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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극배우 B씨 Sep 23. 2020

나와 이혼한 당신에게 쓰는 편지

이혼 후 이야기 #. 13

아빠네 갔다 온 아이들의 휴대폰담긴 희끗한 흰머리의 당신에게서 세월의 속도를 조금씩 본다. 당신도 한때는 젊고 패기 있고 승진이 빨랐던, 아내와 맞벌이를 하며 홀어머니를 모시며 효자 소리 좀 듣던 남자였지.


집안에서 남편을 대신해 어머니 극진히 모시고

아이들을 잘 키우고

집안일은 알아서 다 처리해주며

남편 퇴근하는 시간에 맞추어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여내는 앞치마 두른 아내와 사는 게 소원이었다던 사람.


내가 미래를 보는 혜안이 좀 더 있었더라면

조금만 더 나이를 먹은 뒤 결혼을 결심했더라면

아니, 

내가 하는 만큼 남편이란 단짝이 나를 알아줄 거라는 생각이 허황된 것이라는 것을 티끌만큼이나 마 알았더라면

나는 결혼을 그렇게 쉽게 결정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미 해버린 결혼이었다 해도

준비되지 않은 부모가 되기 전에 우리가 과연 아이의 20년 남짓한 초반의 인생을 책임져 줄 수 있는 자질이 있는지 어디 가서 테스트라도 해보았거나


그것도 안되면 당신과 피 터지게 싸우더라도 어머니에게 의존하는 그 성향과, 내 핏줄이 먼저라는 그 생각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했을 거야. 이 결혼생활을 애가 태어나기 전에 지속할지 그만둘지를 말이야.


나처럼 당신도 어릴 때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집에는 다섯 명의 누이들과 엄마, 그리고 형수와 형이 있었어. 다들 아버지 얼굴도 제대로 모르고 크는 막내를  불쌍하다 여겼을 거야.


그것이 당신에게 독이 될 줄은 몰랐겠지. 누나들과 엄마가 형수가 집안의 모든 여자들이 당신을 돌봐주고 아껴주는 편안한 환경을 만들었을 테니까.


여자들에게 보살핌을 받는 게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야.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에 당신은 아버지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남자가 가정을 이루면 어떻게 책임지고 이끌어나가야 하는지 배울 데가 없었을 것 같아.

남자로서의 롤모델을 알지 못하고 자랐겠지.




재혼을 했으면 전처인 내가 잘못된 배우자였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잘 살았어야지. 안 그래?

'정규직이 되나 두고 보겠다.' 이런 유치한 말들보다

그게 가장 확실하게 복수하는 방법이 아닐까.


나는 한 번의 결혼생활로 인해 내가 겪을 수 있는 모욕감과 절망은 한 번에 다 학습한 것 같아서 두 번 다시는 하고 싶지도, 할 생각도 없어.


혹여나 누구를 만나게 되든 당신이 떠오를 거야. 남자에 대한 불신이 당신을 보듯 피어오르겠지.


그리고 그 생각은 당신의 재혼을 보면서 더욱 확고해진 것 같아.

또다시 슬픔 속에서 사는 아이를 만들어낸 거야.

나는 하늘이 무서워서 더 이상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

당신의 고집대로 우리 아이들을 당신이 데려가서 키웠다면 어땠을까.


이 세상엔 훌륭한 새엄마도 정말 많아.

오히려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더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해.

하지만 축복받아야 할 이를 세상에 내놓은 채 또다시 갈라서는 두 사람을 보면서 만약에 우리 아이들이 아빠와 살았다면, 새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것을 매일 보았을 고 죄 없이 태어난 갓난아이의 보모가 되었을 테고 새엄마가 나가버린 자리를 중학생 고등학생인 우리 딸들이 설거지를 하고 걸레를 빨며 눈물로 채웠겠지....


내가 당신보다 잘 살고 있다는 것이 아니야.

아이들을 위해 그래도 내가 고집했던 결정이 옳았구나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당신 사는 걸 보면서 요즘은 많이 느껴.


