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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극배우 B씨 Aug 21. 2020

택배 아저씨와 바람피우는 며느리

이혼 전 이야기 #.3

집에 들어가자 시어머니는 오늘도 또 그 소리다. 

지겹다.

또 <택배 아저씨>의 전화가 문제였다.

맞벌이를 한 덕에 장보는 것 말고는 인터넷 쇼핑을 주로 했다. 

택배가 배달되기 전 

'택배가 있는데 아무개 씨가 집에 있냐.'는 낯선 남자의 확인 전화.

보청기를 끼는 시어머니는 그 남자의 목소리와 며느리 이름 석자. 이것만 가지고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나에게 전화를 하거나 퇴근하는 나를 붙잡고 또 다그쳤다.


어떤 남자인지 너를 찾는 전화가 계속 온다고. 

밖에서 뭐하고 돌아다니는 거냐고. 그리고 마지막에 늘 쐐기를 박았다.

"하나님은 다 아신다!" 그리고 변함없는 그 말, 

"주여~~~~~! 어이구 어이구..."

... 그래, 하나님은 정말 아신다고 아셔야만 한다고 나 또한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나도 알고 있었다. 

내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온갖 애를 썼듯이 시어머니 또한 자신의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며느리를 욕해서라도 내 자식을 잃지 않으려 하신다는 것을. 

귀가가 늦어지고 주말에도 약속이 생겼다며 외출이 찾아진 남편이 결국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된 후 시어머니는 며느리 표정을 살피면서도 적극적으로 아들 편을 들기 시작했다.


"남자들 바깥일 하다 보면 다른 여자 만날 수도 있다. 아예 집에 안 들어오는 것도 아니잖냐. 우리 아들이 그런 애가 아닌데 네가 얼마나 쌀쌀맞게 했으면 좀처럼 안 그러던 얘가 저러겠냐."


피식 웃음이 났다. 

예전에 들었던 말이었다. 

시아주버님이 젊었을 때 바람을 피운 것을 형님이 알게 돼서 머리를 싸매고 끙끙 앓아눕자 그 당시에도 시어머니가 큰며느리에게 저렇게 이야기했다며 형님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점점 며느리와 아들의 사이가 냉랭해져 가며 대화가 없어지자 시어머니는 나를 향한 꼬투리를 찾기 시작했다. 택배 아저씨는 물론 잘못 걸려와 그냥 끊어지는 전화까지도 나를 찾는 남자의 전화라고 확신했다. 

'아무개는 이 집 며느리이고 내가 시어머니인데 누구요!'라고 큰소리로 물었더니 황급하게 전화를 끊더라며 이미 이런 증거가 수도 없이 많다고 하셨다. 

듣다 듣다 못해 대꾸했다.

"어머니, 바람피우는 여자가 미쳤다고 집전화로 전화하라 그래요? 저 핸드폰 있어요.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겠죠, 왜 집전화를 알려줘요?"




소용이 없었다. 입만 아플 뿐이었다. 

언젠가는 여호와의 증인인지, 다른 교단이었는지 가가호호 초인종을 누르는 사람들이 왔길래 돌아가라는 대화를 현관에서 하는 것을 보고 그것마저도 의심을 했다. 누구냐고, 대낮에 왜 너한테 왔으며 무슨 이야기를 했냐고.


술을 먹고 늦게 들어오는 남편 대신 시어머니와 저녁시간을 내내 같이 있다 보니 퇴근 이후의 이런 시간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스트레스가 반복되자 이대로 가다가는 어쩌면 내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에서 내가 지나갈 때마다 쏘아보며 한숨을 푹푹 내뱉는 시어머니 눈빛을 감지하던 순간 청소하러 들어간 빈방에서 손에 쥐고 있던 청소기를 끓어오르는 분노만큼 벽에 휘둘렀다. 



정확히 청소기는 세등분으로 박살이 났다.



그렇게 청소기를 부수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다 으스러진 청소기를 안고 서비스센터에 청소기 부속을 사러 가는 내 모습을 보며 섬뜩했다.

무언가 파괴하고 박살을 내니까 속이 후련했다. 숨어서 우는 것보다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나도 모르게 이성을 또 잃을까 봐 퇴근 후 주차장에서 심호흡을 크게 하고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마치 보리차를 마시듯 아이들 몰래, 시어머니 몰래 머그잔으로 양주 두 컵을 벌컥벌컥 들이붓고 저녁을 차렸다. 

맨 정신으로는 집안에서 버틸 수가 없었다. 

취기가 올라와 사물이 몽롱하게 보이면 나를 쏘아보는 그 따가운 시선도 너그럽게 넘어가졌다. 

기분도 적당히 좋아져서는 아이들에게 한층 UP이 된 음성으로 동화책을 읽어줄 수 있었고 집안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다 아이들을 재우면서 나도 술김에 자연스럽게 잠이 들었다.


술의 힘으로 자는 나를 깨우는 것은 남편이었다. 

매일 누구와 그렇게 약속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술이 잔뜩 취해 12시가 넘어서 들어온 남편은 자는 나를 깨워 나가라고 했다. 애들에게 당신 같은 엄마는 필요 없다며 이 집에서 나가라고 했다. 


술 깨고 내일 이야기하라도 해도 막무가내였다. 

화가 나 대꾸를 하면 '뚫린 입이라고 말 함부로 하고 있네.'라고 했다. 그 말은 시가 식구들이 농담으로 자주 주고받던 말들이었다.


