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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팰럿Pallet Feb 28. 2021

돌보지 않았던 농막의 겨울

왜 우린 겨울에 농막에 가지 않았을까

많은 분들이 다음 글을 기대하고 계셨던 것 같다.

나 역시도 나의 다음 글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쓸 수가 없었다.

다들 추측하셨겠지만, 지난겨울에 농막에 거의 방문하지 않았다.

 


왜 농막에 가지 않았나?

어찌 보면, 이유는 너무 단순하다. 겨울에는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비닐하우스를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 하지만 매일매일 농작물을 돌볼 수 없는 주말농부에게, 겨울에도 농사를 지속하는 건 어렵고 피곤한 일이다. 이 겨울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불을 쫴고, 뭔가 해 먹고, 농막 안에서 쉬는 것 외에는 없다. 그래서 월동 준비를 해놓고, 농막을 오랜 기간 비웠다.

그래도 CCTV로 보는 농막이 가끔은 걱정되었다. CCTV로 볼 수 없는 시야에서 무슨 일이 생기진 않았을까. 눈이 너무 많이 왔는데, 어딘가 문제가 생기진 않았을까. 그런 걱정부터 다른 농가의 분들은 겨울에도 와서 뭘 저리도 분주하게 하실까 궁금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농막에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지난해에 텃밭 농사를 지으며, 아내는 시중에서 파는 비료도 사용해 보았고 집에서 직접 만든 퇴비도 사용해 보았다. 당연하게도 집에서 직접 만든 퇴비로 자라난 농작물은 훨씬 튼튼하고 씨알 굵은 결실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비료를 뿌린 채소는 평범하거나 작았다. 효과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우리 농지의 땅심이 이 정도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아내는 비료도 급이 있으니, 좀 더 비싸고 좋은 (예를 들면, 계분 100%) 것을 써보면 달라질 수 있다고 하며, 이번엔 비료 퇴비도 직접 만들어보자고 했다. (아내는 말로는 항상 좋은 것을 이야기하면서 뭐든 직접 만들자고 한다.)


지난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자만. 농막에도 퇴비함을 만들어 두었다. 그리고 농막을 가지 않는 겨울 동안에도 집의 세탁실 한 구석에 간이 퇴비함을 만들어 두었다. 여기엔 집에서 요리하며 나오는 채소 껍질과 이파리와 아침마다 내려 먹었던 커피 원두가루 등이 몇 달 동안 모였다.

몇 달 동안 모인 퇴비는 그 양도 냄새도 더 이상 세탁실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었다.

그래서 우린 집에 모인 퇴비를, 농막 퇴비함에 옮겨야 했다.



농막은 어땠을까?

방문 이틀 전 갑자기 눈 소식이 있었다. 동향 받이 땅인 텃밭에는 해가 기우는 오후가 되면 그늘이 져, 눈이 거의 녹질 않았다. 그래서, 아주 경사가 높은 진입로가 아닌데도 우리 차로는 올라갈 수 없었다. (체인도 스노타이어도 준비하지 못한 탓이 크겠지) 그래서 차는 대로변에 세워두고 터벅터벅 올라갔다.

농막으로 올라가는 길. 윗집은 문이 열려있지만 방문의 흔적은 없네

이 하얀 겨울 농막에서 추억 하루도 만들지 않고 지나치는 게 아쉽긴 했다. 하지만, 그 아쉬움은 그리 오래가질 않았다.



아무도 안 왔어요.

겨울의 농막은 CCTV가 없이도 인적이나 동물의 흔적을 충분히 알 수 있다.

CCTV로 본 텃밭의 모습

정말 우리 농막에는 아무도 방문하지 않았다. 동물들도 추워서 오지 않은 게 틀림없다. 정말 추웠다. 최근에 아랫집 분들에게 들었는데, 겨울에 추운 날은 영하 26도까지 내려가기도 했다고 한다. 믿을 수가 없다!!

양평이 영하 26도라고? 온도계가 고장 난 게 아니고?


농막 안은 완벽한 냉동실이었고, 모터실이 걱정되어 열어보니, 보온대책으로 해 뒀던 스티로폼 등으로 인해 물이 맺혔고, 그 물이 얼어서 모터를 사용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이래서 이불을 꾸역꾸역 집어넣어 두어야 하나보다. 이불이 없으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근데, 영하 26 도면 이불이 소용이 있을까..


