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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극배우 B씨 Aug 23. 2020

시누는 내가 불쌍해서 봐줬다고 했다.

이혼 전 이야기 #.6

상담 선생님께

시누가 갑자기 왔어요. 올케랑 이야기 좀 하고 싶다더니 우리 집 식탁에서 훈계를 하더라고요.

시누에게 왜 내 인생을, 내 결혼생활을, 내 직장을 평가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시어머니가 아프신 거, 남편이 저러는 거, 아이들이 잘 못될 수도 있는 것 그 모든 것이 제가 직장을 다녀서 그런 거라고 하네요.

사실 아이들도 엄마보다 아빠를 더 사랑한다고, 애들은 엄마가 키워야 하는 게 맞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사람들 힘들게 하면 이혼한다 해도 애들을 고모들이 힘닿는 데까지 키울 거니까 저는 엄마자격이 없다고 해요...


제가 우울증으로 시가 사람들 모임에 안 오고 모른 척해서 열 받았지만 얼마나 참았는지 아냐고요

시어머니 식모 부리듯 부려먹어 놓고 이제 와서 엄마 때문에 남편이랑 가까워지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나쁜 년인 줄 아냐고.

남자들은 단순해서 자기 생각 굽힐 줄도 모르니까 저보고 무조건 직장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들이나 잘 키우라고 그래요.


자기들 핏줄은 정말 대단하다고, 우리 핏줄한테 덤비는 사람은 누구든 가만 안 둔다고.

돈 좀 번다고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정말 중요한 게 뭔지 똑바로 생각하라고요...

시집와서 지금까지 정말 마음에 안 들고 화나는 것도 많았지만 남편 사랑 못 받는 올케니까 불쌍해서 참아줬다고 그건 알고나 있냐고, 그런데 이제 더는 못 참겠다고요.



상담 때 선생님이 그러셨지요? 마침 제가 3개월 동안 직장의 파견으로 떨어져 지내게 되었으니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느 쪽으로든 마음이 정해질 거라고요. 같은 생각으로 똘똘 뭉친 남편과 시누이, 시어머니 사이에서 참 마음이 힘듭니다. 어머니가 치매 초기라며 올케가 제대로 케어해드렸으면 진작에 치매방지를 할 수 있었을 거라는 시누의 말로 인해 모든 것이 다 제 잘못인양 우울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남편과의 이혼, 아니 이제는 시가 사람들과의 이별을 위해 남편과 이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혼하고 나면 최선을 다 못한 것이 혹시 후회될 것 같아, 찢어져서 너덜거리는 마음을 겨우 추슬러서 남편에게 문자를 했습니다. 오늘부터 하루 한 번씩 남편에게 그저 좋은 문자만 보내려고요...

그러면... 그렇게 하고 나서도 이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래도 나 자신에게 후회가 덜할 것 같아서요.


나: 근무하고 오느라 고생 많았지? 어제 볶음밥 진짜 맛있더라. 역시 당신 요리 솜씨는 죽지 않았어^^

남편: 애들하고 맛있게 먹으려고 한 건데 당신이랑 먹겠다고 해서 내가 그냥 나간 거 알지? 파견이나 잘 갔다 와, 인사고과 잘 받아야지? 어차피 헤어질 건데 당신이 원하는 건 해야지

나: 그래... 걱정해줘서 어쨌든 고마워


남편이 차라리 답장을 안 했으면 했습니다. 이런 문자라면요...

마침 사람들이랑 점심을 먹으면서 답장을 봤는데 눈물 참으려고 꾸역꾸역 밥을 밀어 넣었습니다. 식당에서 나오는데 마음이 이래도 목련은 참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고 날씨고 화창했어요.


남편과 혹여나 관계가 개선되더라도 저는 이제 시누들을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은데, 핏줄 의식 강한 남편이 그것에 대해 이해를 할지 모르겠어요. 아마 안될 거예요. 지금까지 그랬거든요...

파견이 끝나서 올라오는 대로 이혼을 하자고 했던 말을 남편이 또 한다면 저는 정말 그만두고 싶어요. 자신이 없습니다, 이제는요...

우리가 화해하고 결혼생활을 그대로 유지하는 조건에, 시누들과의 예전 같은 사이를 바란다면 저는 못할 것 같아요. 남편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 더 심하고 아픈 말들을 시누가 어제 두 시간 동안 쏘아댔습니다.


저는 시누들이, 시어머니가 더 싫고 힘듭니다. 남편이 계속 자기 식구들을 우선이라고 한다면 이제 저도 할 말이, 하고 싶은 말이 없어요. 두 달 뒤라고 해서 남편이 바뀔 거라고 생각 안 해요 솔직히...

아이들이요? 모르겠습니다... 시누가 나 없이도 자기들 힘닿는 데까지 키울 거라고 호언장담하고 저보다 아빠를 더 사랑한다고 저토록 당당하게 주장하고 있으니 저는 걱정 않고 떠나야겠지요.


