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 인생, 나 하나만 채우기에도 모자랍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가시를 끌어안고 살아간다.
서로 가시를 끌어안고 있기에 상대의 가시가 얼마나 어렵고 아픈지 잘 모른다.
얼핏 얼핏 보이는 좋은 점만 눈에 들어온다.
그 어설픈 성숙은 쓸모없는 질투와 경쟁을 불러온다.
우리나라 평균 수명은 남성 83세, 여성 89세로 나타났다.
약 86세쯤으로 보면 되겠다.
인생의 문을 이제 막 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미 절반을 살아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생의 황혼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고작 86년짜리 인생에 타인의 비중은 얼마였을까?
86.
90도 아니고 100도 아닌 86.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기간.
그러므로 나를 위해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람들은 가끔 가치 없는 경쟁을 한다.
시선을 타인에게 꽂고 '저 사람보다 성과를 내야지.'라고 생각하며 더 빠르게 달리기 위해 용을 쓴다.
정작 비교해야 할 대상은 따로 있는데 말이다.
그 대상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경쟁은 이점도 있다. 건강한 질투와 경쟁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만 그 건강함이 끝까지 이어지지 않을 때가 많다. 경쟁은 강한 동기 부여가 된다. 타인을 비롯한 경쟁의 초점은 타인이다.
기준으로 삼은 타인에게 지면 좌절하고 이기면 교만에 빠지기 쉽다. 핵심은 타인의 말과 행동에 나의 좌절과 교만의 버튼이 눌러진다는 점이다.
즉, 타인 하나로 쥐락펴락 롤러코스터를 타는 격이다.
역설적으로 이런 질문을 던져본 적 있는가?
'나는 어제보다 괜찮은가?'
나는 나와 경쟁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스스로와 경쟁하라고 지도한다. 어제보다 몇 걸음 나아졌는지 질문하라고 이야기한다.
고작 한 걸음만 나아져도 그 걸음들이 쌓여 큰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타인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그리고 오롯이 나의 리듬만 존재한다.
그러니 어제의 나와 비교했을 때 어느 부분이 결손인지, 어떤 것들이 컨디션을 떨어트리는지 등등 디테일한 메타인지가 연속된다.
기준점에서 타인을 빼니 오히려 지치지 않는다.
다소 작은 보폭의 걸음일지라도 매일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어느덧 큰 보폭이 되어있다.
스스로와의 경쟁은 거짓이 없다.
나 자신은 안다.
어제보다 더 열심히 했는지, 부족했는지 굉장히 잘 안다. 타인의 눈은 속일 수 있을지언정 스스로는 속일 수 없다. 어떤 날은 반성하고 죄책감을 가지고 그다음 날은 반성의 깨달음을 통해 다시 달린다.
나는 이것을 '스스로를 통제하는 능력'이라고 일컫는다.
거기에서 발현되는 책임감은 결국 자아 효능감과 자신감이 더해진 자존감이 된다.
남보다 앞서가라?
굳이요?
어제의 나보다 앞서가라.
중심점과 방향점을 스스로에게 두시라.
바람 한 톨에 흩날리는 롤러코스터 성장이 아닌,
꿋꿋한 그리고 견고한 성장을 하시라.
당신이 지고 가는 경쟁은 절대적인 가치를 품고 빛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돌아볼 당신의 모습 또한 오늘보다 가치 있고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