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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Jan 03. 2019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내 나이 벌써 마흔인데 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어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三十而立), 마흔에 미혹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五十而知天命),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고(六十而耳順), 일흔에는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물론 이는 공자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거나, 다른 위대한 성현들이나 해볼 수 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나는 도무지 자신이 없다. 나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 생각은커녕 엄두도 낼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했던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련다.     


학문에 뜻을 둔 열다섯 살인 지학(志學)에는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책상 앞에 앉아서 싫어도 억지로 꾸역꾸역 공부만 하였다. 가끔 친구들과 예술성이 불타오르는 학생 관람 불가 영화관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뜻이 확고하게 서는 서른인 이립(而立)에는 배우라는 꿈같던 직업을 그만두고 신입 편집자로서 회사생활에 적응하랴, 업무 익히랴 좌충우돌하던 때였다.


지금 딱 이 시기인 마흔, 불혹(不惑)에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미혹되지 않는 나이인데 나는 왜 이렇게 불안감을 떨치지 못해 사람들이 하는 말에 팔랑 귀가 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주식을 하거나 비트코인을 사지는 않았다. 펀드는 이익도 손실도 크지 않아 어느 정도 분산 투자하면 안전하다는 말에 매달 조금씩 적금처럼 들고만 있다. 물론 손실이 크다. 이렇게나 클 줄은 몰랐다.




그렇다면 공자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늘의 뜻을 깨달아 알게 된 쉰 살인 지천명(知天命), 귀가 순해져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예순 살인 이순(耳順), 뜻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일흔 살, 종심(從心)에는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 심지어 나이를 지칭하는 한자어에는 산수(傘壽, 80세), 졸수(卒壽, 90세)에 이어 병 없이 하늘이 내려준 나이라고 하는 상수(上壽, 100세)까지 존재하는데 나는 여전히 인생의 절반도 살지 못한, 조금 성장한 햇병아리인지도 모른다.


의학의 발달로 100세 시대를 넘어 120세 시대까지 넘보는 오늘날, 평균적으로 만 60세에 정년퇴직을 한다면 도대체 뭘 해 먹고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미래의 일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그 누구도 모르지만, 불안감에 대비하려고 연금, 저축, 부동산 등에 올인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인지도 고민스럽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이상한 사람, 혹은 더없이 현실적인 사람     


제아무리 100세 인생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100세까지 사는 사람은 드물다. 2018년 현재 한국에는 1만 8천500명 정도, 일본에는 7만여 명 정도가 100세를 넘는다고 하는데 인구 대비 비율로 봤을 때 여전히 먼 이야기인 듯싶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80세가 가장 현실적인 수명이겠다. 지금 나이 마흔, 앞으로 40년을 더 산다고 했을 때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순간부터 마음이 조급해지고 호들갑스럽게도 걱정이 앞선다.


노트를 꺼내고, 볼펜을 집어 든 채 구체적인 현재의 내 상황을 써보려고 한다. 통장은 생각만큼 알차게 꽉꽉 들어차 있지 않고, 내 집에 대한 꿈은 그다지 생각도 못했다. 수입이 있다고는 하나 생각보다, 아니 생각만큼 들쑥날쑥해서 있을 때 조금 더 신경 쓰고, 없을 때는 아주 많이 신경 쓰인다. 나에게는 먹여 살려야 할 식구도 여섯이나 있다. 누군가에게 버림을 받아 마음에 상처가 많았지만 지금은 그 상처가 대부분 치유되었다고 믿고 싶은 반려 고양이들이다.


책은 더없이 많다. 인문, 사회, 경제경영, 소설, 에세이, 여행서, 자기계발 등등. 언제나 이사할 때 걱정과 한숨부터 앞서는 처치 곤란 지식창고이다. CD는 많이 정리했다. 미니멀리즘 실천에 대해 고민했을 때 CD를 열심히 중고시장에 팔았던 기억이 있다. 옷도 좀 있다. 이제는 비싼 옷을 거의 사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하루에도 열두 번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불혹쯤 되니 옷에 대한 관심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이건 정말 다행이다. 대신 약값이 늘기 시작했다. 병원 약이든, 영양제든 어쨌거나 약값은 치솟고 있다.


이 정도가 마흔의 내가 처한 경제 사정 및 집안 상황이다. 괜히 나이에 관련된 이야기를 쓰다 보니 앞으로 다가올 쉰과 예순이 걱정이긴 하지만, 사실 열 살에 스무 살 걱정한 적 없고, 스무 살에 서른 살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서른 살에 마흔 살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냥 뭐랄까, 단순히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생활한 것밖에 없는 것 같다.