선생님, 힘듭니다. 정말 힘들어요

정말로... 힘들어요.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친정엄마한테 여쭤봤어요. 내가 직장을 포기하면 어떻겠냐고....

엄마가, 네가 직장을 포기하고 집안에서 애들이나 키우면서 행복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면 그래도 된다고. 그런데 그럴 수 있냐고 하시네요.


알 수 없는 분노가, 불같은 분노가 가슴을 치고 또 칩니다.

누구한테도 말 못 하는, 말해도 이해할 사람 없는 이 상황이 너무나 감당이 안되네요. 이런 것 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까요?

도대체 어디까지 참고 또 울며 넘겨야 그만할까요.

머리를 벽에 부딪혀서라도 시누가 저에게 한 말들을, 그 표정들을 잊어버리고 싶습니다






상담치료를 받고 있었다. 치료의 결론을 말하자면, 나의 계속되던 자살의 유혹과 엉망인 결혼생활을 겨우겨우 이어갈 수 있는 한가닥 빛이 되어 주었다.

가까이 살면서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왔던 시누들은 다들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였다. 남편에게 생활비를 타서 살림을 했지만 '애들을 남에 손에 안 맡기고' 내가 직접 키운다는 자부심과 남편을 내조하는 것을 자랑 혹은 위안으로 삼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런 시누들을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어차피 살림도 어머니가 조금씩 해주시고 내 나이가 젊으니 벌 수 있을 때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좁은 집에 어린아이 하나 있을 뿐, 그나마도 어린이집에 보냈고 집안에 시어머니와 앉아서 뭘 하겠는가, 결혼 전부터 다녔던 직장을 출산휴가 때만 쉬고 계속 다녔었다.


시누에게는 친정엄마가 살림해주고 애 봐주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대로 주중 내내 아이의 등 하원을 봐주시고 살림도 해주시는 시어머니가 감사해서 주말은 어머니가 가고 싶다시는데로 큰아들 집, 딸들 집을 부지런히 다녔었다. 남편이 근무라서 집에 없어도 아이들과 어머니를 태우고 왕복 두 시간 이상 거리의 시가들을 다녔다. 시누네 식구들과 저녁을 먹고 설거지까지 하고 나서 다시 운전을 해서 집에 왔다.


어머니는 보청기 건전지를 사기 위해 혹은 간단한 보청기 점검을 받기 위해 꼭 지방에 있는 보청기 지점만 가셨다. 전국 체인점이었지만 그 가게만 고집하셨다. 3,000 원하는 보청기 건전지를 사 오기 위해 왕복 3시간을 운전했다. 어머니는 며느리와 손녀를 앞세우고 기세 등등하게 보청기 가게에 들어가시는 것을 아주 좋아하셨다.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예전에는 결혼 못한 아들만(남편) 데리고 갔었기 때문이다.

청주에 있던 보청기 대리점 원장님이 인천으로 사무실을 옮겼을 땐 또 인천으로 운전해서 다녔다. 남편이 하던 일들을 내가 이어받아하고 있었다.


머리 염색과 펌도 시누네 아파트 단지의 미용실에만 가셨다. 대중교통으로는 찾아갈 수 없는 곳이라 늘 모시고 다녔다. 머리 하는 날은 꼭 시누네 들러서 놀다가 오셨다. 덩달아 시누 집에서 주말의 대부분을 보내다가 올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연세도 많으신데 무슨 낙이 있으시랴, 이렇게 거동이 가능하실 때 딸, 아들 집을 내가 모시고 다닐 수 있으니 그것도 참 행운이다 싶었다.


그렇게 남편의 효도를 대신해가며 살고 있었던 내가 남편과 사이가 나빠지고 시어머니와 다툼이 생기자 시누가 나섰다. 지금 생각하면 왜 남의 가정사에 이래라 저래라 했을까...

엄마를 실컷 부려먹다가 이제 버리냐고. 괘씸해서라도 아이들은 안 주고 고모들이 키울 것이니 자꾸만 이렇게 남동생과 사이가 좋지 않고 은둔(?)한다면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남자들은 단순하니 그저 네가 이해하고 살아야 하며, 몇푼 번다고 돈으로 해결할 생각을 말라고 했다.


그들 스스로가 봐도, 남편 사랑받지 못하는 젊은 올케일 뿐인데 과연 무슨 생각으로 또 무슨 돈으로 이 상황들을 좌지우지한다고 판단했던 걸까. 시가에 나는 삐딱선을 타는 별종이 되어 갔다.

늘 하소연하던 친정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남편이 외도하고 다녀도 시어머니와 시누가 나 힘든 거 알아주고 위로해주면 참고 살 수 있겠어.
 아니 시누나 시어머니가 저렇게 나를 싫어해도 남편만이라도 내 편이 돼주면 나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런데... 아무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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