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가방 2개

돌이켜보면, 부모님은 도전적인 나를 묵묵히 응원해주셨다.


대학 시절 갑자기 중국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했을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에 간다고 거의 ‘선포’했을 때, 별다른 이유를 묻지 않으셨다. 나중에 후회만 하지 말라고 하셨다.


엄마와 함께 3단 이민 가방에 차곡차곡 짐을 채우던 때를 기억한다. 당시 18개월 인턴십을 앞두고 있었기에 짐이 꽤 많았다. 엘에이는 날씨가 따뜻하다고 했는데, 굳이 기모 레깅스를 꾸역꾸역 챙겨주던 엄마. 엄마의 사랑으로 짐은 점점 늘어갔고, 3단 이민가방 두개를 터질듯이 채우고서야 공항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불평은 하지 않았다.


공항으로 가는 길은 설렘 그 자체였다. 20대 중반의 나에게 펼쳐질 무궁무진한 앞날이 두근거림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철없던 나는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지는 못했다. 자식을 먼 타지로 떠나보내는 부모의 심정이 어땠을까. 내가 신나서 떠드는 모습을 보며, 부모님은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담고 계셨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나는 그 애틋한 감정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부모님은 웃으며 나를 보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는 어땠을까?

아빠는 조용히 운전대를 잡고, 엄마는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지 않으셨을까?

작별 인사를 하고 혼자 비행기에 올랐다. 이륙 후, 점점 멀어지는 인천공항을 창문으로 바라보며, 그제야 감수성이 폭발했다.


‘잘한 선택이겠지? 늘 그래왔잖아. 넌 잘 될거야.’


온갖 다짐을 되뇌며 눈물을 삼키던 그때, 옆자리의 중년 여성분이말을 걸어왔다.

“유학생이세요?”

“아니요, 일하러 가요.”

“일? 무슨 일?”

“인턴십이요.”

“엘에이에 가족은 있고?”

“아뇨. 없어요. 직장 근처에 한국 분이 운영하는 하숙집이 있다고 해서 일단 거기에서 지내기로 했어요.”

“아, 젊은 분이 대단하네. 쉽지 않을텐데..”


그리고, 내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아줌마는 본인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우리 애는 UCLA 다녀요. 미국에서 태어났어요. 나도 아가씨 나이만할 때 이민 왔는데, 영 적응이 안되더라고. 이렇게 한국에 한번씩 나올 때마다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예요. 오래 살았어도 영어도 잘 안되고.. 생활하는 것도 한국이 훨씬 편한데, 애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미국에 남아 있는 거예요.”


“아…그러시구나.”


더 대화를 이어가다가는 아줌마의 신세한탄을 들어줘야할 것 같아 슬쩍 아이팟을 꺼내 들고 헤드폰을 썼다. 사람 만나고 대화하는 걸 좋아하지만, 뒤늦게 밀려오는 앞날의 걱정을 막 시작한 나에게는 남의 얘기를 들어줄 여유가 없었다.


눈을 감고 음악에 집중하려 했지만, 이내 머릿속은 온통 옆의 아줌마 생각으로 가득 찼다. ‘왜 미국에서 영어를 배우려 하지 않으셨을까? 한국보다 미국이 낫지 않나?. 노력하지 않은 걸까? 행복한 고민을 하시네…’ 그리고 그 순간, 나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적어도 저 아줌마처럼은 되지 말아야지.’


20대의 나는 욕망과 야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에 때론 거만하기까지 했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너에게 곧 고생길이 열릴 것이니…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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