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빌 언덕 Dec 05. 2022

당신 집에는 오은영이 없다

상담실 이야기

(마땅히 오은영 선생님으로 호칭해야 하지만 글의 전개를 위해 이름으로 사용합니다) 


당신의 집에는 오은영이 없다. TV에만 있다. 당신이 자녀와 어떤 문제를 겪는다고 다음 날 오은영을 만날 수도 없다. 육아 서적이나 관련 강의는 일방적으로 떠들어댈 뿐 당신의 고충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의 집에는 오은영이 필요하다. 당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 이렇게 해도 되는지, 어제는 괜찮았는데 오늘은 왜 또 힘든지 털어놓고, 물어보고, 새겨들을 오은영이 필요하다.


소아정신과, 유명 상담센터에는 오은영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 지식이 뛰어나고, 언변이 뛰어나며, 주요 학술 이론과 표준적인 가르침을 숙달하고 있는 전문가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도 당신의 집에는 오지 않는다. 게다가 당신의 사소한 하소연과 미숙한 실수담을 천천히 듣고 있을 만큼 인건비가 싸지 않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기다란 시기를 지나는 일이고, 그 길고 기다란 시기를 부모와 아이가 서로 잘 지내려면 시기마다 수많은 조력자가 필요하다. 멘토링과 코칭, 응원과 토론은 자주 그리고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것은 '오느님 말씀'보다 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때로 부모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다가 너무 비전문적이고 야매스러운 길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종종 자격을 갖춘 전문가의 분명한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것도 필요하다.


선진국이 되어 가면서 어느 순간 예전에는 없던 '건강가정지원센터'가 곳곳에 설치되었고, '보육정보센터'도 생겼다. 이제는 어린이집, 유치원 등에서도 자체적으로 강사를 초빙해 다양한 강의를 한다. 육아와 아동 심리에 대해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많아졌다. (관련 전문가의 홍수 문제는 별도로 하고) 그렇게 만나는 전문가들이 오은영급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의 어설픈 고민과 질문을 받아줄 수는 있다.


선진국이 되어갈수록 육아와 아동심리에 관한 지식이 더 접근하기 쉽게 대중화되어야 하고,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일상적이 되어야 하며, 여러 상황과 문제에 맞게 다양한 유형의 전문가를 자주 쉽게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오히려 전문가에 과잉 의존하거나, 상담에 대한 판타지를 갖는 일도 적어질 것이다. 어른과 아이들 모두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일들이 비장한 각오나 비장한 비용을 준비해야 하는 일이 아니어야 한다.


오은영의 많은 가르침에 오히려 부담감을 느끼는 부모들도 있다. 오은영의 말은 하나 같이 맞는 말인데, 그 말을 듣다 보면 부모로서 내가 해야 할 숙제들이 쌓여가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당신의 부담감은 합당하며, 당신은 그 때문에 불편해할 필요는 없다. 당신이 정말 자녀를 잘 기르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오은영도 당신에게 해줄 수 없다. 그것은 당신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다. 상징적인 표현으로서의 손잡음이 아닌 정말 물리적인 손잡음 말이다.  


스타 상담가의 등장은 아동의 마음에 대해 전에 없던 사회적 관심을 모아 주었고, 상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일깨워줬으며, 부모들이 자녀를 기르며 가슴에 담고 살아갈 수 있는 소중한 지침들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오은영이 열어준 심리의 시대가 성숙기에 이른다면 우리는 육아는 함께 나누며 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고민하며 성장하는 부모 모임이나 공동체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치유되었다고 말하지 않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