아빠는 매일 저녁 소주를 기본 2병으로 마시고 기분 좋으면 3병도 마시고 아기가 있는데도 딸들이 놀러 왔는데도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고 매주 토요일 저녁 로또를 맞춰보다가 에이씨하며 로또 종이를 구겨서 버린다고 하더라.


나와 결혼 생활할 때도 늘 보았던 익숙한 모습들이 아직도 있구나. 당신은 정말 변함없구나.

20년이 넘게 로또를 매주 사느니 그 돈으로 주식을 한주씩 사두는 건 어떨까.


나?

나는 잘 지내지. 이혼을 하고 나서 더 건강해졌어.

책도 많이 보고, 운동도 매일 하고 명절이면 한 달 전부터 소화불량에 잠을 못 자는 게 아니라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분노도 우울도 없는 연휴를 보내.


사춘기 아이들을 키우는 게 쉬운 건 아니지만 당신과의 그 십 년 남짓한 결혼생활보다 지금이 그리고 앞으로가 나는 더 건강하고 행복할 거란 것이 지금도 예상이 돼.




당신도 이유가 있었겠지.

나와 못살겠다고 한 이유가 있었겠지.


하지만 내가 지옥 같던 그곳에서도 이혼을 실행하지 못했던 건 맞아서 아픈 몸과 마음보다 아이들의 눈물을 외면하 어려워서였어.


당장 힘들어도 같이 살면서 부부상담이라도 받아보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 그 한줄기 잡고 버티려고 했지.


하지만 이제 보니 나는 잘한 선택이었어.

당신이 나가라고 했을 때 그 말을 넙죽 받았던 내가 지금 보니 옳았던 것 같아.


그때 울고불고 내가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며 눈치 보며 살 수도 있었을 거야

하지만 나는 그 정도로 연기를 할 수 있는 강단이 없었고 설령 그랬다 하더라도 평생 우울한 엄마의 얼굴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살았을 것 같아.


아이들의 그림일기에는 늘 엄마가 힘없이 누워 있거나, 아빠를 향해 악다구니를 쓰거나, 할머니와 싸우는 모습이 그려졌을지도 몰라.


그리고 당신을 끝없이 저주하며 보이지 않는 칼을 등에 꽂고 피를 흘리며 살았을 거야.

그것이 정상적인 삶이었을까.



당신은 남편의 외도를 목격하기라도 했냐고, 의부증에 걸려서 미쳐 날뛴다고 했고,

당신의 가족들과 사이가 멀어지니 어머니와 누나들에게 잘하지 못한다고 소리쳤지...

내가 당신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지금까지 살아보니 부부는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함께 사는 사이는 아닌 것 같아.


의심 살만 한 내 행동으로 인해 상대방이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지 헤아린다면 그런 말은 할 수 없을 거야. 

그냥 미안하다고 하는 게 당신에겐 어려웠을까.


그래도 나는 참 감사해.
우리가 서로에게 더 상처를 주기 전에, 더 못 보여줄 꼴을 보여주기 전에 우리는 멈췄으니까.

각자에게 맡겨진 의무만 다한다면 적어도 이제 서로에게 원수는 되지 않을 테니.



내가 누구에게 충고할 만한 위치는 아니지만

애들 아빠, 이제 몸을 생각해요.


한 달에 60병이 넘는 소주를 마시고 매일 담배를 피우다가는 간절하게 더 살고 싶은 인생의 끝자락 그 몇 년의 기회가 사라질 수도 있어.


그 날이  결혼식 날 손잡아 주는 전날일 수도 있고, 더 넓은 세상으로 가서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될 날의 하루 전일수도 있어.


그리고 아직 세 살도 안된 아이를 당신은 키워야 하잖아. 책임져야 하잖아. 

우리 아이들처럼 또 그렇게 만들지는 말아야 하잖아.






마지막으로 두 가지만 부탁할게.

첫 번째

나이가 들어서 우리 아이들에게 절대 의지하지 말자. 풍족한 집안에서 부모사랑 동시에 듬뿍 받으며 키운 아이들이 아니야.


