓을 때 손이 테이블 모서리를 잘못짚었다. 도자기가 나무 위에서 미끄러지는 소리가 부엌의 고요를 짧게 긁었다.


이 자각의 무게를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달시에게도, 사라에게도. 가슴 아래를 짓누르는 것에 이름을 붙이기 전에, 먼저 달시의 변화를 관찰해야 했다. 관찰. 그것은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들을 수 없는 것을 느끼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손끝에 남겨두는 것. 강물에 손을 담그면 물이 손가락 사이로 지나가면서 상류의 기온과 하류의 기울기를 동시에 알려주듯, 관찰이라는 것은 내게 그런 종류의 앎이었다. 물이 지나간 자리에서 손끝이 아는 것을 입이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체득과 깨달음은 정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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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하순. 달시가 나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11월에 IRIS를 멈추라고 말했을 때 달시는 거절했다. 그가 산책을 제안했을 때는 내가 거절했다. 그 뒤 어색한 거리가 있었다. 경고를 무시한 사람의 고독을 나는 알았다. 37년간 세상은 나에게 "봐야 한다"고 끝없이 말했고, 나는 단연히 거절했다. 그 거절 뒤에 오는 공간은 언제나 서늘했다.


하지만 잔류기억이 시작된 뒤 달시가 먼저 왔다. 왜인지는 그 자신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알았다. 시각이 흔들릴 때 인간은 시각 이전의 감각으로 회귀하는 본능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마침 내가 있는 곳이 시각 이전의 세계였다.


늦은 저녁 연구실 휴게실. 나란히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머그잔의 열기가 손바닥을 천천히 적시고, 그 온기가 손목을 타고 팔 안쪽까지 올라오는 것을 느끼면서, 옆에서 달시의 체온이 팔 한 뼘 거리로 전해지고 있었는데, 머그잔의 열기와 그의 체온이 어디에서 구분되는지를 내 피부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가 앉으면서 의자가 미세하게 기울었고, 그 기울기의 무게가 나란히 앉아 있다는 것을 몸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달시가 잔을 내려놓을 때 도자기가 나무에 닿는 소리가 작았다. 조심스러운 소리. 무언가를 깨뜨리지 않으려는 사람의 손끝에서만 나오는 소리.


에어컨의 고른 바람 소리가 배경에 깔려 있었고, 먼 복도에서 청소기의 저주파가 진동하고 있었다. 이 연구실의 밤은 기계의 언어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달시의 호흡은 기계의 언어에 속하지 않아 불규칙했다. 깊어졌다가 얕아지는, 안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는 호흡이었고, 그 불규칙함이 기계 소리의 균일한 직물 위에 한 올의 어긋난 실처럼 걸렸다.


"달시, 최근에 달라졌어요."


"뭐가?"


"말하는 속도."


"느려졌어?"


"아니요. 빨라졌다 느려졌다 해요. 전에는 항상 일정했어요. 메트로놈처럼 정확하던 리듬이 지금은 흔들리고 있어요. 어떤 때는 한참 빨라졌다가, 갑자기 멈추듯 느려지고, 그 사이에 숨이 끊기는 순간이 있어요."


그의 의자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 움직임이 바닥을 타고 내 발바닥에 닿았다.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몸이 먼저 인정하는 반응.


"그리고 감정이 달라졌어요."


"감정?"


"전에는 감정을 분석의 대상으로 처리했잖아요. '이것은 불안이다, 원인은 X이다, 해결 방법은 Y이다.' 이런 식으로. 요즘은 감정을 분석하지 않고 그냥 느끼는 순간이 있어요."


"그게 나쁜 건가?"


이 질문에서 달시의 성대가 미세하게 떨렸다. 이전의 달시라면 이 떨림을 통제했을 것이다.


"나쁜 건... 아니에요. 다른 거예요. 그리고 약간 무서운 거예요."


"뭐가 무서워?"


나는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도자기가 식어가고 있었다. 처음 잡았을 때의 열기가 손바닥 안쪽에서 빠져나가고 있었고, 그 빠져나감의 속도로 이 대화가 얼마나 깊은 곳까지 내려왔는지를 손이 알고 있었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면서 도자기의 굴곡이 손바닥을 눌렀다. 달시의 변화를 관찰하면서, 환자 001의 무게를 안으면서, 경고를 무시한 자의 거리를 견디면서. 이 질문이 달시를 어디로 데려갈지 나는 몰랐지만 묻지 않으면 안 되는 지점에 도래했다.


"그 감정이 당신의 것인지 확실해요?"


