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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극배우 B씨 Aug 24. 2020

당신은 애들 버리고 나가는 엄마야.

이혼 전 이야기 #.7

야근을 하고 집에 늦게 들어왔던 날이었다.  남편은 역시나 집에 없고 아이들과 어머니는 자고 있었다.

아직 저녁도 못 먹었지만 아이들이 깰세라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주무시는 줄 알았는데 왔냐는 말도 없이 불 꺼진 방에서 시어머니가 대뜸 한마디를 던졌다.

"대체 언제까지 그러고 다닐 거냐? 애들은 안중에도 없냐? 여태 어디서 뭐하다 들어오냐."

속이 상했다.


남편과 나는 직종이 같았다. 같은 일을 해서 돈을 벌어오고 있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직장 다니는 아들을 여태 뒷바라지 해오셨던 시어머니가 더 잘 아실터였다. 내가 왜 이 늦은 시간에 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제가 놀면서 늦게 들어왔어요? 어머님 아들이 술 먹고 지금 이 시간까지 안 들어오는데 그건 왜 잔소리도 없으셔요? 제가 지금 애들 아빠처럼 술 먹고 들어왔어요?"

시어머니에 대한 존경심을 거두게 되니 단 한마디도 지고 싶지 않았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현관에 며느리가 들어서는 순간부터 뭔가 꼬투리를 찾는 시어머니 아니 노인네에게 정말이지 질려버리고 말았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다음날 새벽기도를 가시기 전에 자고 있는 나를 깨워서

"내가 미안하다."며 울먹이고 나가셨다. 늘 그랬다.

네가 이러니까 아비가 마음을 못 잡는 거라며 송곳보다 더한 말로 가슴을 후비고, 교회가 시기 전에 꼭 어떤 식으로든 회개를 하셨다. 처음엔 나도 죄송하다고 사과를 드렸다. 먼저 며느리에게 사과하시는 그 순간이 나는 진심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녁에 집에 오면 또 달라졌다. 그다음 날 새벽에는 또다시 사과를 들어야만 했다...

그런 시어머니와 마주치기 싫어 교회에서 돌아오시는 시간보다 일찍 출근하기도 했다. 집안에서 한순간이라도 시선이 마주치느니  차라리 추운 새벽 버스 정류장에서 벌벌 떠는 것이 편할 정도였다.

어느 날은 출근하기 위해 현관을 나서는 순간 시어머니가 아파트 계단을 올라오시는 소리가 들렸다. 마주치기 싫어 윗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잠시 피했다가 들어가시는 걸 보고 다시 내려왔다. 

그걸 베란다에서 보셨던 모양이다.


"이 씨이발년~~!!"


순간 귀를 의심했다. 잘 못 들었나? 

교회에서 덕망 높은 권사님이셨다.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매년 쌀을 보내주던 우리 친정에는 그렇게 하신 적이 없지만 명절 때마다 굴비며 값비싼 선물세트를 머리에 이고 목사님께 갖다 주시며 교회 어른으로 칭찬받던 시어머니였다.


씨발년이라고? 뒤돌아 베란다를 올려다봤다. 시어머니가 주먹을 휘두르며 나를 향해 욕을 하고 있었다.

집으로 올라갔다. 시어머니에게 물어보았다.

"방금 뭐라고 하신 거예요?"

"너는 시어미가 우습냐! 어? 우습냐? 어디서 못 배 워쳐 먹은 행동이냐!"

"출근하는 며느리한테 동네 사람들 다 들으라고 아침부터 씨발년이요?"

"네가 욕먹을 행동을 했으니까 그렇지!"


시어머니 눈에 불꽃이 튀고 있었다. 거실 분위기가 심각해지자 욕실에 있던 남편이 나왔다.

"어머니! 그만하세요."

순간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 아들의 한마디에 방금 나를 잡아먹을 듯한 그 눈빛은 다시 순한 눈빛으로 변했고 더 이상 며느리에게 날을 세우지 않았다. 정말 남편이 얼음땡 마법을 쓴 줄 알았다. 

남편은 어머니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또다시 나는 미친년이 되어 그 기분을 고스란히 안고 출근을 해야 했다.




"선생님, 숨이 막혀서 죽을 것 같아요. 이제 정말 그 집에 못 있을 것 같아요. 저 당분간 집 나와서 숨좀 쉬고 살고 싶어요."

