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의 러시아 정교회
'제3의 로마'라는 웅장한 신학적 비젼은 러시아에게 자긍심을 주었지만, 동시에 위험한 메시아주의의 씨앗이기도 했다. 자신을 정교회의 마지막 보루로 자처한 모스크바는 주변 국가들의 주권을 존중하기보다, 그들을 ‘러시아 세계’의 일부로 간주했다.
황녀의 혼수품은 제국의 야망이었다
1453년5월29일, 천 년을 버틴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마침내 오스만 튀르크의 대포 앞에 무릎을 꿇었다. 기독교 세계는 슬픔에 잠겼지만, 북쪽 모스크바의 군주들은 다르게 생각했다. ‘로마의 시대가 끝났다면, 누군가는 그 자리를 채워야 하지 않을까?’
1472년,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결혼식이 모스크바에서 열렸다. 신랑은 모스크바 대공 이반 3세, 신부는 비잔틴 마지막 황제의 조카딸 조이 팔라이올로기나(세례명 소피아)였다. 이 결혼은 단순한 정략결혼이 아니었다. 소피아는 모스크바에 비잔틴 제국의 피와 함께 더 값진 것을 가져왔다. 바로 ‘로마 황제의 정통 후계자’라는 명분이었다.
영국의 역사학자 올랜도 파이지스는 그의 저서 『러시아의 이야기』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소피아는 모스크바에 비쟌틴 궁정의 복잡한 의전과 웅장함을 가져왔다. 그녀의 영향으로 이반 3세는 자신을 전제 군주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는 훗날 ‘차르’라는 칭호의 기틀이 되었다.”
이때부터 모스크바의 지배자들은 로마의 카이사르(Caesar)에서 유래한 ‘차르(Tsar)’라는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비잔틴 제국의 상징인 쌍두독수리가 러시아의 국장이 되었다. 동쪽과 서쪽을 동시에 바라보는 이 독수리는 이제 모스크바가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르는 제국의 주인이자, 정교회 기독교 세계의 유일한 수호자임을 선포했다.
그러나 정치적 계승만으로는 부족했다. 제국에는 신의 축복이 필요했다. 16세기 초, 프스코프의 수도사 필로테우스가 바실리 3세 대공에게 보낸 서신은 모스크바의 야망에 종교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두 개의 로마는 타락하여 쓰러졌습니다. 첫 번째 로마는 이단에 빠졌고, 두 번째 로마인 콘스탄티노플은 이교도의 칼에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로마인 모스크바는 영원히 설 것이며, 네 번째 로마는 없을 것입니다."
이 예언은 단순한 종교적 수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러시아에게 역사적 사명을 부여했다. 모스크바는 이제 단순한 지역 강국이 아니라, 신이 선택한 마지막 기독교 제국이었다. 이 땅이 무너지면 기독교 문명 자체가 무너진다는 메시아적 사명감이었다. 이것이 바로 ‘제3의 로마’ 이론의 핵심이다. ‘제3의 로마’라는 신념은 러시아의 자아 인식 깊숙이 뿌리내렸다.
70년 간의 공산주의 통치 동안, ‘제3의 로마’라는 꿈은 지하로 숨어들었다. 러시아 정교회는 혹독한 박해를 받았다. 수만 명의 성직자가 처형되고, 수천 개의 교회가 파괴되거나 창고로 전용됐다. 제정 러시아 시대 국교로서 누렸던 영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러나1991년 소련이 무너지자 상황은 극적으로 반전됐다. 정체성의 공백을 겪던 러시아 사회는 ‘러시아다움’을 찾기 시작했고, 그 핵심에 정교회가 있었다. 1988년 약 6,800개였던 교회가 2008년에는 3만 개를 넘어섰다. 2000년 집권한 블라디미르 푸틴은 여기서 기회를 포착했다. 소련 시절 몰수된 교회 재산을 돌려주고, 교회 재건을 적극 지원했다. 2007년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핵무기와 정교회는 러시아 사회의 두 기둥이다. 핵무기는 외부 안보를, 정교회는 도덕적 건강을 보장한다.”(2007년 2월 1일, 푸틴 대통령의 연례 기자회견)
이에 키릴 총대주교는 노골적으로 ‘국경은 러시아 세계 민족들에게 불필요한 장애물’이라고 선언했다. 500년 전 필로테우스의 예언이21세기 버전으로 부활한 것이다.
