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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궤도이탈 Mar 26. 2022

18. 실시간 동굴 탐험!! 분위기 레알 실화냐ㄷㄷ

  유하! 여러분 안녕하세요. 찌니티비입니다. 좋아요, 구독, 알림 설정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오늘 제가 해볼 콘텐츠는요, 바로바로바로 동굴 탐험입니다! 지금 제가 있는 곳이 어디냐면요, 저희 동네 뒷산이거든요? 근데 여기에 동굴이 하나 있어요. 와, 연아삼촌님. 시작부터 만 원 후원 감사합니다! 항상 열심히 하는 찌니티비 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자, 다시 얘기해보면 산 근처에 동굴이 하나 있거든요? 근데 여기가 예전부터 저희 동네에서 괴담으로 유명해요. 실종 동굴이라고. 예전에 여기 간다고 했던 사람들이 실종된 사건이 있었는데 끝내 못 찾고 끝났거든요. 그래서 그 뒤로 사람들이 실종 동굴이라 불러요. 저 어릴 때 엄마가 동굴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오늘 이곳을 한번 탐험해보려고 합니다. 후, 떨리네요. 보노보노뭐보노님, 뻥은 무슨 뻥이에요. 진짜구만. 저 괜히 조회수 올리려고 뻥치고 그런 사람 아니에요. 언제나 정직과 신뢰를 기반으로 열심히 하는 찌니티비 되겠습니다.

  그럼 우선 산을 올라보겠습니다. 저도 사실 하도 가지 말라는 소리를 들어서 한 번도 찾아본 적은 없거든요. 여러분 좀 지루하시더라도 나가지 말고 끝까지 시청 부탁드리겠습니다. 휴, 오랜만에 운동하니까 힘드네요. 네? 이거 끝나면 이따 손흥민 경기 끝나고 라이브 방송하려고요. 네, 열한 시. 아뇨, 경기가 열한 시고 방송 키면 한 시쯤 될 것 같아요. 네. 삼 월 말인데도 산이라 그런지 쌀쌀하네요. 옷 더 두껍게 입고 오는 건데.

  괴담 썰이요? 그러니까 그게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 어느 날 밤에 자고 있는데 엄마가 막 깨우는 거예요. 재우 형이랑 성민이 형 봤냐고. 6학년 형들이었는데 같이 놀거나 한 적은 없었고 그냥 얼굴만 아는 사이였어요. 낮에 학교에서 말고 못 봤다고 하니까 엄마가 지금 두 사람이 사라져서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서 찾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와, 연아삼촌님 또 오천 원 후원 감사합니다!

  아무튼 엄마가 다시 나갔고 저도 호기심에 따라 나가 보니까 저 멀리 여기저기서 “성민아!” “재우야!”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엄마 따라서 이리저리 골목도 다니고 굴다리 밑에 터널도 가보고 혹시 몰라서 시내도 가보고 형들이 자주 가던 옛날 병원 자리 공터도 가보고 했는데 아무 데도 없더라고요. 그렇게 찾고 있는데 형 친구 중 누가 형들이 오늘 동굴 탐험하러 간다 했다고 말을 했나 봐요. 그래서 산을 오르기로 했는데 마을 사람들끼리 파가 갈렸어요. 성민이 형네 부모님이랑 재우 형네 부모님이 한편이었고 나머지 사람들이 한편이었어요.

  두 형네 부모님은 지금 내 아들이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한시라도 빨리 가야 된다고 했고 나머지 어른들은 지금은 너무 어두워서 위험하니 날이 밝는 대로 다시 찾아보자고 했어요. 대립 끝에 결국 두 형네 아버지만 동굴에 가기로 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갔어요. 다음날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학교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엄마한테 어떻게 됐냐고 물었어요. 근데 아무 말도 안 하더라고요. 계속 물어보니까 제 질문에 답은 안 하고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동굴 근처에는 가지 말라는 말만 하셨어요. 그 말을 하는 엄마의 얼굴이 너무 굳어있어서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예요.

  좀 지나서 사건의 결말을 알게 됐는데 그날 성민이 형네 아버지랑 재우 형네 아버지도 실종됐다고 하더라고요. 며칠 사이에 네 사람이 사라지니까 동네 사람들 모두 동굴에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어요. 결국 경찰을 불렀고 동굴 안쪽을 포함해 근처까지 수색작업을 펼쳤지만 아무런 단서도 찾아낼 수 없었어요. 그야말로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거죠. 아니, 보노보노뭐보노님 뭘 자꾸 뻥치지 마요. 진짜라니까 그러네. 이제부터 그냥 무시할게요.

  아무튼 그 뒤로 두 형네 어머니랑 동네 사람들 사이가 안 좋아졌어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거든요. 왜 처음부터 경찰을 부르지 않았냐, 켕기는 게 있어서 그런 거 아니냐, 성민이네 아빠랑 재우네 엄마가 그렇고 그런 사이다, 아니다 성민이네 엄마랑 재우네 아빠가 그렇고 그런 사이다, 성민이는 성민이네 자식이 아니다, 아니다 재우가 재우네 자식이 아니다…… 그때 당시 어린 저로서는 이게 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마찬가지네요. 도대체 이게 다 실종이랑 무슨 상관인지. 근데 이거 이렇게 다 얘기해도 되나? 이미 다 얘기했지만.

  아무튼, 제가 지금 그 동굴을 가고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까 쫄리네요. 엄마가 알면 겁나 혼날 텐데. 여러분들 계속 방송 키고 있을 테니까 저한테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신고 좀 해주세요. 진짜로. 네, 밥은 먹고 왔죠. 아까 먹방 했는데 못 보셨나 보네. 근데 얼마나 올라가야 하지? 이미 지나친 거 아냐? 날 어두워지기 전에 빨리 찾아야 하는데. 어, 잠깐만요. 저기 무슨 커다란 돌이 튀어나와 있는데? 가까이 가보겠습니다.

