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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Jan 10. 2019

자신의 일을 진득하게 해 나가는 것이란

내 나이 벌써 마흔인데 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어


헝가리 출신 영국 사회학자인 칼 만하임(Karl Mannheim)은 사회에 의해 영향을 받는 인간 사고(思考)의 한계를 이야기하면서 한 인간의 입장이 사실은 자기의 본래 생각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수동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보통은 인지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를 쉽게 풀이해보자면 현대인들은 자율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뺏기고 산다고 할 수 있다. 집에서, 지하철에서, 자기 전에, 심지어 걸어 다니면서도 평균 6분에 한 번씩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 때문에 깊이 있게 생각하지 못한다. (실제로 는 거의 멈추지 않고 사용하는 듯하다)      


이뿐만 아니라 이미지와 짧은 글에만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나와 같은 생각만 이기적으로 좇아가고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이기를 더없이 귀찮아하며 즉시 거부한다. 그러다 보니 편협한 세상을 빠르게 받아들이려고만 하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을 지루해하고 쓸모없다고 생각한다.     




먼 길을 찾아와 도서관에 겨우 한 자리를 발견한 다음, 여유 있게 책을 읽으며 자료를 검색하기는 언감생심(焉敢生心). 인터넷, 특히 스마트폰을 통해 즉시 결과물을 찾아낸다. 그것이 틀린 자료라 할지라도, 깊이나 넓이를 논할 정도 또한 아니라 할지라도 그다지 더 고민할 필요성조차 잘 느끼지 못한다.     


현대인들이 끈기가 부족하고, 행동보다 변명이 앞서며, 집중하지 못하고 덤벙거리는 경향이 많다고 하는 데는 이러한 이유가 복잡하게 얽혀 있을 것이다. 근본은 놓치고 지엽만 추구하는 데서 따라오는 부작용이라고도 할 수 있다. 누군가는 칼 마르크스(Karl Marx)의 책을 꺼내 들며 ‘철학의 빈곤’을 주장하고, 어떤 이는 ‘물질주의, 상업주의’의 문제점을 논하기도 한다.     




지금도 충분히 ‘빨리빨리’ 세상에 노출되어 있는데 우리는 더욱 빠르게 모든 것을 해결하지 않을 수 없다. 유선전화만으로도 충분히 일을 처리했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스마트폰이 없으면 업무를 진행하지 못한다. 결국 문명의 진화는 더욱 많은 업무 가중을 불러오고, 우리는 일이 많은데도 더 많은 일 속에 파묻혀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뿐이다.     


이러다 보니 회사는 공공의 적이 되어버리고, 직장은 아이러니하게도 필요악으로 취급받고 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나의 아이덴티티를 찾고 하루 중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는 곳인데도 전혀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열심히’라는 단어는 ‘하마터면’이라는 수식어를 동반하고, ‘꿈’은 ‘전혀 필요 없는 것’으로 전락해버렸다. 이러한 현상을 비판하기도 전에 이미 암묵적으로 사회적 합의가 형성된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도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잠시 멈추어도 좋습니다     


앞에서 어려운 이론과 부정적인 넋두리를 펼쳐놓았던 이유는 ‘빨리빨리’ 세상이 아니라 ‘진득하게’ 세상에서 살고 싶은 바람을 가슴속에 품고 있기 때문이다. 좀 더 감성적으로 말랑말랑하게 이야기하자면 모두가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가며 앞, 뒤, 옆 사람을 젖혀야만 하는 세상 어딘가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 들판에 피어 있는 민들레 한 송이에 영혼을 치유받고 싶은, 어딘가 돈키호테스럽고도 비현실적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을 것만 같은 마음을 당신과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은 물어볼 것이다. “왜 그렇게 해야 하냐고요? 바빠 죽겠는데.”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바빠서 죽으나, 조금 여유를 찾다가 죽으나 똑같은 거라면 후자를 택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이는 말장난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지극히 현실적인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역행하는 삶을 누려보고 싶다.     




