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극배우 B씨 Sep 24. 2020

싱글맘이 딸을 키울 때(3)

이혼 후 이야기 #. 14

남편과 사이가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힘들수록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다녔다. 


어쩌면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 거라는 불안한 생각에서였다.

운전을 할 수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집에서는 매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으니 숨 막히는 집을 떠나 혼자 운전하며 몸이 고단한 것이 차라리 나았다.



강원도 정선에 갔다.

레일 바이크를 태워주고 싶었다.

아이 둘을 태우고 혼자 바이크 페달을 밟았다. 철로를 따라 굴러가는 바이크라 6살, 4살의 가벼운 아이들을 태우고도 꽤 묵직했다.

뒷팀 들은 모두 아빠가 있는 가족들이었다.


나 때문에 바이크 줄이 밀릴까 봐 마음이 급했다.

허벅지가 뻐근하게 아파왔지만 힘껏 페달을 밟았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때 즘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아이들이 비에 젖지 않게 단도리를 해준 뒤 비바람을 맞으며 페달을 밟았다.

떨어지는 빗방울에 아이들이 깔깔거렸다.


그날 밤에 펜션에서 아이들을 재워놓고 몸살이 났다.

해열제, 진통제, 있는 약은 다 털어 넣으며 괜찮다, 괜찮다 주문을 외웠다.

아프지 않아야 아이들과 예정된 시간을 다 채우고 집에 늦게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풍이 너무 이뻤던 늦가을, 아이들과 남이섬에 다녀왔다.

늘 아이들 사진만 찍어주다가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생각에 좀 비싸도 세 명이서 사진을 찍고 액자에 넣어주는 기념품을 만들어 왔다.


아들은 쏙 빼놓고 놀러 가는 며느리를 밉게 보던 시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이 사진은 누가 찍어 줬냐? 느그 엄마까지 나온 걸 보니 한 사람이 더 있었던 모양이구나. 니 엄마가 누구랑 여행같이 간 거냐?"


같이 간 남자가 있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었다. 그런 소릴 아무렇지 않게 하셨다.

남자가 찍어준 건 맞았다. 사진관 아저씨가 남자니까.



다음 해에는 1년 동안 돈을 모아 비행기를 못 타본 아이들을 데리고  제주도에 다녀왔다.

신혼여행 때 처음으로 가고 그 기억이 너무 좋아 시어머니를 모시고 갔던 제주였다.


돈을 모아서 친정엄마도 모시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이 둘 만 데리고 갔던 제주는 내 마음이 참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엄마에겐 미안했지만 남편과 시어머니가 있는 숨 막히는 집으로부터의 잠시 도피가 목적이었다.


다 큰 아이들이 그때 여행에서 찍은 빽빽한 사진들을 보며 물었다.


"엄마는 그때 어떻게 혼자 3박 4일을 운전하고 스케줄 짜고 우리들 밥, 간식 챙겨 먹이고 다녔어?"


아이들에게 엄마는 늘 운전하고 바쁜 사람이었다.


'... 그냥. 몸이 힘들면 쉽게 잠드니까 좋았어.'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후 나에게 주어지는 돈은 매달 비정규직의 월급뿐이었다.

꽤 시간이 흐른 뒤 이혼소송으로 양육비를 받아내기 전에는 오로지 내 월급으로만 아이들을 키워야 했다.


월급을 받으면 매월 20만 원씩 따로 떼서 모았다.

아이들이 쑥쑥 크면서 식비가 많이 들 때도.

예기치 않게 병원비가 많이 나갈 때도.

아이들 책을 사주느라, 계절 옷을 사주느라 지출이 초과될 때도 매월 20만 원씩은 꼭 먼저 저축을 했다.


'이벤트'라고 통장이름을 지었다.

그 통장에 돈이 모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다녔다.

거창한 여행은 아니었다.


"엄마, 닭갈비는 왜 춘천이 유명해?"

"글쎄. 직접 가서 먹어보면 되지."

일요일 점심을 먹으로 3시간을 운전해서 춘천에 갔다.


부산 돼지국밥이 왜 유명한지 궁금하다는 아이의 말에,

"그래? 간단하게 짐 싸놔. 내일 새벽에 출발이닷!"


토요일 새벽 4시, 자는 아이들을 뒷좌석에 태우고 고속도로에 올랐다.

달큼한 아이들의 살 냄새를 맡으며 고속도로에서 멀리 떠오르는 태양을 보았다.

5시간을 달렸다.

행복이라는 것이 다른 곳에 있을까.


궁금하다던 돼지국밥을 먹이고 국제시장에 가고 부산어묵을 먹였다.

올라오는 길은 아이들과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노래를 불렀다.





"한우 먹고 싶어. 횡성이 유명하대."

"가서 직접 먹어보자, 이번 주에."


선홍색의 한우를 한점 한점 구워 아이들 접시에 놓아주었다.

"맛있을 때 많이 먹어."


"크으! 한우는 여기가 맛있네!"


"엄마! 이렇게 맛있는 고기를 왜 지금까지 우리한테 안 가르쳐 줬어?"


아이들은 갑작스레 떠난 여행을

그 새벽 공기를

그날의 바람과 풍경을

그때 맛있게 먹었던 음식을

그리고 냄새를


오래도록 기억했다.


덕분에 우리는 식탁에서 할 이야기들이 늘 풍성했다.


이전 13화 나와 이혼한 당신에게 쓰는 편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