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를 주장하느라 놓쳐버린 일상의 은혜

예레미야 40-41장

by 연휘

누가 봐도 부러워할 만한 '금수저' 가문의 남자가 있었다. 왕의 서기관이었던 할아버지, 왕족이자 장관이었던 아버지. 이스마엘이라는 이름 뒤에 붙은 찬란한 족보는 그러나,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불탄 폐허 위에서 그를 보호해 주지 못했다. 도리어 그 족보는 그를 망치는 독이 되었다. 자신을 실제보다 비대하게 인식하는 '거대자기(Grandiose Self)'에 함몰된 이는, 무너진 현실보다 자신의 꺾인 자존심을 더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의 시선은 총독 그달랴를 통해 허락된 '낮은 자리의 일상'을 결코 받아들이지 못했다. 성벽은 허물어졌어도 하나님은 그달랴를 통해 남겨진 이들에게 포도주를 수확하고 기름을 모으며 소박한 일상을 다시 살아갈 기회를 주셨다. 폐허 위에서 겨우 틔운 눈물겨운 생존의 축복이었지만, 이스마엘에게 이 일상은 왕족인 자신의 급(級)에 비하면 초라하고 굴욕적인 만족일 뿐이었다.


예루살렘 성벽은 이미 무너졌음에도 그의 비대해진 자아만큼은 단 한 뼘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참으로 지독한 비극이다. 이스마엘의 뒤틀린 선민의식은 가장 따뜻해야 할 식탁을 도륙의 현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심지어 그는 예배하러 온 순례자들 앞에서 '거짓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안심시킨 뒤, 무참히 목숨을 빼앗아 구덩이에 던져 넣는다. 자신의 깨어진 영광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면 타인의 경건함마저 도구로 쓰는 그 비열함. 비대해진 자존심이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 어디까지 기만적일 수 있는지, 그 서늘한 광기를 보여준다.

사실 이 잔인한 이스마엘의 칼날은, 유다가 의지하던 마지막 인간적 안식처마저 걷어가시는 하나님의 엄중한 손길이기도 했다. 어쩌면 하나님은 이스마엘이라는 아픈 도구를 통해서라도, 우리가 끝까지 움켜쥐고 있는 그놈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결국 그는 이름을 지키려다 사람을 잃었고, 땅을 잃었으며, 끝내는 자기 자신마저 잃은 채 도망자가 되었다. 자존심의 성벽을 높이 쌓을수록 그 안의 자아는 더 지독하게 고립될 뿐임을, 그의 비참한 뒷모습이 증명한다.


오늘 나는 내 안의 이스마엘과 마주한다. 내 마땅한 권리를 주장하느라 감사는 잊고, 사소한 일에 화를 내며,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고, 자기연민의 늪에 빠져 누군가를 원망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나를 증명하고 싶어 휘두른 그 뒤틀린 칼날은, 사실 가장 가까운 이들을 향해 있다. 나의 옳음을 증명하려 날을 세울수록 정작 지켜야 할 관계에는 금이 가고, 소중한 이들은 상처 입어 내 곁을 하나둘 떠나가게 될 것이다. 자존심의 성벽을 높이 쌓아 올린 끝에 기다리는 것은, 그 누구도 함께할 수 없는 지독한 고립뿐임을 이스마엘의 뒷모습이 경고하고 있다.


이스마엘의 진짜 비극은 칼을 휘두른 잔인함보다, 폐허 속에서도 포도주를 수확하고 기름을 모을 수 있었던 그 소박하지만 평범한 '오늘'을 감사로 누리지 못한 것에 있다. 나를 증명하려는 처절한 애씀을 멈출 때, 비로소 폐허 속에서도 묵묵히 흐르는 일상의 은혜가 보이기 시작한다. 무너진 성벽 안에서조차 하나님의 세밀한 자비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세상이 줄 수 없는 가장 큰 축복임을 이제야 낮은 마음으로 고백해 본다.




"사랑하는 내 딸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쌓아 올린 그 높은 성벽이 도리어 너를 가두는 감옥이 되었구나. 이제 너의 자랑도,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강박도 내 발 앞에 내려놓으렴. 스스로 증명하지 않아도 너는 이미 내게 가장 귀한 자녀란다.
이제 내가 네게 허락한 오늘로 나오렴. 그곳엔 너를 위해 준비한 선물과 평안이 가득하단다. 무너진 성벽 사이로 비치는 햇살 속에서 나의 세밀한 자비를 발견해 보렴. 네가 '나의 나 됨'을 인정하고 낮은 땅의 은혜에 기쁘게 항복할 때, 비로소 너의 진짜 축복은 시작될 거야. 내가 너와 함께 그 길을 걷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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