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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Nov 17. 2019

[12] 소확행은 사라지고 남은 것이라고는…   

인정받는 미생의 디테일한 습관

“선배. 뭐 하세요? 그렇게나 많이 드시게요? 아님 책상에 두고 드시려고요?”


“어, 그게, 저…. 맞어. 책상에 두고 마시려고.”


정말 영혼이 뽑혀나가도록 엑셀 작업을 했더니 영혼뿐만 아니라 눈과 함께 온몸마저 흐물거린다. 점심도 못 먹게 생겼는데 이거 언제까지 해야 하나 싶기는 하지만, 마감이 코앞이라 딱히 뭐라 하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팀 내에서 점심 식사를 사러갈 시간조차 없어서인지 옆 팀에 부탁을 해야 했다. 그런데 난 옆 팀 분들을 아무도 모르는데 나보고 다녀오라고 한다.




누구한테 물어야 하나. 뭐라고 이야기해야 하나. 그 입구에서 쭈뼛거리며 서 있는데 누군가 밖으로 나오다가 나를 힐끔 쳐다본다. “무슨 일인가요?” “아, 네. 저희 과장님께서… 지금 팀이 너무 바빠서… 식사를 할 시간이… 아, 아닙니다.” 할 수 없이 내가 가야 했다. 누구를 찾아서 뭐라고 해야 할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내가 가는 편이 나았다. 그런데 결재는 뭘로 해야 한담? 당최 무엇을, 어떻게, 왜, 누구를, 어디서, 언제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멘탈 붕괴가 찾아왔다.  


다시금 우리 팀으로 돌아왔다. 매일 출근하는 곳이고 매일 만나는 사람인데 이 상황에서조차 누구에게 말을 걸고 무엇을 물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역시나 멍 하니 입구에 서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았던 것인지 선배가 다가왔다. “여기서, 뭐해요. 옆 팀에서 해준대요?” “아니요. 그게, 누구한테 물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죄송합니다.” “아, 아니에요. 사실 너무 급한 마음에 나도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시켜버렸네요. 미안해요. 이거야 원 정신이 없어서리. 잠시만요. 과장님. 식사는 내부에서 하는 거죠? … 그럼 배달로 하겠습니다.” ‘배달이 가능한 것이었구나.’ “정말 미안해요. 당연히 안 해줄 건데 왜 내가 옆 팀에 가라고 시켰지. 진짜진짜 미안해요.”




다행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 종료되어 안도의 한숨이 푹푹 내쉬어졌다. 그러고는 점심식사로 뭘 먹을지 팀원들에게 하나둘 묻기 시작했다. 누구는 삼선볶음밥을 먹겠다 하고, 다른 누구는 갈비탕을 먹겠다고 했다. 나는 정신이 없어서 입맛이 없었다. 선배는 물어보니 김치찌개를 먹겠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한 집에서 주문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역시나 당황스러웠다.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이번에는 제대로 물어봐야겠다.’ “선배, 주문을 어디서 해야 하나요? 다들 드시고 싶다는 게 다른데 한 집에서 시킬 수 있는 음식들이 아닌 거 같아요.” “한 집으로 통일시켜야죠. 잠시만요. 자, 자, 자. 주문받겠습니다. 오늘은 중국집에서 시킬게요. 과장님은… 간짜장. 대리님은… 삼선볶음밥. 나는… 삼선짬뽕. 뭘로 주문할래요?” “저는 삼선볶음밥 하겠습니다.” “오케이. 과장님, 탕수육도 하나 같이 할게요.”


이렇게 주문이 끝났다. 나는 거의 손에 땀이 날 정도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는데 나보다 1년 선배는 이렇게나 물 흐르듯이 여유롭게 주문을 마치고는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중국집에 전화하고는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 역시 잠시 정신을 차리고 책상 앞에 앉았다. 저렇게 해야 하는 거군. 다음에는 저렇게…. 이렇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너무나도 다행이었다. 옆 팀에 가서 별 일이 없었고, 우리 팀에 와서 별 일이 없었으며, 나의 지금 모습도 별 일 없었다는 듯 약간은 자연스러웠다. 방금 전까지 식은땀을 뻘뻘 흘리던 나의 모습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잠시 탕비실로 간 것이다. 그러다가 선배와 마주친 것이다. 선배의 손에는 과자가 한 움큼이었다. 믹스 커피는 거의 두 움큼쯤 되었다. 나를 보고서 ‘얼음’이 되어버린 선배. ‘이것이 바로 회사 내 소확횡(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 소확절(소소해도 확실한 절도)이란 말인가.’