공과대를 다니던 공돌이가 배우가 될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그러다가 박봉의 편집자로 살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어서 싱어송라이터에 작가라니. 인생은 이처럼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데 무슨 10년 후를 계획하고 그에 맞춰 삶을 꾸려나가겠는가. 




하지만 기본적인 노력과 예측은 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나이 들어서 돈이 없으면 평생 고생이라는 사실을…. 속닥속닥 말 한마디 나눌 벗조차 하나둘 없으면 우울증에 걸려서 고독사 할 것만 같다는 진실을…. 그래서 기본적으로 연금, 저축 등은 지금 당장 없는 돈이라 생각하고 차곡차곡 곳간에 쌀 채워간다는 심정으로 붓고 있다. 저녁에 시간 있냐고 물었을 때 “오케이”라고 외쳐줄 것만 같은 친구 몇몇을 ‘넓고 얕게’가 아닌 ‘좁고 깊게’ 사귀고 있다.


하지만 뜬금없이 이 한 마디는 하고 싶다. 마흔쯤 되었을 때 꼭 취미는 가져보라고. 결혼을 했든, 그러지 않았든 상관없이 취미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 그대로 즐기기 위해 하는 일이 필요하다. 앞만 보고 달려온 대한민국 보통 사람들은 제대로 즐길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퇴근 후 한잔’만이 전부였을 것이다. 


제대로 즐길 줄 모르니 쉬는 날에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일밖에 몰랐으니 삶은 무료해진다. 하지만 일과 취미를 밸런스 있게 누릴 줄 안다면 마흔 이후의 삶도 가치 있게 끌고 갈 수 있다. 마흔 정도 되면 일로 지쳐 있을 나이이다. 그동안 너무 많이 일했을 나이일 수도 있다. 잠깐 쉬고 싶기도 할 것이다. 내가 나로 살지 못하고, 가족, 회사, 나라를 위해서 희생만 하며 살았는데 이제는 나로 잠시만이라도 살 여유를 가져야 할 나이이다.




운동도 좋고, 음악도 좋고, 자원봉사도 좋다. 즐겁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는 말하지 말자. “저는 지금 하는 일이 너무 좋아요. 그러니 취미가 필요 없어요.” 일은 일이고, 취미는 취미다. 가장 쉽게 떠올려보면 대한민국의 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엘리트주의에 빠져 연습에만 몰두하고 놀 때 놀고 쉴 때 쉴 수 없어서 슬럼프가 왔을 때 이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해 최악의 상황에는 조기 은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신문 기사에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였다.


여유가 없을수록 더욱 여유 있게 생활해야 한다. 즉 바쁜 와중에도 나를 위한 시간을 어떻게든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을 충분히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단, 1분이라도 가치 있는 시간을 마련해둘 필요가 있다. 그래야 지친 몸과 마음이 충전되고, 충분히 비울 수 있어야 다시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마흔의 자리에서 쉰과 예순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싫다고 몸부림치면서 시간을 어떻게든 붙들어보려 애를 쓰고,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것에 미련을 갖지 말고 뭔가 지혜롭게 대처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나이가 들수록 지혜가 가득 찬다고 하지 않나. 인생을 그만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하나둘씩 익혀두는 것이다.


이제는 젊은 시절처럼 앞만 보고 달려 나갈 나이가 아니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조금씩 옆도 보고, 뒤도 보면서 걷기도 하고 잠시 멈추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금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이 생긴다. 지쳐 쓰러지지 않으려면 그만큼 나를 잘 알아야 한다. 더 이상 미혹되지 않고 나의 중심을 딱 잡아야 할 나이, 바로 불혹의 마흔이기 때문이다. 





스토리로 맹자 읽기


장난 삼아 봉화대에 불을 붙이니      


孟子曰: 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맹자왈: 민위귀 사직차지 군위경. 


是故 得乎丘民 而爲天子 得乎天子 爲諸侯 得乎諸侯 爲大夫. 

시고 득호구민 이위천자 득호천자 위제후 득호제후 위대부. 


諸侯危社稷 則變置. 

제후위사직 즉변치. 


犧牲旣成 粢盛旣潔 祭祀以時 然而旱乾水溢 則變置社稷. 

희생기성 자성기결 제사이시 연이한건수일 즉변치사직.        




- 뜻풀이 -   

맹자가 말했다. “백성이 가장 귀중하고 사직이 그다음이고 왕은 대단치 않다. 이런 까닭에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 천자가 되고 천자에게 믿음을 얻어야 제후가 되고 제후에게 믿음을 얻어야 대부가 된다. 제후가 사직을 위태롭게 하면 즉시 바꾼다. 담은 곡식을 이미 깨끗이 하여 제사를 제때에 지냈는데도 가뭄이 들고 홍수가 나면 곧 사직을 바꾸어 설치한다.”
— <진심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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