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간과 에너지는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나 이거 할 마음이 없었는데 영업하시는 분이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솔깃한 나머지 월요일에 상담해보고 싶다고 이야기했어."
"정말? 분위기에 휩쓸렸어?"
"그런 것 같아. 괜히 대답한 것 같네."
"넌 어찌하고 싶은데?"
"잘 모르겠어."
"네가 불필요하다고 느껴지고 아직 계약 전이면 거절의 의사를 밝히면 되지 않을까?"
"안 그래도 돈이 한 두 푼 들어가는 게 아니더라고."
"그럼 신중하게 생각해 보고 다시 상담해 봐."
"그래야겠어."
대망의 월요일 그녀는 결국 계약했다.
결국, 답이 정해져 있는데 조언을 구하는 사람을 보면 맥이 빠진다.
'왜 물어봤지?'
'왜 다시 이야기 나누어보자고 했지?'
이 생각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닌다.
조언은 시간이다. 그것도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시간을 내서 단어를 골라 문장을 만든다. 그에 걸맞은 경험을 떠올리고 생각을 곁들인다.
조언에 진심을 싣는 사람들은 본인에게 주어진 에너지와 시간 또한 함께 건넨다.
그것을 즈려밟고 결국 하고픈 대로 하는 사람들을 보면 시간과 에너지가 조각이 되어 허공에 흩뿌려지는 기분이 든다.
계약을 했다는 그녀의 말을 가만히 떠올려본다.
본인만의 이유와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혹은 답정너까지는 아니겠지만 이미 어느 정도의 결정을 내려놓고 기다 아니다 확인받고 싶었을 수도 있다.
본인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합리화이다.
즉, 선택을 견디기 위한 언어적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이리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묻는 사람에게는 필요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본인의 선택을 타인의 언어가 곁들여져야 확신이 되는 사람들이 있고 본인의 선택을 타인에게 미루는 사람들도 있다.
그녀에게 필요한 과정이겠거니 하고 조용히 넘겨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쓴 것이 괜히 억울해 가슴 한 구석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함부로 조언을 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타인의 말로 확신을 얻거나 타인에게 선택을 미루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언의 바탕은 상대의 시간과 에너지를 존중하고 감사하는 마음이다.
바탕이라 함은 최소한의 태도다.
결국 본인의 뜻대로 하더라도 왜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코멘트는 남길 수 있다.
게다가 감사의 인사를 덧붙인다면 그 짧은 순간이 헛된 순간이 아닌,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어준다.
꼭 따를 필요는 없다.
다만 조언을 감정의 터널로 여기면 안 된다.
터널을 감정으로 지나가는 것이 아닌, '어떻게 지나갈지'에 핵심을 두어야 한다.
터널을 어떻게 지나와서 어떤 빛을 봤는지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본인을 위한 타인의 시간은 낭비가 아닌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