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계산이 멈춘 폐허 위에서 시작되는 역사

예레미야 42-45장

by 연휘

인생의 폭풍이 몰아치면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내가 정한 답'을 향해 도망친다. 머리로는 하나님을 다 아는 것 같아도, 정작 위기 앞에서는 그분을 신뢰하지 못하는 민낯이 여실히 드러난다. 수없이 많은 말씀을 들으면서도 끝내 하나님을 오해한 채 이집트로 도망치던 저 백성들의 뒷모습은, 바로 나의 자화상이었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결국 두려움이다. 거대한 공포에 눈이 가리워진 이는 더 이상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 두려움은 영적 청력을 가로막는 가장 두꺼운 벽이다.


우리의 기도가 종종 '답정너'가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위기 앞에서 하나님께 묻는 듯하지만, 사실 마음속에는 이미 내가 정한 이집트라는 결론이 내려져 있다. 하나님이 내 계획에 도장만 찍어주시길 바랄 뿐, 그분의 진짜 뜻을 따를 준비는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예레미야를 찾아온 유다 백성들도 그랬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좋든 나쁘든 순종하겠다"며 비장하게 기도를 부탁했다. 하지만 "이집트로 가지 말고 이 폐허에 머물라"는 하나님의 응답이 떨어지자마자,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예레미야를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운다. 이미 마음속엔 이집트의 안락함이 하나님보다 더 큰 신뢰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을 움직인 동력은 믿음이 아니라, 당장 죽을지도 모른다는 처절한 두려움이었다.


우리는 흔히 상황이 나빠서 두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함에 있다. 하나님의 성품을 오해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분의 크심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그분의 자비가 폐허 위에서도 얼마나 집요하게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지 알았더라면. 그분의 통치가 인간의 잔인한 칼날보다 더 강력하다는 사실을 단 한 번이라도 믿었더라면. 우리는 이집트의 군대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 든든한 성벽으로 여겼을 것이다.


두려움은 내 의지로 쫓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그분의 사랑으로 충만해질 때, 비로소 우리 안의 공포는 밀려난다. 여기서 지독하게 모순된 인생의 역설이 일어난다. 칼과 기근을 피해 달아난 이집트에서, 그들이 그토록 무서워하던 그 칼과 기근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멸망한다. 내가 나를 지키려던 수단이 오히려 나를 무너뜨리는 결말. 이것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 채 두려움에 쫓겨 다니는 삶의 비참한 민낯이다.


하나님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그분의 통치가 나의 실패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의 계산과 계획이 처참히 무너진 그 실패가 하나님께는 결코 실패가 아니라는 사실을, 내가 끝났다고 선언한 그 지점에서 비로소 그분의 거대한 일하심이 시작된다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수용하는 일이다.


그분의 사랑을 온전히 신뢰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내가 만든 허구의 안전지대로 도망칠 곳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된다. 진정한 승리는 두려운 상황을 피해 달아나는 순발력에 있지 않다. 무너지는 현실 한복판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붙들고, 그분의 크심 앞에 머물러 있는 ‘거룩한 머묾’에 있다.


사실 내가 말씀을 붙드는 것이 아니다. 실상은 말씀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어 주고 계신다. 나에게는 나를 지킬 수 있는 힘도, 방편도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피난처다. 폭풍 가운데 가장 고요한 곳, 그곳이 바로 아버지의 품이기에 오늘도 낮은 마음을 그분께 내어 맡긴다.




"사랑하는 내 딸아, 네가 끝났다고 울며 주저앉은 그 곳이 바로 나에게는 새로운 시작의 땅이란다. 너의 계산이 멈춘 그곳에서 나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음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라. 이제 도망치려는 조급함을 멈추고, 내 앞에 가만히 머물러보렴. 네가 나를 붙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미 너를 품에 안고 이 폭풍을 지나고 있단다. 두려움의 벽을 넘어 내게로 오렴. 너를 위한 자리는 이미 고요하게 마련되어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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