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겨울, 이방인의 삶을 택했다.

영화하면 할리우드지!

“역마살이 있구만!”


도전과 모험을 좋아하는 열정 넘치는 20대. 우연히 사주를 봤는데, 역마살이 있다고 했다. 과거에는 역마살(驛馬煞)은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됐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운명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이동이 곧 위험을 의미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환경을 경험하는 것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다.


나는 사주를 맹신하는 편은 아니지만, 돌이켜보면 역마살 덕분에 얻은 것이 더 많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는 법을 배웠으며, 어디에서든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능력을 키웠다.


대학 시절에도 한 곳에 머무르지 않았다. 중국으로 1년 간 어학연수를 떠났다. 가서 공부를 열심히 했느냐? 그럴리가. 거기서도 친구들을 사귀고, 수업을 빼먹고 놀러 다니고, 열심히 맛있는 것을 찾아다녔다. 한국에 있었다면 할 수 없었을 너무나도 값진 경험들이었다.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컴퓨터 앞에 가만히 앉아 있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았다. 대학 시절 취업계를 내고 첫 사회생활을 한 곳은 ‘코스모폴리탄’ 잡지사. 뷰티 어시스턴트로 일하며 선배들을 도와 밤새 화보 촬영을 준비하고, 장소를 섭외하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매일 새로운 것들을 접하는 데서 희열을 느꼈다.


그러다 20대 중반, 역마살이 다시 한 번 움직이라고 신호를 보냈다. 당시 영화 온라인 마케팅을 담당하는 AE로 일하고 있었다. 주 업무는 바이럴 마케팅. 네이버, 다음 블로그를 통해 영화 홍보 게시물을 기획하고, 자연스럽게 퍼지도록 ‘아닌 척’ 포스팅을 올리고, 댓글과 좋아요를 유도하는 작업이었다.


책상에 앉아서 온라인으로 하는 일이라니, 밖으로 돌아다녀야 직성이 풀리는 나에게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처럼 소셜 미디어나 디지털 플랫폼이 발달해있지 않은 시기였기에 더 그랬다. 돈을 앉아서 쉽게 번다는 인식에서였을까, 간혹 오프라인 마케터로부터 무시 당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 엔딩 크레딧에 내 이름 석자가 올라가는 것을 보는 것은 꽤나 짜릿했다.


1년쯤 지났을까, 해외영화 마케팅 팀으로 배정을 받았다. 파라마운트 픽쳐스, 드림웍스 픽쳐스 배급사의 영화를 주로 맡았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셔터 아일랜드’ 영화를 홍보할 때 쯤이었나.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새벽 2시까지 야근을 하고, 콜택시를 불러 집에 가는 길이었다. 며칠째 이어진 야근으로 심신이 지쳐있었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노브라로 나온 것도 점심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다.


나사가 풀려도 단단히 풀려있던 어느날,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직감했다. 디지털 마케팅이 아니라(절대 온라인 마케팅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뭔가 더 활동적이고 발로 뛸 수 있는 오프라인 홍보, 마케팅을 하고 싶어졌다. ‘영화 마케팅이나 PR 쪽으로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문득 영화로 유명한 ‘할리우드’라는 곳에 호기심이 생겼다.


‘한 번 가볼까?’


역마살이 있는 사람에겐 새로운 곳이 두렵지 않다. 오히려 모르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게 더 설렌다. 나는 늘 움직이며 배웠고, 도전하면서 성장해왔다. 그래서 이번에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렇게 떠나기로 결심했다. 배급사 파라마운트 본사가 있는 그곳으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땅이지만, 그래서 더 설렜다. 나의 긴 인생 여행은 그렇게, 단순하고도 충동적으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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