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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Dec 27. 2018

경제의 역사, 역사의 경제

내 나이 벌써 마흔인데 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어


경제. 인간 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 분배, 소비하는 모든 활동, 또는 이를 통해 발생하는 사회적 관계를 의미한다. 조금 어렵다고 느껴진다면 이러한 풀이는 어떨까. 물건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행위. 


경제는 ‘경세제민(經世濟民)’ 혹은 ‘경국제민(經國濟民)’을 줄인 단어이다. ‘세상을 경륜하고 백성을 구제한다.’ 삶이 팍팍해질수록 이 단어의 등장이 더욱 잦아진다. 고故 김대중 대통령이 1998년 대 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발표한 신년 휘호는 ‘경세제민’이었다. 경 제 대통령임을 강조함과 동시에 그만큼 나라의 경제가 어려웠음 을 방증하는 것이었으리라. 




경세제민의 출처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조조의 아들인 조비가 정치적인 의미로 만들었다는 설과 중국의 삼경 중 하나인 《서경》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장자의 《제물론》에 등장한다는 이야기도 존재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당시 동아시아에서 ‘경제’라는 단어는 정치와 행정을 포함하기에 지금의 의미보다 훨씬 광범위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19세기 무렵 일본의 학자 쓰다 마미치(津田眞道)가 영어의 ‘economy’를 번역할 때 중국 고전에서 적절한 단어를 찾다가 정확한 개념을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경제’라고 번역했다고 한다. 번역 이후 일본에서부터 비판이 나왔다고 하는데…. 중국의 엄부(嚴復)라는 학자는 경제라는 단어가 오히려 ‘politics’와 어울린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단어의 어감이 이렇게나 차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렇다면 오늘날 경제로 사용되는 이 단어가 실제로 어떻게 불렸어야 할까? 식량과 화폐를 의미하는 ‘식화(食貨)’라는 단어가 있다. 중국 후한시대 역사가인 반고(班固)가 저술한 100권짜리 역사서 《한서(漢書)》의 <식화지>에는 경제에 관한 기록들만 나오는데, 여기에 토지 제도, 호구, 농업, 상업, 화폐, 금융, 관리의 녹봉 등이 적혀 있다고 한다. 경제를 식화라고 바꾼다고 했을 때 벌어질 혼란을 생각하니 어색한 단어에 적응하고자 아찔해질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경제 또는 경제학을 생계(生計), 부국학(富國學), 계학(計學), 제산학(制産學: 《맹자》의 ‘제민지산(制民之産)’에서 도출), 가법(家法), 이학(利學), 이재학(利財學) 같은 단어들로 대체하고자 노력하기도 했는데, 이 중 이재학은 일본에서 19세기 말 경제학을 완전히 대체할 정도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몇 십 년 지나지도 못하고, 20세기 초에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economy’라는 단어는 실질적으로 이재학과 더 어울리지만 20세기 초 일본은 영미권의 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아니라 독일식 국가주의 사고를 중시하면서 개인의 이익을 다루는 이재학이 아닌, 국가를 떠올리는 경제학을 확고하게 선택하게 되었다. 결국 동아시아 국가들은 ‘경제’라는 단어에 익숙해져버렸던 것이다.          



현대판 한량을 소개합니다     


은행에 가거나 스마트폰 뱅킹으로 만나게 되는 예금과 적금의 금리만이 최고의 재테크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식이나 부동산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앞서 이야기한 역사에는 경제라는 의미가 이렇게나 원대하게 사용되는데 서민들에게 경제는 은행, 재테크, 내 집 마련, 전월세, 빚, 짠돌이, 부동산, 주식, 펀드, 불황 등과 같은 단어로 귀결된다. 나라의 살림살이보다 ‘나’의 살림살이가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때만 해도 사람들은 내 나라가 망하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금 모으기를 몸소 실천하면서 아낄 수 있는 것이라면 몸속 기름까지라도 다 짜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일련의 사태 이후 고용 불안은 커지고, 경제는 상황이 더욱 나빠져 끝도 보이지 않는 불황의 터널을 지나고 있기에 국가를 향한 믿음은 조금씩 바람 앞의 등불처럼 사라져 가고 있었다.


결국 오랜 시간 동안 대한민국을 다져온 ‘우리’라는 개념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대신에 서서히 ‘나’라는 주체가 중심이 되었다. 선배가 한 턱 쏘는 게 당연했는데 이제는 더치페이가 일상이 되어버렸다. 지갑은 언제나 열려 있어야 멋있어 보였지만 그러한 허세는 더 이상 칭찬받을 만한 일이 아니었다. ‘우리 집’, ‘우리 부모님’, ‘우리 회사’라는 단어는 ‘내 집’, ‘내 부모님’, ‘내 회사’로 바뀌고 있었다.




서민들에게 경제가 정치와 행정을 포괄한다는 설득은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 당장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라가 경제적으로 나를 지켜줄 수 없다는 불신이 생겼기 때문에 ‘살아남는 자가 이기는 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를 의미하는 이타주의가 아니라, ‘나’를 보듬는 개인주의가 팽배해져버린 현실이 안타깝지만 어쩌겠는가.