사실 선배가 그냥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행동했으면 나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을 텐데 놀라는 모습을 보고서 ‘왜 놀라지?’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양이 좀 많아 보였을 뿐. 나라도 내 자리에 와서 먹는 게 없지는 않았으니. 그러고 보니 선배 자리에 딱히 과자나 믹스커피가 보이진 않았는데. 뭐,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겠지. 그러한 마음으로 탕비실을 나왔다. 




아직까지도 다들 소확행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회사 내에서는 소소한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렇게나 모두들 일을 전투적으로 하고 있는데 과연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삶에서 우연한 기쁨을 찾을 수 있을까? 도대체 뭐가 있을까?


‘보고서 정리 잘했다고 과장님이 칭찬해주셨을 때?’


‘야근 중에 뜬금없이 대리님이 내가 있어서 야근 시간 줄었다며 응원해주셨을 때?’


‘내가 업무지시를 받을 때마다 당황해하는 나를 보고서 선배가 나름 차근차근 설명해줄 때?’


이 정도는 팀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으로 누릴 수 있는 소확행일 것이다. 그런데 이것 말고도 더 있을까?




‘아침에 부랴부랴 지각하지 않으려고 전속력으로 달리며 출근하는데 로비 담당자분께서 오늘 하루 잘 보내라며 인사해주실 때?’


‘점심시간 전 배가 고파 책상 서랍을 열었는데 어제 사두었던 과자가 그대로 있었을 때?’


‘여전히 엑셀 하느라 팔이 빠질 듯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창문을 바라보았는데 햇볕이 그 어느 때보다 따사롭게 느껴졌을 때?’


‘오늘도 야근인가 하는 마음이었는데 과장님이 갑자기 칼퇴하자며 내 등을 두드려주셨을 때?’


‘칼퇴하는 발걸음이 하늘을 달리듯 가볍다고 느껴졌을 때?’




생각해보니 찾아만 보면 끝도 없이 소확행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엔돌핀, 도파민, 세로토닌 이런 호르몬들은 인간의 마음가짐, 정신 및 감정 상태에 따라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조금 더 밝고 희망적인 마음으로 회사생활을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해야 할 것이라면 조금 더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슬기로운 직장생활을 잘 해나가야 나도 스트레스 적게 받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오늘은 칼퇴하려나? 아니면 또 심야야근이려나?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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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뉴욕 시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입니다. 그러나 모든 아이들이 제대로 먹고 모든 남편과 아내가 행복해지기 전에는 그렇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시민 모두가 행복하고 잘 살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정치인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 피오렐로 라과디아


자신의 양심이 가리키는 대로 정확하게 살아온 정치인이라 평가받지만, 150cm의 작은 키에 목소리는 불편할 정도라 지적받아왔던 영원한 뉴욕 시장 피오렐로 라과디아. 오직 자신이 사랑한 도시 뉴욕만을 위해서 온 몸을 바친 그는 ‘작은 꽃’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그를 평가할 때는 결코 빠지지 않는 일화가 하나 있다. 


1930년대 미국 뉴욕의 한 법정에서 빵 한 덩이를 훔친 죄로 어느 노인이 재판을 받았다. 이때 판사는 노인에게 묻는다. “빵을 왜 훔쳤습니까?” “나이가 많아 일자리를 도저히 구할 수 없었습니다. 사흘이나 굶었는데 배가 너무 고팠어요. 미안합니다.”




잠시 후 판사는 판결을 내린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합니다. 예외 또한 없습니다. 당신에게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그리고 저와 함께 이 법정에 함께 있는 모든 방청객들에게도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웅성거리는 방청석을 바라보며 판사는 다시금 말을 이어갔다. “이 분께서 빵을 훔친 것은 오로지 이 분만의 책임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살기 위해 빵을 훔쳐야만 했던 어려운 분을 돕지 못한 책임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도 똑같은 벌금형을 내리겠습니다. 동시에 여러분에게는 50센트의 벌금형을 내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 벌금형에 동참해주실 것을 권고합니다.”




판사는 가장 먼저 모자에 10달러를 넣고, 방청객들은 너도나도 벌금형에 동참했다. 노인도 벌금을 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러고도 모자에는 47달러 50센트가 남아 있었다.  


이후 그는 하원 의원에 당선되었을 때도 자신의 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직 사회적 약자와 빈곤층을 위한 복지정책에만 매달렸다. 실업 보험 실시, 노동시간 단축, 소액 예금 보호 등도 모두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정책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는 시민들의 뜨거운 지지를 얻었지만 공화당의 골칫거리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15년 후 뉴욕 시장으로 당선되었을 때 그는 더욱 가까이서 뉴욕 시민들만을 생각하며 정책을 펼쳐나갔다. 커다란 정책이 아닌, 작지만 소중한 정책들도 뉴욕 시민들은 안정과 평화, 행복과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뉴욕이 뉴욕일 수 있었던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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