  와, 여러분. 찾았어요, 찾았어. 잠시만요, 한번 보여드릴게요. 보이세요? 생각보다 입구가 그리 크지는 않네요. 저기 거미줄 보이세요? 저게 몇 개야 도대체. 동굴 안쪽 한번 보여드릴게요. 어두워서 잘 안 보이실 수도 있는데, 잠깐 플래시 좀 키겠습니다. 보이세요? 길이 대각선 아래로 향하고 있네요. 신기하다. 이게 말로만 듣던 실종 동굴이라니. 이제 한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들어가기 전에 좋아요, 구독, 알림 설정 부탁드립니다. 떨리네요. 그럼 진짜 들어가 보겠습니다. 생각보다 경사가 좀 있네요. 천천히 내려가 보겠습니다.

  아아. 여러분, 지금 제 목소리 울리는 거 들리세요? 동굴이 꽤 깊은가 봐요. 얼마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울리는 거 보면. 저 지금 심장 엄청 뛰어요. 별의별 생각이 다 드네요. 저 안에 뭐 있는 거 아냐? 무섭다. 오, 친절한절친님 오천 원 후원 감사합니다! 너무 크게 말하면 안 되겠다. 울리니까 저 안쪽에서 누가 말하는 것처럼 들려요.

  자, 이제 경사는 다 내려온 거 같은데요. 길 한번 보여드릴게요. 한 서너 사람 정도 지나갈 수 있을 거 같네요. 빛이 안쪽까지 안 닿아서 얼마나 긴지는 모르겠네요. 지금 저기 안쪽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나는데 혹시 들리세요? 또옥. 또옥. 또옥. 근데 진짜 어둡긴 하네요. 경사만 내려왔을 뿐인데 빛이 거의 안 들어와요. 플래시 끄면 아무것도 안 보일 것 같아요. 엄청 습하고 냄새도 막 되게 오래된 화장실 냄새나요. 한 걸음씩 들어가 볼게요. 목숨 걸고 영상 찍는다 진짜. 이걸로 떡상해야 되는데.

  으악! 이거 뭐야. 저 지금 이상한 거 밟았어요. 뭐야 이거. 한번 보여드릴게요. 물컹한 느낌 나는데요. 동물 사체요? 진짜 그런 것 같네요. 고라니 뭐 그런 건가? 죽은 지 꽤 된 거 같아요. 냄새 엄청 독하다. 예전에 취두부 먹방 할 때 났던 냄새랑 비슷해요. 와, 토할 것 같아. 얼른 지나가야겠어요. 근데 쟤는 어쩌다 여기 들어왔대? 불쌍하다. 앗, 민영님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놀라서 실수로 보여드리고 말았네요.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저는 막 미로 같을 줄 알았는데 길이 생각보다 단순해요. 그냥 한 방향으로 쭉 나 있어요. 길을 잃어버리거나 그러진 않을 것 같아요. 그럼 대체 형들은 어디로 간 걸까요? 정말 동굴을 간 건지 아님 다른 데를 간 건지. 두 형네 아버지도 그렇고. 그 소문들이 사실인 걸까요? 이제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서 진실이 뭔지 알 수 없겠지만. 어, 뭐야? 왜 갑자기 꺼졌어. 왜 이러지? 튕겼나?

  여러분, 죄송합니다. 갑자기 방송이 꺼졌어요. 안쪽으로 들어오니까 신호가 약한  같아요. 링딩님 안녕하세요. ? 지금 동굴 탐험하고 있어요. . 내년엔대학가자님 안녕하세요. 아까 마흔  정도였는데 반으로 줄었네요. 아 진짜, 갑자기 튕겨가지고. 그럼 계속 가보겠습니다. . 지금 실시간이에요. 진짜 동굴이에요. 저희 동네 뒷산에 있는 동굴이에요. .

  어, 뭐야. 여러분들 저기가 막다른 길인 거 같아요. 돌로 막혀있어요.한번 가볼게요. 에게, 이게 끝이야? 잠시만요. 다른 길 있나 한번 찾아볼게요. 어, 없는 것 같은데요? 엄청 깊은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별로 안 깊네요. 그냥 소리가 울려서 깊다고 생각했나 봐요. 하는 수 없이 이제 돌아가야겠네요. 얼마 안 있었는데도 숨 막히네요. 빨리 나가야겠다.

  자, 여러분 밖으로 나왔습니다. 기껏해야 삼십 분도 안 있었던 것 같은데 벌써 해가 졌네요. 자, 그럼 오늘의 콘텐츠 동굴 탐험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대박 하나 건져야 했는데 아쉬운 마음도 있네요. 마지막으로 좋아요, 구독, 알림 설정 한 번씩 부탁드리겠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이따 한 시에 손흥민 경기 끝나고 라이브 방송 있으니까 그것도 꼭 시청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찌니티비였습…… 네?

  무슨 손흥민이라뇨, 토트넘 손흥민이요. 네? 은퇴하긴 뭘 은퇴해요. 지금 토트넘에서 뛰고 있는데. 네? 언제적 이야기를 하다니요. 지금 다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뭘 은퇴한 지 십 년이 넘어요. 이분들 다들 미래에서 오셨나. 장난치지 마세요. 왜 그러시나 진짜 다들. 여러분 계속 저 놀리시는데 그냥 방송 종료하겠습니다. 그럼 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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