아주 어렸을 때부터 당신과 나는 아이들에게 결핍을 줬지. 그건 우리가 잘못한 일이야.

이런 빚을 지고도 늙어서 아이들에게 부모랍시고 의지한다면 우리는 사람도 아닐 거야.


우리 엄마도 아들 없는 거 알지?

엄마는 몸이 온전할 때 스스로 시설에 들어간다고 하셨어.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고 싶으시다고 이미 수년 전에 당신이 가실 시설을 미리 가서 확인하고 계획도 세워놓으셨더라.


당신이나 나나 아이들에게 절대 기대지 말자.

노후준비를 열심히 하되,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산속이라도 들어가 살아.

나도 내 노후는 알아서 할 거야.

아이들에게 짐 되지 마.


두 번째

지금 당신이 키우고 있는 아이가 막 스무 살이 되면 당신은 60대 중반이 되겠네. 그때 우리 아이들은 사회에서 번듯하게 직장을 다니거나 아마 결혼했겠지.


당신의 논리대로라면 그 아이와 우리 아이들은 아빠가 같은  '자매'라는 건데 아빠 피가 반씩 섞인 아이들이라고 해서 절대 '동생을 보살피'는 엉뚱한 부탁을 하지 않길 바래.


내가 심하게 화냈던 걸 기억할 거야.

당신의 아이를 우리 딸들한테 '동생'이라고 소개하고 표현했을 때 말이야.


그 아이는 우리 아이들의 동생이 아니라 그냥 아빠가 재혼해서 다른 사람과 낳은 아이라는 것.

아빠가 같다고 해서 애들이 자매 사이가 되지는 않아.


나는 지금도 꾸준히 내 아이들에게 말하고 있어.

너희들이 나이가 더 많으니까 언니라고 불릴 수는 있겠지만 아빠가 같다고 해서 자매가 되진 않는다는 것.


지금 당신이 키우고 있는 그 아이는 당신과 당신의 아내가 세상에 내놓은 생명이야.

아이가 어른이 되어 독립할 때까지 이쁜 몸짓, 손짓 하나에 울고 웃으며 부모가 함께 책임져야 할 생명이야.


우리 딸들에게 책임을 주지 마.

나는 내 딸들이 번 돈을 혹여나 당신과 그 아이가 살아가는데 생활비로 쓰는 것을 원치 않아.


냉정하게 느껴져?

우리 아이들이 아빠 없이 엄마 덕분에 고생한 것도 어쩔 수 없는 운명이듯 그 아이도 그럴 수밖에 없겠지.

다행히 당신이 옆에 있어주면 되고, 난 아이들을 지금까지 내가 키워왔고.


내가 이혼 소송으로 싸우지 않았다면 내 아이들은 아빠의 양육비를 단 천원도 못 받으며 자랐을 거야.

나는 당신이 당연히 지켜야 할 의무이자 권리를 주장했고, 당신이 회피했으니 법으로 알려준 거야.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어.


이혼가정의 아이들이라 너무 슬프고 억울했겠지만, 그다음부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양육하는 부모가 어떤 책임감과 기준을 가지고 아이를 키워나가는가에 많은 것이 달렸다고 말이야.


아빠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기회가 당신에게 꼭 있기를 바래. 나도 그것을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아이에게 제일 편안하고 따뜻한 이불은 '엄마'라는 이불이야. 아직 너무나 어린 그 아이를 위해서 당신도 당신의 아내도 조금씩 양보하며 다시 가정을 찾길 바래. 




꼭 필요한 충고는 뜨끔하더라도 받아들이는 것이, 먼길 돌아 돌아 방황하다 오는 것보다 나을 때가 있어.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당신이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어.


나, 그렇게 당신이 함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어.


나이가 더 들고 

세월이 날카롭게 날이 선 마음을 많이 다듬어 주어서 어떤 것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찾아와.


그땐 기쁜 마음으로 당신의 사과 받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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