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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궤도이탈 May 16. 2022

25. 토이 (2)

3


  일주일 뒤 그녀는 입덧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과음을 해서 헛구역질을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건 입덧이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뒤로 그녀는 집에 돌아오면 술을 마셨다. 술이 없으면 잠이 오지 않았다. 불안을 견딜 수가 없었다. 시간을 버틸 수가 없었다. 그녀가 술을 마실 때마다 토이가 옆에서 끙끙거렸다. 그녀는 무시하고 계속 술을 마셨다.

  한 번은 토이가 하네스를 물고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그녀는 순간 짜증이 났다. 물고 있던 하네스를 빼앗아 싱크대로 던졌다. 건조대에 있던 식기가 하네스에 맞아 떨어지며 쇳소리를 냈다. 놀란 토이가 안방으로 들어가 숨었다.

  “산책은 뭔 산책이야.”

  그녀가 안방 쪽을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소주를 병째 들이켰다. 짜증이 가라앉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토이는 침대 옆에 바짝 엎드려 있었다. 그녀가 다가오자 꼬리를 흔들었다. 그녀가 목덜미의 털을 움켜잡으니 다시 멈췄다.

  “응? 산책은 무슨 산책이냐고.”

  토이는 낑낑 소리를 냈다. 그녀는 그 모습을 내려다보다 식탁으로 돌아왔다. 남은 소주를 마저 들이켰다. 침대로 가 누웠다. 토이는 아직 침대 옆에 있었다. 저리 가! 그녀가 소리쳤고 놀란 토이가 안방을 뛰쳐나갔다.

  “산책 좋아하네….”

  그녀가 말했다.


  중절수술 할 돈은 충분했다. 적금 하나를 깨기만 하면 됐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안에서 무엇이 나오느냐가 문제였다. 무엇이 자라고 있느냐가 문제였다. 인간일까? 개일까? 인간도 개도 아닌 무엇일까? 그것이 형체를 갖추기 전에 한시 빨리 처리해야 했다. 근데 지금 당장 수술해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까? 인터넷에 ‘임신 7주차’라고 검색해 이미지를 봤다. 수많은 초음파 사진 속 태아는 이미 사람의 형상처럼 보였다. 이미 자신 안에 있는 무엇도 형체를 갖추었을 것이다.

  꿈인지 환영인지 망상인지 모를 것이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는 수술실 안에서 다리를 벌린 채로 누워있다. 의사는 그녀의 그곳을 열고 기구를 넣어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낸다. 그것을 스테인리스로 된 통 안에 내려놓는다. 이게 뭐지? 의사가 말한다. 의사에 말에 옆에 있던 간호사가 그것을 본다. 이게 뭘까요? 간호사가 말한다. 이건… 개처럼 생겼는데? 의사가 말한다. 그러게요. 정말 개처럼 생겼네요. 간호사가 말한다. 자세히 좀 봐. 정말 개야. 의사가 말한다. 그러게요. 정말 개네요. 간호사가 말한다.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의사가 그녀 옆으로 다가온다. 작고 불그스름한 그것을 들고서. 당신, 이게 뭐야? 의사가 말한다. 무어라 말하고 싶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이런 걸 품었어? 의사가 말한다. 어느새 간호사도 옆에 서있다. 같은 여자로서 정말 수치스럽네요. 간호사가 말한다.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진다. 귀 옆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커진다. 귀가 찢어질 것 같다.

  환영은 사라지고 이번엔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였다. 쯧쯔, 글쎄 개랑 그 짓을 했대요. 뭐? 개랑 그 짓을? 말세다, 말세야. 얌전하게 생겼는데. 이래서 사람은 겉만 봐서는 모른다니까. 그러게나 말이에요. 아무리 하고 싶었어도 그렇지. 이번에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의 목소리였다. 너 제정신이니? 만나라는 남자는 안 만나고 개랑 그 짓을 해? 세상 창피해서 엄마가 어떻게 사니? 도저히 못 참겠다. 아예 연을 끊자꾸나. 이번엔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평소에 그렇게 남편이라고 부르더니 진짜 남편이었네? 개랑 해서 느낌이 어땠어? 좋았어? 짜릿했어 아주? 그녀는 목소리를 없애려 마구 도리질했다. 목소리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며칠 뒤 그녀는 회사에 휴직계를 냈다.


  그녀는 자신의 생활을 망가뜨렸다. 토가 나올 정도로 술을 마셨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따금 환영과 환청에 시달렸다. 어쩔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이기도 했다. 임산부의 건강이 안 좋아질수록, 그러니까 자신의 건강이 안 좋아질수록 유산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녀는 버티지 못할 정도로 몸을 망가뜨렸다. 마찬가지로 자기 안에 있는 무언가도 버티지 못하게끔. 그래서 끊어지게끔.

  하지만 그것은 끄떡도 없는 것 같았다. 자기 안의 또다른 존재지만 자기의 일부이기도 한 존재로서 그녀는 그것이 조금도 약해지지 않았음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오히려 자신이 위태로워질수록 그것은 평소보다 더 그녀의 양분을 빼앗는 것 같았다. 함께 망가지는 게 아닌 반비례하여 그녀를 더 망가지게 하는 것 같았다. 생의 맹목적 전진을 방해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 힘이 더욱 커지는 듯했다. 그녀는 자연적인 방법으로는 그것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그녀는 벌거벗은  욕실 거울 앞에 섰다. 아랫배가 봉긋해져 있었다. 그녀는 손바닥으로  위에서 아래까지 쓰다듬었다. 완만한 굴곡이 손바닥에 전해져왔다.  손으로 없애는 수밖에 없어.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주먹을 쥐었고 아랫배를 강하게 내리쳤다. 고통에 무릎이 절로 굽혀졌다. 일어나 다시 한번 내리쳤다. 죽어. 죽으란 말이야. 속으로 말했다. 그렇게  번을 내리쳤다. 아픔 때문에  이상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밖에서 토이가 낑낑대며 발로  벽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계속 흐느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쳤다. 밖에서는 계속  긁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그곳을 노려봤다.

  저 놈의 개새끼 때문이야. 그녀는 생각했다. 다가가 문을 벌컥 열었다. 토이가 문에 부딪혀 깨갱 소리를 냈다. 그녀는 토이를 내려다봤다.

  “너만 아니었어도 내가 이렇게 되진 않았어. 알아들어?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다고.”

  토이는 바짝 엎드렸고 그녀는 그 모습을 내려다봤다.

  다음 날, 아랫배에 파랗게 멍이 들어있었다. 배가 좀 더 불룩해진 것 말고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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