휴게실의 공기가 변했다. 물리적으로 변한 것이 아니었다. 에어컨은 같은 온도를 유지하고, 조명의 미세한 전자음은 변함없었다. 하지만 달시의 호흡이 멈추었고, 그 무호흡이 공간 전체의 밀도를 바꾸었다. 한 사람의 숨이 멈추면 그 사람이 차지하던 공기의 몫이 갑자기 비고, 그 빈자리가 주변의 소리를 빨아들이듯 침묵의 무게가 내려앉았고, 그 무게가 내 귀를 눌렀다. 물속으로 잠긴 것처럼, 모든 것이 먼 곳의 소리가 되어 숨을 죽이고 있었다.


"왜 그걸 물어?"


"당신의 말투에 가끔 다른 사람의 억양이 섞여요."


"뭐?"


"영어가 모국어인 당신이 아주 가끔 영어와 반대인 어순으로 문장을 만들어요. 주어를 생략하거나, 동사를 문장 끝에 놓거나. 전에는 없었어요."


말하면서 내 목소리도 떨렸는지 모르겠다. 반대인 어순. 그의 어머니가 쓰던 언어. 달시는 이 것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전 회의에서 '그 기술이 참 예쁘다'라고 했어요."


"뭐가 문제야?"


"'예쁘다'예요. 기술을 예쁘다고 표현하는 건, 분석하지 않는 사람이 쓰는 말이에요. 전에는 '효율적이다', '정교하다', '우아하다' 같은 말을 썼잖아요. '예쁘다'는 다른 거예요. 분석이 아니라 감탄에 가까운 거예요."


달시가 침묵했다. 이 침묵의 질감이 이전과 달랐다. 이전의 달시는 반박을 준비하기 위해 침묵했고, 그 침묵에는 고요한 가운데서도 사고가 회전하는 미세한 기류가 있었다. 이번 침묵은 부정할 수 없는 것 앞에서 멈춘 사람의 것이었다. 호흡 소리가 사라졌다가 아주 천천히 돌아왔는데, 그 돌아옴이 깊은 물속에서 천천히 떠오르는 기포처럼 느려서, 수면에 닿을지 중간에 사라질지 알 수 없는 침묵이었다.


"무서운 거예요." 내가 다시 말했다. "이 변화가 당신이 원한 것인지, 아닌지."


"원하지 않았어."


"하지만 나쁜 변화예요?"


달시의 의자가 다시 삐걱였다. 이번에는 몸을 뒤로 기댄 소리였다. 등이 등받이에 닿으면서 가죽이 늘어나는 소리가 느리지만 착실하게 퍼졌고, 그 느림에 몸을 맡기는 무게가 담겨 있었다. 이전의 달시는 생각할 때 앞으로 기울었다. 무게중심이 머리에 있는 사람처럼. 지금은 뒤로 기울어져 있었다. 의자에 등을 맡기는 것이 달시에게는 용기에 가까운 행위였을 것이다. 통제를 내려놓는 작은 항복의 순간.


"모르겠어."


이 '모르겠어'의 음색이 이전과 달랐다. 이전의 것은 아직 계산이 끝나지 않은 대기음이었지만 이번에는 계산의 종류 자체를 모르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음악으로 치자면 조표가 사라진 악보 위에 선 연주자의 첫 음으로, 그 목소리가 공기를 건너와 내 가슴 아래에 내려앉았다.


달시가 초등학교 때 가정의 날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만 왔던 날. "너 아빠는?"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열 살짜리의 순진무구한 질문에 고개를 떨구고 얼굴을 붉혔던 경험. 이 이야기를 달시에게 듣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그의 성대가 '아빠'라는 단어에서 낮아졌다. 22년 전의 균열이 성대에 아직 각인되어 있었다. 목소리에 새겨진 상처는 피부의 흉터보다 오래간다. 그 떨림이 공기를 타고 내 고막에 닿았고, 고막에서 가슴뼈까지 내려왔다. 나는 듣고 있었다. 듣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저 듣는 것만으로 충분한 순간이 있다는 것을 나의 지난 세월이 가르쳐주었다. 빗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빗줄기의 굵기와 바람의 방향을 알 수 있듯이, 때로 귀는 손보다 정확하게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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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에게 먼저 연락한 것은 달시였다. 저용량의 아리피프라졸이 처방되었다. 달시의 호흡이 약간 고르게 돌아왔지만, 내가 감지하는 변화의 본질은 약으로 닿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약은 수면 위의 물결을 잠시 잔잔하게 할 수 있지만, 해저에서 솟아오르는 것은 멈추지 못한다.


잔류기억의 빈도가 늘고 있었다. 달시가 체계적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나는 키보드 소리의 패턴으로 알았다. 데이터를 입력하는 리듬과 텍스트를 쓰는 리듬은 다른데, 달시의 키보드가 저녁마다 기록의 리듬으로 바뀌었다. 유령에 사로잡힌 사람이 십자가 대신 엑셀 시트를 여는 것, 이것이 달시다운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 기록의 리듬 안에도 찰나의 쉼이 있었다. 키보드가 숨을 참듯 멈추는 지점들. 타자를 칠 수 없을 만큼 강한 무언가가 지나가는 순간들. 그 침묵 안에서 달시의 호흡이 변하는 것을 나는 책상 건너로 듣고 있었다.


