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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이응 Dec 26. 2021

연말 안부

다들 잘 지내고 계십니까



연말인데 다들 잘 지내는지 궁금하다. ‘잘 지낸다’는 건, 굳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는 팬데믹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추운 날씨에 어디 몸 불편한 곳이 없는 것에, 일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만나는 사람들 때문에 크게 마음 상하는 일이 없이 지내는 것 정도가 더해지면 된다. 그저 몸과 마음이 무리 없이 고요한 상태라면 잘 지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들’은 가끔은 연락을 하고 안부를 묻고 서로에 대한 관심을 전달할 법한 나의 지인들을 아우른다. 전화기 주소록에 이름은 올라 있으나 연락이 뜸해진 학교 동창 선후배들과, 이런저런 인연으로 알게 된 친구들과, 회사에서 만났던 위아래 동료분들과, 냉랭한 성격이지만 이런 내가 어쩌다 개인적으로 마음이 쓰이게 된 몇몇 거래처 분들도 포함된다.  만난 적은 없지만 SNS를 통해서 연결된 몇몇 팔로우 상대들도 뜬금없이 생각난다. 단말기 속 앱을 통해 근황을 서로 살피는 관계이니 이 새로운 지인들에게도 ‘다들’의 한 구석을 떼어 줄 만하다. '연말'은 그래도 1년에 한 번 정도는 안부를 물어야 할 것 같은 마음속의 빚에 대한 대출기한 같은 의미이다. 날씨가 추워지니 마음의 온도까지 내려가서 내 마음에 위로의 쓰담쓰담이 필요한 절기가 된 것도 굳이 연말을 들먹이는 데에 한몫을 했을 것이다.


나는 2021년 이 연말에 잘 지내고 있다. 내가 물은 안부에 대한 자문자답이다. 궁금하지 않은 분들도 많겠지만, 혹시 내 근황이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해 미리 답해두는 것이다. 작년 가을부터 이어온 체중조절을 위한 식단관리를 올 3월에 마치고도 여전히 체중은 정상범위를 유지하고 있고, 성인병과 관련된 수치들도 정상은 아니지만 조절 범위 안에서 관리되고 있다. 체중 조절을 위한 저탄수화물 식단의 거의 유일한 신체적 부작용이었던 탈모는 하루에 한 끼 국수를 먹기 시작하면서 다행히도 멈춰 섰다. 50대를 날씬한 대머리로 살 것인가는 결국 선택의 문제라는 걸 확인했다. 식단관리에 수반되었던 습관성 짜증도 앞서 말한 일일일면(一日一麵)의 부수효과로 말끔히 해결이 되었다. 항상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날씬한 대머리 아저씨가 되고 싶은 생각은 아예 없으니, 당분간 올해 초처럼 오서독스한 저탄수화물 식사를 할 일은 없을 것이다.

 

대신 사람들과의 관계 문제는 올 한 해 무던히도 나를 괴롭히는 주제였다. 작년 9월,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가 새로운 주주에게 인수되고 난 이후에 유독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일이 많이 급격히 늘어났는데,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여전히 나에겐 익숙해지지 않는 어려운 미션이었다. 이름을 외우고 안면을 익히고 서로의 이해관계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몇 합을 겨루고 나면,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역학이 세워진다. 이상스러울 만큼 동등한 파트너로서의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상하관계를 정하는 과정은 늘 마음의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일이 되었다. 올 해는 유독 그럴 일이 많았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만큼,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사람들과의 관계를 망치는 것도 여전히 나를 힘들게 하는 메인 테마였다. 어차피 사람들은 다가오고, 주위에 머물다가, 떠나가며 나에게서 멀어진다. 물리적으로 떠나가는 사람도 있고, 마음의 거리가 멀어지는 경우도 있다. 내가 어딘가로 가지 않더라도 오래 알고 지낸 모든 지인들과의 관계가 계속 좋게 유지될 수는 없다. 올 해에도 여지없이 몇몇 사람들에게 크게 실망을 하고 그만큼 큰 상처를 돌려 주었다. 책임의 경중에 대한 비율은 서로 다르겠지만, 사람들 사이의 사고도 자동차 사고처럼 언제나 쌍방의 과실이다. 그걸 알면서도 상대를 원망하는 마음은 여전히 나에게 남아있고, 딱 그만큼 난 힘들게 지내고 있다.

 

사람 덕에 좋았던 기억도 있다. 그러니 한 해를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그중 하나가 함께 일했던 20대 중반 후배분들과의 즐거운 교류였다. ​인턴이나 단기 계약직 등의 포지션으로 7명의 후배분들이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 정도 함께 일하게 되었는데, 이 분들에게 업무적인 관계를 넘어서 뭔가 직업적인 도움과 좋은 영향을 주고 싶은 욕심이 생겼었다. 평소 같지 않은 오지랖이란 생각에 주저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MZ라는 이름으로 억지로 규정된 이 집단에 대한 개인적인 궁금증으로 좀처럼 없었던 용기를 내어 보게 만들었다. 이 분들과 일하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특징은 꾸밈없는 솔직함과 변화에 대한 수용성이었다. 예민한 주제에 대해서 의견 차이가 있을 때에도 명확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제법 차이가 나는 선배와의 커뮤니케이션에서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모습이 긍정적으로 보였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함께 고민을 나누는 자리에서 건넸던 뼈아픈 조언들에 대해서는 납득도 잘하고, 스스로 동의하고 받아들이는 모습들이 기특했다. 이 과정에서 나도 젊은 후배들과 말이 통하는 동료로서 함께 일할 수 있다는 묘한 자신감도 생겼다. 다시 생각해 보니 혼자만의 착각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올 한 해, 당신이 크게 아픈 곳 없이 몸과 마음을 건사하고 있기를 바라는 내 마음이 전해지면 좋겠다. 팬데믹과 그 밖의 여러 이유로 당분간 직접 만나 감사와  칭찬과 지지와 위로의 따뜻한 인사를 건넬 수는 없지만, 이 상황에서 허락되는 방법으로 마음의 온기가 전달되면 족할 것이다. 연말에 다들 잘 지내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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