KGB 출신 성직자와 대통령의 동맹
2009년 모스크바 총대주교로 선출된 키릴은 푸틴과의 관계에서 특별한 인물이었다. 푸틴 대통령의 개인적 회고(2012년 다큐멘터리 등)에서 나온 주장이지만. 푸틴은 자신이 1952년 레닌그라드에서 비밀리에 세례를 받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신부가 현재 키릴 총대주교의 아버지(미하일 군댜예프)였다고 언급했다. 키릴 자신도 푸틴처럼 KGB 출신이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소련 시절 그는 대외교회관계국에서 일하며 서방과의 접촉 역할을 맡았는데, 이는 당시KGB의 감독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키릴의 푸틴 찬양은 노골적이었다. 2012년 그는 공개석상에서 ‘푸틴의 통치는 신이 내린 기적’이라고 극찬했다. 교회는 푸틴의 인기 없는 정책들-노인 복지 삭감, 정년 연장-에도 침묵했다. 대신 정부는 교회에 재정 지원과 사회적 특권을 보장했다. 푸틴의 목표는 러시아 국가 영역의 확대였고, 키릴의 목표는 러시아 정교회 관할권의 확대였다. 두 목표는 완벽하게 일치했다. 푸틴은 ‘국가 안보’를, 키릴은 ‘영적 안보’를 내세웠지만, 실상 둘은 같은 제국주의적 야심을 공유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 정신적 고향을 둘러싼 전쟁
2021년 7월 12일, 푸틴은 크렘린궁 홈페이지에 긴 에세이를 직접 기고했다. 제목은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의 역사적 일체성에 관하여>였다.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하나의 민족이다. 키예프 루스는 우리의 공통된 뿌리이며, 우크라이나의 주권은 오직 러시아와의 파트너십 안에서만 가능하다."
키이우(옛 키예프)는 9세기에 세워진 ‘키예프 루스’의 수도였다. 이곳에서 988년, 블라디미르 대공이 비잔틴으로부터 정교회 세례를 받았다. 러시아인들에게 키이우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다. 그곳은 러시아 정교회의 자궁이고, 슬라브 문명의 요람이며, 러시아 정체성의 탄생지다. 하버드대 역사학자 세르히 플로히는 『유럽의 문』에서 지적한다. 푸틴에게 우크라이나의 서방화(NATO, EU 가입)는 “러시아 문명의 기원인 키이우를 이교도에게 빼앗기는 것”과 다름없는 문명적 위기다. ‘제3의 로마’라는 세계관 안에서 우크라이나의 독립은 배신이자 신성모독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생각이 달랐다. 17세기에 원래 콘스탄티노플 관할이었던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인사권이 러시아 정교회로 넘어간 이후 300년 넘게, 우크라이나 교회는 사실상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1991년 소련이 무너지고 우크라이나가 독립하자, 우크라이나 교회도 독립을 시도했다. 하지만 러시아 정교회의 반대로 번번이 좌절되었다.
전환점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이었다. 이 사건으로 우크라이나의 반러 감정이 폭발했고, 종교적 독립을 향한 열망도 커졌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교회는 콘스탄티노플에 독립 승인을 요청했다. 2018년10월11일,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구는 역사적 결정을 내렸다. 17세기에 러시아에 넘긴 우크라이나 관할권을 취소하고,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독립을 공식 인정한 것이다. 2019년 1월에는 독립을 인정하는 공식 문서인 ‘토모스' (참조- https://orthochristian.com/118657.html)에 서명했다.
러시아 정교회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독립 결정이 나온 지 나흘 만에 러시아 정교회는 콘스탄티노플과의 모든 관계를 끊겠다고 선언했다. 1000년 넘게 이어진 교류가 단절된 것이다. 러시아의 입장에서 우크라이나는 단순한 관할 지역이 아니었다. 키이우는 러시아 정교회의 ‘정신적 고향’이었고, 우크라이나 신자들은 러시아 정교회 신자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이들을 잃는다는 것은 영향력의 심각한 축소를 의미했다.
전쟁 : 분열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들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전면 침공이 시작되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키릴 총대주교의 태도였다. 그는 전쟁을 비판하기는커녕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이 전쟁을 ‘루스키 미르(러시아 세계)’를 지키기 위한 성전으로 규정했다. 키릴에게 우크라이나의 저항은 ‘서방의 타락’에 맞서는 정통 가치의 수호였다. 그는 설교에서 우크라이나를 서방의 동성애 문화와 자유주의에 물든 타락한 땅으로 묘사했다. 전쟁은 영적 전쟁이고, 러시아 병사들은 성전을 수행하는 전사들이었다.
2022년9월 설교에서 키릴은 이렇게 선언했다. "군사적 의무를 수행하다 죽는 사람은 다른 이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며, 이 희생이 그가 지은 모든 죄를 씻어준다." 마치 중세 십자군 전쟁 시대로 돌아간 듯한 이 발언은 러시아 병사들에게 전쟁을 종교적 의무로 제시했다.
문제는 우크라이나에도 정교회 신자가 다수라는 사실이다. 키릴의 논리대로라면 같은 신을 믿는 형제들을 살육하는 것이'신의 뜻'이
된다. 이는 정교회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교황 프란치스코 조차 키릴 총대주교가 본연의 직분을 저버리고 푸틴의 전쟁을 거든다고 공개 비판했다. 전쟁은 우크라이나 내부의 정교회 지형도 완전히 바꿔놓았다. 2022년5월, 그동안 러시아 정교회 소속이었던 우크라이나 정교회마저 모스크바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다.
