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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극배우 B씨 Sep 10. 2020

이혼 신고하러 왔습니다.

이혼 후 이야기 #. 1

휴가를 내어 시청 민원실에 갔다.

미리 준비해 간 서류를 첨부해서 신고를 끝냈다.


시청을 나왔다.

차디찬 1월이었지만 춥지 않았다.

날이 참 맑았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없는 텅 빈 집에 들어와 옷장을 열었다.

깊숙한 곳에서 작은 종이가방 하나를 꺼냈다.

원피스형 얇은 잠옷과 앞섶이 뜯어진 연두색 남방이 들어있었다.


연두색 남방은 

같이 살 때 시어머니에게 멱살을 잡혀서 앞이 다 뜯어진 옷이었고

얇은 여름 잠옷은

남편에게 머리채를 잡혀 다니던 그날 밤 입은 옷이었다.

복도를 끌려다니느라 묻었던 먼지와 흙이 잠옷에 그대로 있었다.


나란히 방바닥에 펼쳐놓았다.

5년 전 이삿짐을 싸며 급하게 종이가방에 구겨 넣었었다.

잠옷을 입고 있었던 그날, 그 시간의 내가 손에 잡힐 듯 보였다.



"힘들었지? 이젠 괜찮아?"



......


혹여나 아이들이 옷장을 열다가 볼까 봐 

이걸 펼치면 내 가슴이 다시 너덜너덜 해질까 봐

섬에서도 꺼내지 못했고 세탁도 못해두고 있었다.

다시 입지 않을 옷이니 세탁할 필요는 없었다.


아이들을 품고 3번의 이사를 하면서 부적처럼 가지고 다녔다.

가슴 아픈 흔적이었지만 버릴 수가 없었다.


악몽에 시달렸지만

그 옷을 입고 울고 있던 나를 그대로 잊기가 싫었다.



꺼낸 옷들을 보니 그날의 수치심이 다시 한번 밀려왔다.

이것을 입고 있었을 때 

난 나쁜 년이었고 

난 형편없는 년이었고 

난 맞아도 싼 년이었고 

복도 창문에서 떨어져 죽어야 되는 년이었다.


경찰서로 가자는 경찰관에게 옷을 좀 갈아입고 오겠다고 했다.

복도의 먼지를 쓸고 온 이 잠옷을 누구에게도 보이기 싫었다.


다짐을 했다.

이 옷을 입고 있는 지금의 나를 다독일 수 있을 때까지 참고 살아남겠다고.

살아남아 기회를 엿보겠다고.

그리고 반드시 갚아주겠다고.





전남편이 퇴직 때까지 건강하게 직장생활을 잘해나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이유는 하나였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 양육비를 끝까지 받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내 남편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그 여자네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지 않았던 건, 혹시나 그 여자의 남편이 고소해 애들 아빠가 직장에서 잘리게 될까 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웃들이 보는 앞에서 폭행당하고도 경찰서에 가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또박또박 말했던 것도 아직은 애들 아빠가 망가지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철저히 버림받고 아이들의 친권과 양육권 모두 뺏기고, 그저 돈만 입금해주는 기계로 살아가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룬 가정이 박살 날 때에도 엄마가 누나가 우선이었던 그 사람에게 잘못을 알려줘야 했다.

평생 후회하며 울어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알게 해야 했다.


오늘 이 시간을 만나기 위해 내가 얼마나 소리 죽여 울고 항우울제를 털어 넣으며 죽고 싶은 유혹을 이겨냈던가.


이제는 아픈 기억을 밝은 곳으로 꺼낼 때가 된 것 같았다. 

이제는 이 옷들을 버려도 내가 괜찮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곱게 개었다.


휴지통에 넣었다.

더는 쳐다보지 않고 돌아섰다.


상담치료를 받을 때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지금은 많이 아프시죠? 하지만 결국 세월이 벌 줄 거예요."



옷을 버리고도 한동안 힘들었다. 여전히 가슴이 뛰었다.


용기를 내는데 2년이 걸렸다.

혼자 그 아파트를 찾아갔다. 


살아보겠다고 아직은 죽기 싫다고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치듯 뛰쳐나온 곳이었다.


주차장에 도착해 한참을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다가 심호흡을 크게 하고 내렸다.

그리고 천천히 올라갔다.


살던 곳은 4층이었다.

계단을 올라가 복도 끝에 서서 저만치 내가 살던 집 현관문을 쳐다보았다.



지금보다 훨씬 더 작은 내 아이들이 분홍색 목도리를 두르고 깔깔대며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힘겹게 장바구니를 들고 들어가는 내가 보였다.

퇴근 가방을 들고 현관 비밀 번호를 누르기 전 불안한 얼굴로 심호흡을 크게 하는 내가 보였다.


엄마가 보낸 쌀자루를 끙끙대며 들고 나오는 내가 보였고

머리채를 잡힌 채 끌려 나오는 내가 보였다.


마지막 내 옷 보따리를 들고 이삿짐 아저씨와 나오는 내가 보였다.


복도에 한참을 그렇게 서있다가 내려왔다.

차에 시동을 걸고 핸드폰을 열었다.

그날 쓰지 못했던 일기를 그제야 썼다.



혼자 많이 힘들었어.

내편이 없었어.

달이 뜬 새벽에 울면서 출근하고

저녁 버스로 피곤한 몸 이끌고

애들이 있어 죽지 못해 들어왔어.


멱살을 잡혀 옷이 뜯긴 채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쳐 나왔었고,

엄마가 보낸 쌀을 다시 가지고 내려와서 차에 실었지.

잠옷바람으로 끌려 나와

저 4층 복도 창문에서 떨어져 죽을 뻔도 하고

그날 슬픈 새벽, 혼자 피해자 진술서 쓰고 쓸쓸히 귀가했어.


혼자 애들 짐, 내 짐 챙겨서 이사 나왔고

내가 산 차가 처음으로 주차되었던 여기 마당.

참으로 우울하고 쓸쓸했던, 휑하였던 여기.


혼자 웅크리고 울고 있던 너를 데리고 나갈게.

이제 밝은 곳에서 웃으며 마음 편히 살 수 있어.

나랑 같이 가자, 

나랑 나가자.


복도에서 그렇게 울고 있지 말고 이제 나가자.

고생했다. 

애썼어. 

잘하고 있어.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말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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