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더미
그날 새벽 나는 책을 꺼내 들었다. 책을 읽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자신이 없었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을 온전한 정신으로 지새우려면 읽고 또 읽어야 했다. 책을 이루는 표현은 잘게 조각나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머릿속을 하염없이 떠돌아다녔다. 눈동자만 글자를 쫓는 상황이었지만 읽는 행위는 책 너머에 있는 무거운 과거로 나를 조금씩 밀어 넣었다.
책은 맹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맹세는 그 자체로 아무것도 정초하지 않는다. 맹세는 진술 일반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 효력의 보증에 관한 것이다.’ 나는 거친 종이 표면에 인쇄된 조각난 문장들을 끊임없이 되뇌었다.
책을 꺼내 들기 전날 밤 나는 맹세를 했고 그보다 훨씬 더 전에도 맹세를 했다. 이 두 번의 맹세는 서로 관련이 있었지만 동일하지는 않았다. 전날 밤의 맹세가 선언의 맹세였다면 그전의 맹세는 약속의 맹세였다. 나는 방 한구석에 누워서 약속의 맹세로 시작해 선언의 맹세로 끝난 그 기억을 떠올렸다. 처음엔 안타까움이 온몸을 적시다가 뒤이어 슬픔이 밀려왔다. 슬픔은 맹세의 시작과 끝 사이에 기입된 모든 순간을 하나의 점으로 응축했다. 한동안 나는 이 응축된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맹세는 맹세로 깨졌다. 약속의 맹세는 말과 사물의 드넓은 간극을 메우고 말하는 자와 듣는 자 사이를 오가는 언어에 믿음을 부여했지만, 선언의 맹세는 이 믿음을 너무도 쉽게 무너뜨렸다. 어쩌면 내가 한 약속의 맹세에 거짓이 있어서 믿음이 그렇게 쉽게 무너졌는지도 모르겠다. 거짓된 맹세는 일차적으로 말하는 자의 의도된 거짓과 관련이 있지만 의지나 능력 부족으로 맹세를 계속 유지할 수 없는 경우에도 거짓이 될 수 있다. 나는 참된 의도로 수행한 약속의 맹세를 끝까지 지켜 내지 못했고 결국 약속이 깨졌다는 걸 선언하게 되었다.
나는 처음의 맹세를 또 다른 맹세로 깨뜨린 결과를 온몸으로 견디며 맹세하기의 가벼움과 맹세 지키기의 무거움에 대해 생각했다. 맹세는 발화된 진술을 약속하고 보증하고 선언하는 언표내적 행위인 까닭에 맹세의 효력은 온전히 책임의 울타리 안에서 나타난다. 책임의 울타리가 낮을수록 맹세는 쉽게 표현되고, 쉽게 표현된 맹세는 쉽게 끝이 날 가능성이 높다. 맹세가 ‘말하는 자-듣는 자-사물(사태)’ 사이의 관계를 미묘하게 비트는 언어의 근본적인 한계를 보완해 준다고 할 때, 맹세의 깨짐이 반복될수록 세 대상은 비틀린 상태를 회복할 기회를 잃는다. 그리고 맹세가 더 이상 언어의 비틀림을 보완하지 못하는 순간이 오면, 말하는 자는 듣는 자의 귀를 믿지 못하고 자신이 본 사물(사태)을 믿지 못하며, 듣는 자는 말하는 자의 입을 믿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날 새벽, 나는 맹세에 관한 기억과 깨달음 사이에서 종이에 인쇄된 조각난 문장들을 아침이 올 때까지 의미화하지 못하고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책은 지금도 특정한 의미로 정리되지 못한 채 잘 보이지만 꺼내기 힘든 책장 한구석에 꽂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