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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궤도이탈 Apr 11. 2022

22. 저주인형 (1)

  누군가를 증오해본 적 있어? 그 사람이 교통사고가 나길 바라고 그래서 죽길 바라고 그냥 아예 존재 자체가 사라지길 바랐던 적.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딱 한 번 있어. 누구냐면 내가 처음 들어갔던 회사의 직속 상사야.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줄게.

  처음 이상한 낌새를 느낀 건 입사한 지 일주일도 안 됐을 때였어. 출근하는데 그 사람한테 카톡이 오더라. 미안하지만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바나나우유 좀 사다 줄 수 있겠냐는 거야. 사는 걸 깜빡했다고. 사적 심부름 아닌가 찝찝했지만 그동안 회사 업무를 가르쳐준 것도 있고 직속 상사라 오래 볼 사람이기도 해서 알겠다고 했어. 뭐 바나나우유 하나 사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같이 마시면서 얘기 좀 나눠볼까 싶어 두 개를 샀지. 출근해서 그 사람한테 바나나우유를 건넸는데 아무 말도 안 하고 내 얼굴만 빤히 쳐다보더라. 뭔가 언짢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웬 바나나우유?”

  “네? 바나나우유 사오라고 하셔서…….”

  이렇게 말하니까 코웃음을 치더라.

  “내가 언제 바나나우유 사오랬어요. 바나나랑 우유 사오라고 했지.”

  나는 내가 잘못 봤나 싶어 아까 받은 카톡을 봤어. ‘바나나랑 우유’가 아니고 ‘바나나 우유’라고 쓰여 있었어. 나는 그 사람한테 카톡을 보여줬지. 그 사람은 검지로 카톡을 가리키며 말했어.

  “여기 바나나랑 우유 사이에 띄어 쓴 거 안 보여요? 바나나우유 먹고 싶었으면 붙여 썼겠지.”

  나는 어이가 없었고 이게 뭔 말장난인가 싶었어. 죄송하다는 말을 해야 하나 생각했지만 이게 지금 죄송해야 하는 상황인가 반발심도 들어서 가만히 있었어. 그렇게 있으니까 그 사람이 또 말하더군.

  “나 아침마다 바나나랑 우유 먹는 거 못 봤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어. 볼 수 있을 리가 없었어. 그때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나도 이삼십 분씩 빨리 출근했지만 그 사람은 항상 먼저 와있었거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사람 집이 회사에서 걸어서 십 분 거리에 있었고 윗사람한테 잘 보이려고 항상 일찍 오는 거였어. 나는 지하철로만 한 시간 거린데 삼십 분 일찍 오는 것도 엄청 대단한 거 아냐? 최소 다섯 시 반에는 일어나야 되는데. 아무튼 내가 고개를 저으니까 그 사람은 입으로 쓰읍 소리를 냈어.

  “미나 씨 생각보다 부주의한 면이 있구나?” 그 사람이 말했어. “좀 자기중심적이기도 하고.”

  순간 열이 받았어. 이게 부주의한 거랑 자기중심적인 거랑 도대체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자기가 말을 이상하게 해놓고 내 탓을 하지? 기분이 나빴지만 티를 낼 수는 없어 말없이 고개만 숙이고 내 자리로 왔어. 근데 나를 부르더라. 바나나우유 가져가라고. 설탕 덩어리라 자기는 안 먹는다고. 나는 바나나우유 두 개를 챙겨 자리로 돌아왔고 비닐을 뜯어 연달아 벌컥벌컥 마셨어.

  “오늘 아침은 굶게 생겼네.”

  그 사람이 다소 큰 소리로 혼자 중얼거렸어. 딱 봐도 나 들으라는 거였지.

  다음 날 아침에도 그 사람한테 카톡이 왔어. 어제 부탁했던 거 오늘도 부탁한다고. 이번엔 잘 좀 부탁한다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다시 기분이 나빠졌지. 하지만 한 번만 더 참기로 했어. 전혀 납득이 안 가지만 어쨌든 어제는 내가 실수한 부분도 있고 입사 초반부터 상사랑 척지면 나로서는 좋을 게 없으니까. 일찍 올 시간은 있고 바나나‘랑’ 우유 살 시간은 없나, 집에서 처먹고 올 것이지 왜 회사에서 처먹지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속으로 잠재웠지. 그래도 사다 주니까 고맙다 하면서 잘 먹긴 하더라고.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도 똑같은 카톡이 왔을 때 나는 그 사람을 찾아가 말했어. 이런 거 그만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이거 엄연한 사적 심부름이라고. 단호한 태도에 그 사람은 당황한 것 같았어.

  “직장 선후배 사이에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잘못 생각했어요.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요.”

  별다른 반응 없이 수긍하길래 좀 의외였어. 상대가 수그리고 나오니까 내가 좀 너무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 다소 허무하게 대화를 끝내고 내 자리로 가려는데 그 사람이 뒤에 대고 말했어.

  “미나 씨가 그런 사람이었구나.”