정부는 끝도 없이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고자 애를 쓰지만, 합법적인 불법 아래 집값은 잡힐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집 한 채 갖고 있어야, 특히 강남에 갖고 있어야 부모에게 인정받고, 친척에게 큰소리치며, 이웃에게 대접받는 사회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비난하겠는가.


그러는 와중에 국민들의 경제관념은 바뀌기 시작했다.
‘내 집’은 필요 없고, 당장 지금의 행복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탄생한 개념인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는
얼마 가지 못하였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가진 돈이 별로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흥청망청 쓰면서
자신을 과시하는 문화가 이어지겠는가.
빚을 내서 명품 사고, 해외여행 간다고 하지만
갚지 못했을 때 발생할 고통은
몇 배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워라밸 시대이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직장에만 매달려 가족도 나도 잃어버리는 삶이 아니라,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삶이다. 2018년 7월부터 주 52시간 근무가 법제화되면서 대한민국도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반응과 함께 역시나 메인으로 떠오른 부정적인 반응은 돈 문제였다. 근무시간이 줄어들다보니 월급마저 줄어든 것이다. 결국 누군가는 저녁을 여가생활 또는 가족과 함께 보내게 되었지만, 다른 누군가는 심야의 비정규직 일터로 내몰리게 되었다.


대한민국을 바꾸고 있는 또 다른 트렌드는 소확행(小確幸),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소확행의 경우,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에세이 《랑겔한스 섬의 오후(ランゲルハンス島の午後)》에서 처음 사용된 이후 서서히 알려지게 되었다. 우연히 걷던 다리 건너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석양, 아침 일찍 마시게 되는 짙은 에스프레소 한 잔, 깨끗하다 못해 향기마저 피어오르는 잠옷을 입고서 뒹굴게 되는 침대, 퇴근 후 나를 반겨주는 반려견과 마음을 나누는 시간, 서점에서 맡게 되는 텁텁한 책 향기 등 참으로 작지만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차라리 이쪽은 비용이 들긴 하더라도 소소한 이야기인지라 돈 문제에서 약간은 벗어난 듯하여 마음은 편해진다.




역사, 정부, 개인이 받아들이는 경제라는 개념은 거리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한 차이를 극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며,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제와 개인적인 미시의 관점에서 고려하는 경제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냥 모든 것을 다 떠나서 돈을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그러한 것이 복지와 연결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100원을 벌어도 마냥 행복하고 싶다. 


100원을 벌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내 옆에서 200원 벌었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어 배 아파 쓰러질 것 같은 사회는 되지 않았으면 한다. 300원을 번 사람이 얄미워서 200원을 번 사람과 작당 모의하여 합법적인 불법으로 그 돈을 빼앗고 싶은 생각만 가득한 그런 삶도 싫다.


가끔씩은 ‘모르는 게 약이라는 생각이 든다. 경제를 너무 잘 알다보면, 아니 알려고 하다보면 손해 보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빚내서 주식과 부동산에 어쭙잖게 투자하다가 패가망신하는 사람 많이 보았다. 그냥 어느 정도는 가진 것에 만족하면 될 것을, 왜 이런 것까지 경쟁을 부추겨야 하는 것인지….




내 삶의 모토 중 하나가 ‘모르는 게 약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처럼 무無에 만족하는 것이다. 사실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게 세상 편한데 왜 그리 못 가져서 난리인지. 나는 아직 차도, 집도, 아내도, 자식도 없지만 세상 편하다. 현대판 한량처럼.


갖지 못해 아등바등하기보다 있는 것에 소박하게 만족하며 유유자적 살고 싶다. 일부는 이미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지만, 사실 사촌 땅이지 내 땅이 아니니 그러려니 하는 게 마음 편하지 않을까. 

많은 의학 및 심리학 전문가와 종교인들이 조금만 욕심을 내려놓아도 세상이 달라질 텐데 왜 그런 고민과 번민 속에서 분하 고 억울해하며 사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세상은 마음먹기에 따라 천국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스토리로 맹자 읽기


마치 아버지와 아들처럼 


樂民之樂者 民亦樂其樂 憂民之憂者 民亦憂其憂
락민지락자 민역락기락 우민지우자 민역우기우 

樂以天下 憂以天下 然而不王者 未之有也. 
락이천하 우이천하 연이불왕자 미지유야.           



백성의 행복을 보고 임금이 즐거워하면, 백성 역시 임금의 행복을 보고 즐 거워한다. 백성의 걱정을 보고 임금이 근심하면, 백성 역시 임금의 걱정을 보고 근심한다. 천하와 함께 즐거워하고 천하와 함께 근심하는 임금 중에 좋은 정치를 하지 못하는 자는 존재한 적이 없다. 
— <양혜왕 下> 




리더로 활동 중인 밴드 '체리립스' 공연 영상
2017년 첫 책 <밤 열두 시, 나의 도시> 출간 후 초청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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