모터실은 냉동 모터실이 되었네


농막 안이 냉동실이라고 했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변기가 깨질 정도였다.

분명, 지난 방문 때 모든 물을 다 빼놨는데, 변기 하단의 밸브를 모두 잠그지 않았던 실수가 이런 사고로 이어졌다. (이 일로 아내한테 많이 혼났다. 아내는 내가 이 분야의 전문가라고 생각하나 보다. 내가 알면서 놓치는 실수를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실수를 한 게 아니라, 몰랐던 쪽에 가깝다. 또는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던 것. 실수가 아니라서 혼나는 게 억울하긴 했지만, 원래 남편은 혼나는 편이지 않나.) 변기 물통만 다시 접착제로 붙여 써야지 하는 마음으로 둘러보았지만, 이미 좌변기 아래쪽까지 다 깨져있었다.

"변기가 욕실 크기에 비해 좀 크긴 했어. 이번 기회에 좀 작은 좌변기로 바꾸면 되겠다."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아주 합리적인 이유를 대며, 욕실의 변기를 뜯어냈다.

뜯어내는 건 정말 쉬웠다. 일자 드라이버로 바닥과 접착된 백시멘트를 툭툭 몇 번 치고 옆으로 밀어내니 깔끔하게 뜯어졌다.

'이렇게 큰돈을 들여 또 하나를 배우는 거지 뭐.' 하면서 아내 눈치를 보며 씁쓸한 웃음을 지어본다.

자바라로 물을 다 뺐는데, 밸브를 안 잠가서 다 깨져버렸네

좌변기는 온라인으로 구매해서, 차주에 다시 설치해야겠다. (설치까지 해달라고 하면, 설치비만 거의 6~10만 원 요구하는 것 같다.) 찾아보니 저렴한 변기는 7-8만 원 정도 한다. 설치도 셀프로 많이들 해서, 블로그나 유튜브 찾아보면 쉽게 설치 가능하리라 본다. 다음 글에서는 좌변기 설치 에피소드도 정리해 봐야겠다.


나중에 아랫집 분께 듣게 되었는데, 우리 농막 말고도 다른 농막들도 한 집 걸러 한 집의 좌변기가 다 깨졌다고 한다. 양평이 진짜 영하 26도까지 가긴 갔나 보다.



산새들이 돌아온다.

이번 주에 날이 따뜻하길래 농막에 잠시 다녀왔다. 오랜만에 오니 겨울에서 봄으로 달리는 것처럼 싱숭생숭했다.

주변에 집 짓는 농가들이 생기기도 했고, 농사 준비에 한참인 농가도 있다. 조용했던 뒷산에도 새소리가 다시 퍼지기 시작한다.

농막도 이제 냉동실을 벗어나고 있다. 물탱크가 얼긴 해지만, 물도 쓸 수 있는 수준이다. 나무를 감싸 뒀던 잠복소(겨울옷)도 모두 벗겨주었다. 겨우내 잘 버텨준 갓들을 위해 씌워두었던 작은 비닐하우스도 모두 걷어내었다. 간단한 밭일을 하는 동안 밟은 땅은 참 폭신했다. 지난 여러 계절을 지나오며 참 단단히도 굳어있었는데, 겨울을 지나며 얼었다 녹았다를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참 순한 땅이 되었다.

'나'라는 사람도 세월이라는 계절을 흘러오며 단단해지기도 하고 푹신해지기도 해야 할 텐데. 그래야 땅처럼 더 좋은 결실을 선사하는 든든함을 줄 수 있을 텐데. 문득 그런 마음이 들었다.


보기에도, 밟기에도 봄이다.

산새들만 돌아온 게 아니라 모두가 다시 돌아오는 봄이다.


다음 주부터는 다시 본격적으로 양평 농사꾼 부캐 활동을 시작한다.

아직 꽃샘추위도 남았고, 좌변기도 설치해야 하고, 겨울 동안 약해진 땅들을 다시 보완해줘야 하지만 할 일이 다시 많아지니 기분이 좋다. 다시 초록을 맞이할 생각을 하니 발이 동동 굴러진다.


다들 새해 복, 새봄의 초록 선물 많이 받는 3월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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