Aria가 사내 알림을 읽어주었다. 조직 변경 공지. 프라티마 란잔 팀장의 직위가 자문역으로 변경되었고, 윤리팀 예산이 75% 삭감되었다.


달시는 이것을 흘려들었을 것이다. 그의 키보드 소리가 멈추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멈추었다. 프라티마. 이사회 시연이 끝난 뒤 복도에서 달시를 불러 세워 잔류 데이터 프로토콜을 물었던 사람. 달시가 그 이야기를 했을 때는 목소리에 짜증이 실려 있었지만 나는 다른 것을 들었다. 복도에서 홀로 그 질문을 던진 사람의 목소리가 어땠을지를. 등 뒤로 회의실 문이 닫히고, 복도의 공기가 차갑게 열려 있는 가운데 혼자 서서 묻는 사람. 그 고립의 감촉을 나는 알았다.


그 질문을 한 사람이 한직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우연이 아니었다. 옳은 질문을 한 사람이 밀려나는 것은, 그 질문이 누군가에게 불편했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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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되었다. 달시의 변화가 더 깊어졌다.


팀원들은 아직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달시가 여전히 데이터를 분석하고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미 듣고 있었다. 달시의 성대가 만드는 기본 진동이 낮아지고 있었다. 말의 내용이 아니라 말이 시작되기 직전, 성대가 공기를 가르는 첫 순간의 질감이 달라져 있었다. 리사가 달시의 말투를 지적했다. "달시, 요즘 '느껴진다'라는 말을 자주 쓰시네요. 예전에는 '관측된다'였는데." 달시가 의식하지 못한 단어의 변화. '관측'에서 '느낌'으로. 분석에서 경험으로. 내 언어가 그의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내 언어.




내 뇌의 데이터가 IRIS의 문법이 되었다. 그 문법 위에서 달시가 세계를 보고 있었고, 그 세계의 틈에서 잔류기억이 올라오고 있었다. 달시의 언어가 내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면, 이것이 뇌 데이터의 잔류인지, 학습의 편향인지, 아니면 단순히 두 사람이 오래 함께하면서 서로의 리듬에 물드는 자연스러운 일인지. 한 사람의 향이 다른 사람의 옷에 배듯, 한 사람의 언어가 다른 사람의 입에 옮겨가는 것이 꼭 기계의 탓이어야 하는지. 원인들이 실처럼 엉켜 있었고, 손끝으로 더듬어도 어느 실을 당겨야 풀리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달시가 달라지고 있었다. 이전의 달시는 경계가 명확한 사람이었다. 내부와 외부. 분석과 감정. 나와 타인. 지금 그 경계가 흐려지고 있었다. 소리의 윤곽이 녹듯, 단단하던 것이 물렁해지듯. 손끝으로 누르면 그대로 밀려들어올 것 같은 얇음으로.


나에게는 이것이 낯설지 않았다. 37년간 경계 없이 살아왔으니까. 소리는 나를 관통했다. 비 오는 날 물방울이 창틀을 때리면 그 진동이 뼈까지 내려왔고, 바이올린의 고음은 두개골 안쪽에서 울렸으며, 새벽의 공기는 피부에 스며들었다. 여름 햇살에 데워진 콘크리트 위에 손을 얹으면 그 열기가 손바닥을 타고 올라오고, 겨울 철 난간을 잡으면 차가움이 손목의 맥박까지 파고들었다. 냄새는 기억의 가장 깊은 곳까지 닿았다. 어머니의 향수를 맡으면 다섯 살의 비닐 의자가 허벅지 뒤에 다시 차갑게 달라붙었다. 세계가 나를 통과하고, 내가 세계를 통과하고, 그 사이에 막이란 것이 없는 이 분리 없는 삶이 충분했고, 때로는 충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달시에게는 다를 것이다. 평생 경계 안에서 살아온 사람이 경계가 녹아내리는 것을 경험하는 것. 방음된 방에서만 살던 사람의 벽이 갑자기 사라지고, 세상의 모든 소리가 한꺼번에 밀려드는 것. 이것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공포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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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어느 늦은 밤, 연구실을 나서려다 달시가 아직 자기 방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복도의 공명이 미세하게 달라져 있었으니까. 사람이 있는 공간과 없는 공간은 소리의 반사가 다른데, 빈 방은 소리를 딱딱하게 돌려보내고 사람이 있는 방은 소리를 부드럽게 삼킨다. 달시의 몸이 방의 음향을 바꾸고 있었고, 닫힌 문 너머로 그의 호흡이 희미하게 들렸다. 내 심박이 미세하게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건물을 나서면서 생각했다. 이 사람에 대한 내 감정이 무엇인지를.