오랜 시간 마음에서만 생각했던 말을 꺼냈다. 시어머니와 남편, 이렇게 같이 있다가는 아이들에게 더 안 좋은 모습만 보여줄게 뻔했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계속 부딪히며 피폐해져 가느니 어머니도 나도 서로를 당분간 보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상담 선생님은 더 이상 나를 말리지 않았다. 하지만 도망치듯 나오지 말고 명확히 의사를 밝히고 언제 돌아올 것인지도 말하고 나오라고 하셨다. 그냥 짐을 싸서 확 나오고 싶었지만 꼬투리를 잡히고 싶진 않았다. 


남편과 이혼하기 위해 집을 나온 것이 아니라 당분간 시어머니로부터 남편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지내면서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기 위해 나오기로 했다.

선생님이 조언해주신 대로 시어머니에게 말씀을 드렸다. 네 마음대로 해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들.

"우리 아들이 술 먹고 마음을 못 잡는 건 마누라가 성질만 내고 근무 서고 늦게 오기 때문이다. 애들 어린이집 행사며, 자질구레한 것까지 누가 챙기라고 그러냐? 네가 아무리 그렇게 나와도 나는 오직 하나님뿐이다!"

......

'네... 제가 나가면 아들이 마음잡고 집에 들어와서 그깟 자질구레할 뿐인 일들 알아서 챙기겠지요. 그 사람도 부모잖아요 어머니. 가족이 산산조각 나고 있는데 그런 건 안중에도 없으시고 무조건 아들 편, 무조건 당신 믿음만 중요하시군요. 하나님이 잘 보살펴 주실 거예요, 걱정 마세요 어머니'

체념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남편에게도 이야기했다. 이러이러해서 나는 당분간 당신과 떨어져 있고 싶다고 했다. 주말에는 집에 오겠다고도 했다. 어차피 월급을 같이 관리하기에 내가 얻을 원룸 월세를 이야기하니 <집 나가는 여자에게 월세는 가당치도 않다>고 했다.

지난달에도 남편의 카드값을 80만 원이나 막아줬던 나였다.

남편도 시어머니도 내 이런 마지막 부탁에 등을 돌렸다. 순종하지 않는, 좀 더 인내하지 않는 여자에겐 당연한 대접인 듯했다.


그야말로 시어머니한테 대들 줄이나 알고 은혜도 모르고 남편에겐 최악의 아내이자 집안엔 도통 관심도 없어서 애 두고 나가는 나쁜 년이었다.


짐을 챙기고 집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남편과 주차장에서 만났다. 대화를 해보고 싶었다.

나는 당신이 술 먹고 늦게 들어오고 나 혼자 어머니와 아이들을 감당하는 시간들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그게 내 탓이라고 타박하는 시어머니도 힘들다고 했다. 그러자 남편이 속마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당신이 직장 다닌다고 고집했으니 퇴근해서 집안일해야 되는 건 당연한 거야.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90% 이상은 해야 되고 나는 10%만 해도 된다고 생각해. 당신 때문에 내가 술 먹고 늦게 들어온다고 어머니가 말씀하신 것은 백번 맞다고 생각해. 그리고 집나 가겠다며 나한테 통보하는 것 자체도 기분 나빠. 이렇게 나가면 들어올 땐 마음대로 못 들어올 거야. 당신은 애들 버리고 나가는 엄마니까. 그리고 당신은 뭐가 자꾸 힘들다고 하는데, 뭐 때문에 나가는지는 관심 없고 중요하지도 않아. 나간다는 것 자체가 나는 기분이 나쁘니까."


더 슬프지도 않았다. 속상할 것도 없었다.

옷깃을 여미며 버스를 타고 텅 빈 원룸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시어머니가 없는 공간이라 좋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이들이 없는 공간은 나에게 또 다른 공포를 주었다. 너무 허전했다. 퇴근을 하면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되었지만 아이들을 보지 못하는 것은 술에 취해 집안일을 하는 하면서 시어머니를 견뎌내는 일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다.


남편은 문자로 원룸 주소를 보내라고 했다. 남은 짐마저 택배로 보내버릴 테니 당장 주소를 내놓으라고 문자로 난리를 쳤다.

이전 06화 시누는 내가 불쌍해서 봐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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