전쟁 이전 18%였던러시아 정교회 신자 비율은 4%로 급락했고, 반대로 독립 정교회 신자는 42%에서 54%로 급증했다. 2024년 우크라이나 의회는 러시아 정교회 활동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의 정교회들이 공개적으로 키릴을 비난했고,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는 자국 내 러시아 정교회가 모스크바와의 관계를 끊도록 강제했다. 천 년 역사의 정교회가 정치적 야욕 때문에 분열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과거라는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서방의 눈에 비친 현재의 러시아는 ‘신성한 로마의 후계자’가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영광에 취해 국제 질서를 파괴하고, 이웃 나라의 주권을 짓밟는 위험한 수정주의 세력일 뿐이다. 예일대 역사학자 티모시 스나이더는 그의 저서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에서 러시아의 행태를 ‘영원성의 정치’라고 비판한다.
“영원성의 정치는 사실보다 과거의 신화적 영광을 중요시한다. 푸틴은 러시아가 끊임없이 서방의 공격을 받고 있다는 피해의식을 조장함으로써, 현재의 부패와 실패를 정당화하고 있다.”
서방의 국제질서는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확립된 주권 국가의 원칙에 기반한다. 이 체계에서 국가의 경계는 과거의 제국이나 종교적 계승이 아니라, 현재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의지와 국제적 합의로 결정된다. 만약 역사적 근원이나 문화적 영향권이 영토 변경의 정당한 근거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세계는 끝없는 전쟁터가 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제3의 로마’라는 웅장한 꿈은 러시아를 위대하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옥죄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를 국제사회에서 고립시켰고, 경제 제재는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으며, 수만 명의 젊은이들이 낯선 땅에서 목숨을 잃었다. 500년 전 수도사의 예언이 21세기 러시아 청년들의 묘비명이 되고 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러시아 정교회의 타락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첫째, 종교가 정치권력과 밀착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준다. 교회는 본래 권력을 비판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도덕적 목소리여야 한다. 그러나 러시아 정교회는 권력의 정당성을 제공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독재자에게 ‘신의 대리인’이라는 후광을 씌워주고, 침략 전쟁을 ‘성전’으로 포장하는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둘째, 민족주의와 결합한 종교가 얼마나 위험한지 드러낸다. ‘루스키 미르’ 이념은 종교적 정체성과 민족적 정체성을 하나로 묶었다. 이는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는 경계가 됐고, 타자에 대한 배제와 폭력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됐다. 역사적으로 종교 전쟁, 민족 청소, 집단학살은 대부분 이런 결합에서 시작됐다.
셋째, 역사에 매몰되는 위험성이다. 역사는 중요하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배워야 한다. 하지만 역사에 갇혀서는 안 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은 진리다. 그러나 러시아의 비극은 우리에게 또 다른 교훈을 준다. “역사에 매몰되어 과거의 유령으로 현재를 심판하려는 민족에게도 미래는 없다.”
한국도 무관하지 않다. 종교가 특정 정치 세력과 결탁하거나,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배타성을 띨 때, 우리 역시 비슷한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러시아 세계’의 교훈은 명확하다. 종교는 권력의 도구가 아니라 양심의 목소리여야 하며, 신앙은 분열이 아니라 화해를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위대한 이념’도 한 국가의 주권과 한 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할 수 없다.
진정한 국가의 위대함은 과거의 영광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현재를 사는 시민들의 자유와 번영, 그리고 이웃과의 평화로운 공존에서 나온다. 비잔틴 제국의 쌍두독수리는 박물관에서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21세기의 탱크를 움직이는 연료가 되어서는 안 된다. 모스크바가 진정으로 위대한 나라가 되고자 한다면, 이제는 무거운 황제의 관을 벗어야 한다. 필로테우스의 낡은 예언을 덮고, 국제법과 인권이라는 21세기 문명의 광장으로 걸어 나와야 한다. 제3의 로마가 아니라, 제1의 러시아로서 말이다. 제3의 로마라는 허울 좋은 왕관을 벗고 '제1의 러시아'로 거듭난다는 것은, 과거의 영토가 아닌 현재 시민의 자유를 영토로 삼는 나라가 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러시아는 역사의 신화화를 멈추고, 정교 분리의 원칙을 엄격히 세우며, 중앙에 집중된 권력을 지방의 시민들에게 되돌려주는 실질적 민주화를 단행해야 한다. 우크라이나의 비극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은 명확하다. 이웃의 주권을 짓밟고 세운 제국보다, 법치와 상식이 통하는 평범한 국가의 평화가 훨씬 더 위대하다는 사실이다.
우크라이나의 폐허 위에서, 키릴 총대주교가 축복한 포탄이 교회와 학교를 파괴하고 있다. 천 년을 함께한 신앙 공동체의 분열은 비극이다. 하지만 이 비극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종교는 권력을 정당화하는 도구인가, 아니면 권력을 견제하는 양심인가? 종교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권력자를 위해서인가, 아니면 고통받는 민중을 위해서인가? 당신의 신앙은 생명을 살리는가, 아니면 죽음을 정당화하는가? 역사는 우리의 스승이어야 하지, 감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크라이나의 피로 얼룩진 들판과 황금 돔 아래서 쏟아진 전쟁 선동, 그리고 천년 신앙 공동체의 분열은 뼈아픈 삶의 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