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의 러시아 정교
모스크바 도심의 한 카페. 목에 십자가 목걸이를 건 20대 청년 안드레이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말했다. “네, 저는 정교회 신자죠. 하지만 교회는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 때나 가요.” 그의 이야기는 현대 러시아 젊은이들의 신앙생활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통계는 극적이다. 러시아인의 약 67%가 러시아 정교회 신자라고 답하지만, 실제로 매주 교회에 출석하는 비율은 6-7%에 불과하다. 이 간극은 무엇을 말하는가? 러시아 젊은이들에게 신앙은 실천적 종교라기보다 문화적 정체성의 표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세대별 차이다. 18-30세 응답자 중 48%만이 정교회 신자라고 답한 반면, 60세 이상에서는 69%가 정교회 신자라고 응답했다. 젊은 세대로 갈수록 종교적 정체성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18-24세 연령층의 42%는 무종교인이며, 정교회 신자는 29%에 불과하다.
이콘은 있어도 기도는 없다
러시아 정교회 신자의 87%가 집에 이콘(성화상)을 보관한다. 하지만 매일 기도한다는 응답은 18%에 그친다. 이것이 현대 러시아 젊은이들의 신앙생활이다. 집에 이콘은 걸려 있지만, 그것은 할머니 세대의 유산이거나 장식품에 가깝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IT 기업에 다니는 26세 다리아는 이렇게 말한다. “아파트에 이콘이 있어요. 어머니가 주신 거죠. 하지만 교회는 1년에 두세 번 정도 가요. 부활절 때 달걀을 색칠하고, 세례 때 대부모(세례받는 사람의 신앙을 돕기 위한 부모가 되는 것)가 되는 건 참여해요.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도 좋고요.”
2023년 설문에서 부활절 예배에 참석한 러시아인은 5%에 불과했지만, 70%가 부활절 달걀을 색칠했고 39%가 전통 음식을 구매했다. 종교는 의례적 축제로, 신앙은 소셜미디어의 콘텐츠로 소비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21년 25%였던 정교회 신자 청년 비율이 2025년 45%로 거의 두 배 증가했다. 더욱 주목할 것은 ‘수도원 체험(monastering)’ 열풍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수도원에서 시간을 보내며 기도하고 일하면서 디지털 기기와 소셜미디어로부터 단절되는 경험을 추구하고 있다.
사회학자들은 이를 신앙심의 부흥이라기보다 불확실한 시대에 안정감을 찾으려는 시도로 분석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경제 제재, 정치적 억압 속에서 젊은이들은 소속감과 도덕적 명확성을 갈구한다. 적어도 러시아 정교회는 표면적으로는 그런 피난처를 제공한다. 문제는 러시아 정교회가 푸틴 정권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신자들은 갈등한다. 신앙을 찾아 교회에 왔지만, 교회는 그들에게 국가 이데올로기를 강요한다.
세속화의 실상
전체적으로 보면 러시아는 여전히 세속화의 길을 걷고 있다. 세계 가치관조사에 따르면 러시아는 종교성 면에서 92개국 중61위로, 하위 3분의1에 속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정교회 국가들 중에서도 러시아는 가장 낮은 종교성을 보이며, 조지아, 아르메니아, 그리스, 루마니아는 물론 우크라이나, 불가리아, 벨라루스보다도 낮다. 또 다른 주목할 변화는 젊은 무슬림 인구의 증가다. 전체 인구에서 정교회 대 무슬림 비율은 57%:5%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29%:9%로 그 격차가 크게 줄어든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종교에 대한 태도 변화와 무슬림 이민 증가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타타르스탄과 다게스탄 같은 무슬림 지역에서는 종교가 여전히 일상의 중심이다. 모스크는 활성화되어 있고, 이드 축제는 광범위하게 기념된다. 무슬림 신자들 중 실천적 신자 비율은 정교회보다 훨씬 높다.
신앙의 귀환인가, 정체성의 위기인가
현대 러시아 젊은이들의 신앙생활은 모순으로 가득하다. 스스로를 정교회 신자라 칭하지만 교회에는 가지 않고, 이콘을 모시지만 기도하지 않으며, 수도원 체험을 하지만 교회의 정치화에 환멸을 느낀다. 소련 붕괴 후 30여 년, 러시아의 ‘신앙 부활’은 진정한 영적 각성이었을까?, 아니면 국가 정체성을 재건하려는 정치적 프로젝트였을까? 숫자상으로는 정교회 신자가 급증했지만, 실질적 종교 실천은 낮은 수준이다. 젊은 세대는 이 딜레마의 한가운데에 있다. 그들은 할머니 세대가 간직한 신앙의 형식은 물려받았지만, 그 내용은 채우지 못했다. 전쟁과 억압 속에서 안정을 갈구하지만, 교회는 그들에게 평화가 아닌 승리를 강요한다.
러시아의 미래 세대는 이 간극을 메울 수 있을까? 아니면 형식만 남은 ‘문화적 정교도’로 남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러시아 사회의 앞날을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은 지금,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카페에서 십자가 목걸이를 건 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젊은이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푸틴 정권이 설계한 ‘정교회 국가’라는 프레임 안에서 청년들은 기묘한 동거를 이어가고 있다. 겉으로는 성화를 모시고 수도원을 찾지만, 정작 교회가 외치는 ‘승리의 찬가’와 ‘국가주의’ 앞에서는 스마트폰 너머로 시선을 돌린다. 알맹이 없는 형식주의와 국가 권력에 예속된 신앙 사이에서, 러시아의 미래 세대는 ‘문화적 정교도’라는 기이한 가면을 쓴 채 표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