  내가 뒤 돌아 “네?”하고 말했어.

  “아니에요, 아무 말도. 가서 일 봐요.”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하고 모니터를 바라봤어. 나는 그 모습을 잠시 보다가 자리로 돌아왔지. 왠지 모르게 찝찝한 느낌이 들었어.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 얼마 지나지 않아 예감은 현실이 됐지.

  그 이후로 그 사람은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어.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말이야.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어. 내가 업무를 잘 해내지 못하면 먼저 괜찮다고 하고는 “명문대 나왔다고 다 똑똑한 건 아닌가 봐”하는 말을 덧붙였어. 말한 적도 없는데 내가 나온 학교는 어떻게 알아낸 건지. 또 제 시간 동안 절대 해낼 수 없는 업무량을 주고는 해내지 못하면 “어떡하지? 이거 오늘까지 끝내야 하는데”하면서 자연스레 야근을 하라고 압박하는 식이었지. 물론 그 사람도 야근을 하기는 했어. 자기보다 윗사람이 남아있으면 야근을 하고 없으면 부리나케 퇴근했지. 남아있는다고 일을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었어. 어느 날 곁눈질로 몰래 보니까 인터넷으로 옷을 보고 있더라. 나한테는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시켜놓고 말이야. ‘월급루팡’이라는 말이 저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지.

  어느 날은 업무를 부탁하길래(말이 부탁이지 시키는 거였지) ‘네’하고 대답했는데 다짜고짜 “미나 씨, 내 부탁이 기분 나빠요?”하고 말하더라. 내가 놀라서 아니라고 하니까 “근데 대답이 왜 그래?”하고 묻더군. 나는 내 대답이 어디가 이상했는지 전혀 짐작이 안 가서 의아스럽다는 듯 쳐다봤어. 그랬더니 갑자기 설교를 하기 시작했어. 정당한 업무지시인데 이렇게 기분 나쁜 티 내면 같이 일하기 힘들다, 선배가 후배한테 감정적으로 대하는 걸 조심하는데 되려 후배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당황스럽다, 자기 기분 못 숨기고 이렇게 팍팍 티 내는 거 어리숙한 행동이다. 주위 사람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높여 얘기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도 되게 교묘한 짓이었어.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 사람이 나 혼내는 상황만 보고는 나를 탓했겠지. 이 일은 다시 떠올려봐도 속이 부글부글 끓네.

  시간이 지날수록 스트레스만 쌓여갔어. 어디 알리거나 신고할 수도 없었어.  사람이 대놓고 나한테 욕을 하거나 했으면 조치를 취했겠지만 앞서 말했듯 교묘한 방법으로 나를 괴롭혔기에 그럴  없었지. 더구나 나는 신입이었고  사람은 윗사람한테 평판이 좋았기에 내가 불리했어. 내가   있는  고작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뒷담을 하는  다였어. 후련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때뿐이었지. 또다시  사람과 트러블이 생기면 속이 뒤집어졌어. 어떻게 들어온 회사인데 저런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나 짜증이 났고 나는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자기는  지내고 있고 희열감까지 느끼고 있다는 상상을 하니까 너무 화가 났어.

  저주인형이 떠오른 건 그때쯤이었어. 왜 어릴 때 공포이야기 보면 그런 거 있잖아. 밀짚으로 만든 사람 모양의 인형. 어느 날 갑자기 그게 떠오른 거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에 검색해보니까 정말 그 인형을 팔고 있더라? 한번 사볼까 호기심이 들었어. 그리고 다음 날 또다시 그 사람한테 갈굼을 당하자마자 주문 버튼을 눌렀지.

  저주인형의 저주랄까, 주술적 효과를 믿은 건 아니었어. 단지 스트레스 해소용에 불과했어. 그 사람한테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집에 돌아와 그 인형에, 그 사람의 분신인 인형에 해를 가하면 그나마 기분이 괜찮아질 것 같았거든.

  이틀 뒤 택배가 도착했어. 구성품은 밀짚 인형 하나, 이상한 문양이 적힌 부적 한 장, 기다란 못, 그리고 설명서였어. 설명서를 펼치니 제일 위에 이런 문장이 적혀있더라. ‘주의. 이 인형은 강력한 저주의 힘을 가진 인형입니다. 한번 의식을 거행하면 돌이킬 수 없으니 신중에 신중을 기해 사용하십시오.’ 그럴듯한 문구에 웃음이 나왔어.

  사용법은 이랬어. 우선 저주할 사람의 머리카락이나 손톱을 인형 가슴 부분에 있는 틈에 집어넣어. 그다음 부적에 저주할 사람의 피와 의식을 거행하는 사람의 피를 묻혀. 그다음 부적을 인형 위에 대고 못을 찔러 넣으면 끝. 머리카락이야 그 사람 자리 바닥에 한두 올쯤 떨어져 있을 테니 구하기 쉬웠어.

  문제는 그 사람의 피를 어떻게 구하냐는 거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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