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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옹이 Nov 28. 2018

자취하면 삶의 질이 올라가나요?

'집안일'이라는 하나의 예술에 관해서

최근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서 '자취하면 삶의 질이 올가가 나요?'라는 질문을 보았다. 어떤 맥락에서 나온 질문인지는 모르지만 자취하던 나의 경험을 생각해 보았다. 대구에서 상경 후 자취를 시작하고 내가 가장 놀랐던 건, 내 몸에서 '털'이 이렇게 많이 나오나 하는 거였다. 머리카락과 같은 체모들이 집에 굴러다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곧바로 동네 슈퍼에 가서 작은 빗자루를 샀던 기억이 난다.(그리고 빗자루는 잘 쓰지도 않은 채 방치됐다.) 


그렇다면 왜 대구에서 살 때 나는 이걸 몰랐을까? 정답은 간단하다. 매일 엄마가 청소를 했기 때문이다.


자취에 대한 로망이 있다. 오롯한 나만의 공간. 잘 정리된 침구와 책상. 그리고 아늑한 조명까지. 여기에 책상 위에 그럴싸한 소품과 스피커 정도 있으면 좋을 거 같다. 하지만 현실은 왕자행거와 의자 등받이에 주렁주렁 걸쳐지는 내 옷과 밀린 빨래. 그리고 굴러다니는 내 체모(...)였다.


아무튼 그 커뮤니티의 질문에 대해 나는 이런 답변을 남겼다.


"자취를 하면 자유로울 거 같은데 나의 삶과 나의 공간을 관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량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생활의 많은 부분을 엄마가 해주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요. 그런 깨달음과 성찰을 모두 합하여 ‘삶의 질’이라고 한다면 분명히 올라가는 건 맞겠죠. 하지만 의외로 많은 자취하는 사람들이 그런 생활력을 발휘하기 힘들어요.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밖에서 에너지를 소모하고 나면 집에서 더 이상 에너지를 내기가 어려워요. 전 그래서 가사일 하시는 분들 존경해요. ‘집에서 논다’라는 말은 어불성설임 ㅋㅋ"


절대 가사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특별히 남성/여성으로 한정 짓지 않겠다.) "집에서 논다"라는 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 집이 되었든 건강이 되었든 무언가를 '유지'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커다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왔을 때 잘 정돈된 집을 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행복도는 올라간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행복도를 높이기 위해 자신의 노동을 투입하는 누군가에 대해서 "논다"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집안일'은 그것 자체로 숭고한 하나의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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