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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궤도이탈 Mar 09. 2022

16. 층간소음

  원룸으로 이사 온 지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바닥에서 쿵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침운동으로 팔벌려뛰기를 하고 있었다. 소리가 들리는 순간 운동을 멈췄다. 사람이 친 듯한 인위적인 소리였다. 윗집소음에 항의하듯 친 것 같았다. 뭐 눈치껏 깨닫고 조용히 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내 집은 반지하고, 내 밑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처음에는 잘못 들었나 생각했다. 아니 들은 건 맞지만 아래에서 들린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니 아래에서 들린 건 맞지만 소리의 발생지는 다른 곳이라생각했다. 건축공학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지만 어떤 구조적 작용에 의해 다른 곳에서 난 소리가 아래에서 들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어쨌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는 다시 팔벌려뛰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에서 다시

  쿵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이상함을 넘어 약간의 섬뜩함이 들었다. 전혀 알지 못하는 건축공학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니까 우리집 바닥에서  소리가 벽을 타고 올라가 위층에 울린다. 위층에 사는 사람은  소리에 짜증이  바닥을 쿵쿵거리고  소리가 다시 벽을 타고 내려와 우리집 바닥에서 울린다. , 이건  아닌  같았다. 위에서  소리가 위에서 들리지 않고 굳이 아래까지 내려와 들릴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벽을 타고 올라가 위에서 울릴 만큼 내가 뚱뚱하지 않았다. 그냥 우연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냥 우연이라 생각하기로 했지만, 왠지 모를 찝찝함이 들어 팔벌려뛰기는 그만뒀다.

  다음 날 방을 나와 계단을 올라가기 전 혹시 몰라 바닥을 살펴봤다. 어쩌면 숨겨진 무언가가…… 하지만 바닥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흔히 볼 수 있는 대리석 바닥이었다. 내가 뭐하는 거람, 계단을 올라가며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팔벌려뛰기를 하는데 바닥에서 또다시 쿵쿵 소리가 들렸다.


  “그거 위에서 들리는 거 아냐?”

  며칠 뒤 친구를 만나 말했더니 이런 반응을 보였다.

  “나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어. 근데 정확히 아래서 들려. 내가 위아래도 구분 못하겠냐.”

  “그니까 아래서 들리는데 사실 위에서 낸 소리 아니냐고.”

  “아니 그게 말이 안 되잖아. 위에서 낸 소리가 왜 위에서 안 들리고 아래서 들려?”

  “음, 어떤 구조적 작용에 의해? 내가 건축공학은 잘 모르지만.”

  역시 우린 친구였다.

  “아니야. 분명 아래야. 아래에서 들리는 거야.”

  “아니면……”

  친구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러더니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아래 누가 살고 있는 게 아닐까?”

  “개소리야.”

  “아니면, 알고 보니까 네 집에 사연이 있는 거야. 그러니까 예를 들면, 너 전에 살던 사람이 거기서 죽은 거야. 그 사람은 지상층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어. 막 서울 야경 보이는 그런 데. 하지만 자기 연봉으론 아무리 노력해도 반지하를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았지. 그러던 어느 날 자기 처지를 비관하다 결국……”

  “뒤진다. 그만해라.”

  “그래, 뒤진 거야. 근데 죽어서도 그곳을 떠날 수가 없었어. 억울한 거지. 그래서 거기 사는 사람을 괴롭히는 거야. 그런 귀신 있는데. 지방령이었나.”

  나는 관두기로 했다. 계속 대화해봤자 아무 도움이 안 될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계속 찝찝한 기분이 들어 집주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전에 살던 사람이 고지서를 두고 갔는데 버려도 될까요?’ 집주인에게서 연락해보겠다고 문자가 왔다. 다행히 죽거나 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잠시 뒤 그냥 버려도 된다는 문자가 왔다. 고지서 같은 건 없었는데 다행이었다.

  나는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소리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여러 가능성을 떠올려봤다. 그러다 문득, 어쩌면 집주인이 거짓말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 살던 사람은 죽은 게 맞았다. 하지만 집주인은 이 사실을 숨기고 싶어 했다. 당연하겠지. 집값이 떨어질 테니. 집주인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집을 내놨고 우연히 내가 걸렸다. 시세에 비해 집값이 싸긴 했다. 싼 데 비해 신축에 상태도 좋았다. 싼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건데. 어쨌든 나는 그렇게 들어왔고 망자의 쿵쿵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까 내가 문자를 보냈을 때 집주인은 전에 살던 사람에게 연락해보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잠시 시간차를 두고 내게 연락한 것이었다.

  또 다른 가능성도 떠올렸다. 사실 이 건물 지하에는 숨겨진 문이 있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9와 4/3 그런 건 아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문이다. 다만 숨겨져 있을 뿐. 어쩌면 계단 옆 벽에 있을지도 모르고 복도 바닥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문을 열면 계단이 나오고 계단을 내려가면 창고 같은 곳이 나온다. 그곳에…… 누군가 감금되어 있다! 그는 왜 감금되어 있을까? 이유는 모르지만 아마 집주인과 관련 있을 것이다. 그는 집주인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천장을 두드린다. 팔다리가 묶여있겠지만 갖은 노력을 다 해 어떻게든 두드린다. 이 반지하에 사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나는 밖으로 나갔고 복도를 돌아다니며 문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봤다. 손으로 더듬고 발로 눌러보면서. 그러다 같은 층에 사는 사람이 문을 열고 나왔고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계단을 올랐다. 순간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하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나는 방으로 들어왔다. 집주인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괜히 미안해졌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다시 팔벌려뛰기를 하기로 했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서있는 곳은 반지하다. 이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다. 전에 들었던 소리는 그저 우연일 뿐이다. 몇 번의 우연이 겹쳐 혹시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역시 우연일 뿐이다. 아니면 정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구조적 작용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는 다시 팔벌려뛰기를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팔벌려뛰기를 시작했다.

  “……기요!”

  한창 하고 있는데 아래에서 소리가 들렸다. 사람의 목소리 비슷한 소리가. 나는 순간 팔벌려뛰기를 멈췄다. 바닥에 엎드려 귀를 갖다 댔다.

  “저기요!”

  중년 남자의 목소리였다. 소리는 바로 아래에서 또렷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불과 일 미터도 안 되는 거리 같았다.

  “……네?”

  나는 대답했다. 침을 꿀꺽 삼켰다. 경찰에 신고해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이나 주의를 줬잖소! 그렇게 눈치가 없소? 도무지 잠을 못 자겠소. 나에겐 먹여 살려야 할 처자식이 있단 말이오. 도대체 밤마다 무슨 짓을 해대는 거요?”

  나는 바닥에서 얼굴을 뗐다. 뭔가 이상했다. 남자의 말투는 보통 사람이 쓰는 말투가 아니었다. 연극에서나 볼 법한 말투였다. 그리고 밤이라니?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밝았다. 의심할 수 없이 아침이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왜 말이 없소? 한 번만 더 그러면 나도 가만있지 않겠소. 층간소음은 치안 판사에게 갈 수 있을 정도로 큰 문제라는 걸 모르오? 젠장, 페테르부르크는 밤에도 더럽게 덥군. 발령이 나도 이런 곳으로 나다니 말이야. 말단 공무원 신세가 다 이렇지 뭐! 오, 애야 울지 말거라. 너한테 화난 게 아니란다.”

  남자가 말했다. 치안 판사? 페테르부르크? 이게 다 뭐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나는 전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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