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o씨죠? xx하숙집에서 왔습니다.”
가파른 국제공항 출국장(엘에이를 한번쯤 와본 사람들은 알 거다.)을 빠져나오자 익숙한 언어가 들렸다. 하숙집 관계자로 보이는 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천사의 도시, 라라랜드에 도착한 순간 깨달았다. 나는 할리우드의 꿈과 환상만 생각했지, LA가 ‘제2의 한국’이라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었다. 실제 LA시에는 약 12만명의 한인이 살고 있고, 해외에서 가장 많은 한국인이 거주하는 도시다. 이곳이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국에서 가장 멀고도 가까운 도시라는 걸 새삼 실감했다.
‘어라? 내가 지금 미국에 온 게 맞나?’
조금은 실망스러웠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이었다. 비행기를 다시 타고 하루 만에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마음을 다잡고, 이민가방을 밴에 실었다.
겨울인데도 바깥 공기가 상쾌했다. 두툼한 목도리가 답답하게 느껴져 풀어버렸다. LA의 11월에 목도리라니.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된다. 같이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앤젤리노는 한겨울 반팔에 슬리퍼를 신고 있다. 그 때 당시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 한국부터 바리바리 싸들고 온 겨울 코트는 한 번도 바깥 세상 구경을 하지 못한 채 옷장 속에 봉인되었다.
공항을 빠져나와 하숙집으로 가던 길. 차창 밖으로 펼쳐진 LA의 첫인상을 천천히 곱씹었다. 미국 땅덩이가 넓긴 넓었다. 도로 폭도 넓어 운전하기 편해 보였고, 생각보다 고층 빌딩은 많지 않았다. 속도위반 감시 카메라도 없어서 차들은 쌩쌩 달렸다. 그런데… 도로 곳곳에 움푹 패인 팟홀이 눈에 띄었다. 마치 오프로드를 달리는 기분.
‘아 미국은 이런 스타일이구나.’
첫날, 한인 하숙집으로 이동 후, 간단히 짐을 풀었다. 하숙집 소개로 한인이 운영하는 휴대폰 딜러샵에서 폰을 개통했다. 함께 지낼 친구들과 통성명을 하고, 저녁을 먹었다. 잠들기 전, 룸메는 한국 예능프로를 낄낄 거리며 보고 있었다.
‘뭐지, 여기 한국인가?’
토요일에 도착해, 월요일 출근 전까지 영어를 단 한마디도 쓰지 않았다. ‘아, 이래서 비행기에서 만난 아줌마가 영어를 못하신, 아니 안하신 거였구나…’ 하숙집이 위치한 7가와 윌튼은 한인타운의 한복판이었다. 거리 곳곳엔 한국의 60~70년대 감성이 묻어나는 오래된 한글 간판들이 줄지어 있었다. 로데오 갤러리아, 정금사, 김스전기… 낯설면서도, 익숙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한국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엘에이에 대한 환상 같은 건 원래 없었지만, 기대보다는 훨씬 더 한국스러웠다. 하지만 괜찮아. 익숙하면 더 좋은 거지. 이 또한 LA의 일부일 뿐.
그냥 즐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