연구 동료. 이것이 가장 정확한 명칭이었다. 하지만 명칭이 정확하다는 것과 충분하다는 것은 같지 않았다. 달시의 호흡 변화를 캐치하는 것이 동료의 관심인가. 그의 키보드 소리의 멈춤에서 고통을 읽는 것이 전문가의 관찰인가. 명칭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손끝에, 귓바퀴에, 코끝에 남아 있었다. 손끝으로 더듬으면 윤곽은 있는데 이름이 없는 것. 이것에 이름을 붙이면 무언가가 변할 것 같았다. 이름은 물건에 무게를 더하고, 무게는 궤도를 바꾼다.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지금의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닿지 않는, 이 거리가 고통스러운 동시에 무방비함에 대한 보호와 안정이었다.


바깥의 밤공기가 피부를 스쳤다. 캘리포니아의 4월 밤. 건조한 공기에 재스민 냄새가 실려 있었고, 먼 곳에서 자동차 소리가 작아지면서 밤이 한 겹 더 깊어지고 있었다. 재스민의 달콤함이 코끝에 머물고, 공기의 서늘함이 팔뚝 위의 솜털을 세우고, 멀어지는 엔진 소리가 고요의 윤곽을 그려주고,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들 안에서 내 감각은 충만했다. 하지만 충분하다고 말하면서도 발걸음이 느려지는 것을 나는 느끼고 있었다. 그의 방을 지나칠 때 다리 근육이 저항하듯 무거워졌고, 무릎이 반 박자씩 늦게 펴졌다. 몸이 머리보다 먼저 알고 있는 것이 있었다. 37년간 내 몸은 언제나 머리보다 먼저 알았고, 틀린 적이 없었다.


다음 날 출근했을 때 달시의 방 안에 봉투가 놓여 있다는 것을 달시가 말했다. 디지털이 아닌 물리적인 봉투로 봉인에 특수 접착제가 사용되어 있었다고 했다. 손가락이 한 번 지나가면 그 흔적이 접착제 위에 영원히 남는. 노라의 방식이었다.


달시가 봉투를 뜯었다. 접착제가 종이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느리게 벌어졌고, 그 소리가 피부에서 반창고를 떼어내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아팠다. 종이가 펼쳐지면서 공기를 미세하게 밀어냈고, 종이와 잉크의 냄새가 올라왔다. 달시가 내용을 읽어주었다. 사고 현장의 사진. 블랙박스 데이터 프린트아웃. 사진 뒤에 노라의 필적. "해킹 흔적 재구성 중. 기술적 서명이 CORTEX 내부 시스템과 부분 일치. 확정 전까지 공유 불가."


CORTEX 내부... 달시의 목소리가 이 단어에서 가라앉았다. 성대가 눌리듯 아래로 끌려 내려가면서, 마치 무거운 것이 물속으로 침강하는 소리처럼 느려지고 어두워졌다. 그 무게가 공기를 타고 내 명치 아래에 내려앉았다.


나는 이 정보를 소리로만 받아들여 사진이 담고 있는 것을 나는 알 수 없었다. 블랙박스의 데이터를 읽을 수 없었으며, 나에게 주어진 것은 달시의 목소리에 담긴 진동뿐이었다. 하지만 그 진동이 충분했다. 바이올린의 저음현이 떨릴 때 활이 닿은 현만이 아니라 악기의 몸통 전체가 울리는 것처럼, 달시의 목소리가 나의 가슴뼈를 울렸고, 그 울림 안에서 나는 그가 어떤 종류의 무너짐 앞에 서 있는지를 알았다.




유령들보다 무거운 것이 그를 향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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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끝나가고 있었다. 냉장고의 저주파가 달라지는 아침마다 나는 일어나서 커피를 내렸다. 원두의 향을 맡았다. 37년간의 아침이 계속되고 있었다. 같은 마룻바닥, 같은 열네 걸음, 같은 벽의 세 번의 질감 변화. 하지만 커피 향을 맡을 때 달시의 체온이 옆자리에서 전해지던 감각이 함께 왔고, 냉장고의 저주파를 들을 때 달시의 호흡 리듬이 겹쳐 떠올랐고, 마룻바닥에 발을 디딜 때 복도에서 들었던 그의 달라진 걸음이 나무의 결 위에 포개졌다. 내 아침의 악보에 그의 불협화음이 스며들어 있어, 귀에 걸리고, 손끝에 남고, 잠들기 전 어둠 속에서 다시 울려오는 것이었다. 37년간 혼자 연주해 온 악보에 다른 사람의 선율이 끼어든 것은 처음이었다. 유령은 달시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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