•소심한 일탈을 시도했을 때 마구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의 짜릿함이 좋다.     


•남들이 하지 않는, 또는 하지 못하는 행동을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 안에서 충분히 시도해보는 현실적 경험가가 되어보고 싶다.     


•아무도 모르게 나만 키득거리게 할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로 스트레스 없이, 아니 스트레스를 최대한 줄이며 살고 싶다.     




이러한 마음가짐이 조금씩 쌓이게 되면 ‘진득하게’라는 삶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이다. 물론 어색할 것이다. 내 몸에 전혀 맞지 않다고 단념하고 싶을 수도 있다. 습관으로 굳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역시 습관의 문제이다.     


천천히 호흡하며 걷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는 것은 경험을 통해 느껴볼 수 있다. 물을 한잔 마실 때 내 몸 구석구석으로 물이 흘러내려가는 감각을 여유롭게 느끼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단 몇 분이라도 스마트폰 없이 멍하게 앉아 있으면 불안하고 초조해서 견디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몰입하고 집중하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더불어 나를 포함하여 당신을, 그들을, 그리고 사물을 제대로 바라보게 된다.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직장인이라면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회의 준비를 하면서, 마감에 돌입하게 되면서 올바르게 마무리했는지를 ‘진득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즉 꼼꼼하게 일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누군가는 이렇게 반론할지도 모른다. “정신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들여다보나요. 그러다가 회의 시간 놓치고, 거래처에 서류 못 넘기면 책임지실래요” 그런데 사실 이런 사람들은 그 일로만 부산한 것이 아니라 굳이 필요 없는 다른 일도 하느라 정신없다.     


맡은 그 하나의 일만 집중해도 부족한데, 친구와 메시지 주고받으랴, 저녁을 위한 맛집 검색하랴, 심지어 주말까지 계획하면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잡생각을 저 멀리 치워버리고 오직 하나의 생각에만 집중해서 일해도 업무 효율도 높아지고 믿음이 가는 직원으로 인식될 것이다.      


‘빨리빨리’ 세상에서 ‘진득하게’가 그렇게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때는 잠시 꺼 두셔도 좋습니다’라는
모 통신사의 광고 카피처럼 잠시만이라도 ‘천천히’라는 여유를 누려보자.
스페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Antonio Gaudi)가 설계했던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 성당이
가우디 사후 100주년이 되는 2026년에 완공된다는 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여전히 느릿느릿 미완성이지만
세계 최고의 건축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지 않은가.      


여유를 갖고 충분히 고민하고 느껴보는 삶은 분명 나를 조금씩 달라지게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그렇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로 맹자 읽기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 


曰: 有復於王者曰, 吾力足以擧百鈞 而不足以擧一羽, 

왈: 유복어왕자왈, 오력족이거백균 이불족이거일우, 


明足以察秋毫之末 而不見輿薪, 則王 許之乎. 

명족이찰추호지말 이불견여신, 즉왕 허지호. 


曰: 否. 

왈: 부. 


今恩足以及禽獸 而功不至於百姓者 獨何與. 

금은족이급금수 이공불지어백성자 독하여.    

      

뜻풀이

“왕에게 아뢰는 자가 있어 말하기를 ‘나의 힘이 백 근이나 되는 큰 것을 들 수 있는데 깃털 하나도 들지 못한다고 하고, 눈이 밝아 가을이 되어 가늘어진 새의 털끝을 살필 수 있는데 수레에 산더미처럼 실은 땔나무를 보지 못한다’라고 말한다면, 왕께서는 그의 말을 받아들이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왕이 “아닙니다”라고 답했다. 다시 물었다. “지금 왕의 은혜가 짐승에게까지 이를 정도로 큰데 실제로 왕이 베푸는 정책이 백성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까닭입니까.” 
— <양혜왕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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