남편은 내가 없어도 일상생활에 아무 지장이 없는 사람이었다.  어머니가 총각시절부터 지금까지 보살펴왔기 때문이다. 결혼을 해서도 어머니를 그대로 모시고 살게 되면서 자신의 가정에 수발을 들어줄 여자가 하나 더 들어온 것일 뿐, 맞벌이와 공동육아의 그 치열한 삶의 현장이 남편에게는 없었다.


낮에는 어머니가, 저녁에는 퇴근한 내가 아이들을 케어하고 집안 살림을 해나갔다. 보통의 아빠처럼 퇴근하고 술 약속도 뒤로한 채 부랴부랴 아이들을 찾으러 아내와 교대로 어린이집에 뛰어가야 하는 의무가 남편에게는 없었다.


만취해서 들어온 다음날이면 어머니는 북엇국, 콩나물국을 끓여 아들 머리맡에 내려놓고 다정하게 깨웠다. 한술 뜨고 출근하라고.

유치원 아이처럼 비몽사몽 일어나 욕실로 씻으러 들어가면 어머니는 아들이 덮고 잔 이불을 개어 끙끙거리며 장롱에 넣었다. 70대 노모가 40이 된 아들 수발을 들고 있었다.


아침잠이 많은 남편을 둔 덕에 나는 새벽 6시 15분 버스를 타기 위해 5시에 일어났고 남편은 7시 30분까지 푹 자다가 집에서 20분 거리인 직장을 차를 가지고 다녔다.


'그래, 남편이 괜히 지각해서 직장에 찍히는 것보다 조금 부지런한 내가 움직이면 되는 거지 뭐.'

나는 배려라고 생각했다. 내 몸과 마음이 망가져 가는 것도 모르고 그렇게 했다.


남편에게 어머니가 없었다면 아니 최소한 한집에서 같이 살지 않았더라면, 아내의 눈치를 살펴서라도 집안일은 함께 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결혼생활의 동지와 같은 맞벌이 아내와 다투어 봤자 설거지와 빨래 더미, 냉랭한 기운만 늘어날 뿐이니 풀건 풀고 사과할 건 사과해야 집안 분위기가 다시 좋아진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타협이란 걸 시도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럴 필요가 남편에겐 없었다. 아내가 화가 나서 냉랭하게 삐쳐있으면 어머니가 밥을 차려서 아들 코앞에 대령했다. 집안일은 같이 하는 거라며 세탁기를 돌리지 않으면 어머니가 또 몰래 빨래를 했다. 남편은 철없는 남자아이 같았고, 그것을 고치면서 살려는 나는 점점 기운이 빠졌다. 귀한 내 아들에게 떽떽거리는 미운 며느리가 되어 갔다.


남편이든 시어머니든 한 집에서는 도저히 못 살 것 같은 시간들이 이어지던 날 마지막으로 가까이 사는 시누에게 부탁을 했다.

"형님이 아시는 것처럼 애들 아빠는 어머니에게 의존하는 성향이 많아요. 어머니가 중간에서 모든 걸 다해주시니까 나랑 말다툼을 하거나 의견이 안 맞아도 딱히 화해할 필요가 없는 거라고요. 그 마음은 알겠는데 아들 편만 들고 모든 걸 다해주시니까 애들 아빠도 아쉬울 게 없는 거예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몇 달 만이라도 오로지 남편과 제가 애들 교대로 케어하면서 치열하게 살아볼게요. 서로가 정말 필요 없는 존재인지 아닌지 느껴야 해요. 형님들이 다 가까운데 계시니까 어머니를 잠시만 모셔가면 안 될까요?"


결론적으로 나는 너무 순진했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그들에게 내 결혼생활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를 절대로 모시기 싫다는 말이 아님을, 우리 힘으로 몇 달만 지지고 볶고 살아보겠다고 도와달라고 했던 내 부탁은 '일 나가는 올케 대신해서 애 키워주고 살림해줬더니 우리 엄마를 뒷방 노인 취급한다.'라는 해석으로 돌아왔다. 


"우리 엄마를 뒷방 노인 취급한다면 그게 올케든 누구든 가만 안 둬."


남편이랑 힘을 합쳐 가정을 꾸려나가고 싶은 절박했던 마음을 같은 여자로서 이해해 줄 것이라 믿었던 나의 희망은 혈연으로 똘똘 뭉쳐진 시누이의 경고로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어항 밖으로 던져진 금붕어처럼 이 집에서는 내가 잠시도 숨을 쉴 수가 없는데 그렇다고 아이들을 놓고 나갈 수도 없었다. 월급은 남편이 많고 주양육도 할머니가 했으니 내가 키우겠다고 해도 자녀들의 심리적 안정과 양육환경을 핑계 삼고 반박하면 이길 승산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념의 시간들을 지나고 있었다. 

더불어 몸과 마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고, 버스정류장에서 또래의 아이를 보면 또 울음이 터졌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분이 널을 뛰고 있었다. 


극심한 우울증에 결국 항우울제를 먹기 시작했고 퇴근해서는 늘 무기력하게 누워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보일러실 가스배관에 목을 매는 상상을 했다. 

아이들을 떠날 수도 없고 이 집에서 남편과 시어머니를 보면서는 내가 살 수 없으니 밖에 아니라 아이들이 있는 이곳에서 죽어야 영혼이라도 여기 머물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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