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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현 Apr 20. 2019

짐이라 생각한 쓰레기

같이 여행하던 친구가 나에게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내가 너무 짐만 되는 것 같아서 미안해.” 그 말에 내가 “그래 너 짐 맞아.”라고 대답했다. 미안함을 얘기했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대답에 살짝 서운한 표정이 비쳤다. 이어서 “짐은 맞는데 나에겐 네가 필요하니까, 너와 다니는 거야.”라고 하니 기분이 어느 정도 풀린 듯했다. 맞다. 길 안내, 가게 안내부터 통역까지 마치 가이드인양 하고 다녔으니 그 친구 때문에 귀찮은 일이 많았던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귀찮은 일이었으니 그것이 아니라고 얘기해봐야 서로 풀리지 않는 앙금만 생길 일이다. 하지만 그 귀찮음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그 친구는 내게 필요한 친구였다. 더욱 재미있는 여행과 보람을 위해 몇 배의 귀찮음도 괜찮았으니까. 


짐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친구는 ‘수고로운 일이나 귀찮은 물건’이라는 의미로 말하지 않았을까 싶다. 얼핏 보면 부정적인 말이지만 그 부정적임 조차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쓰레기라 불러야 마땅하다. 지금 또는 훗날의 쓰임을 위하여 당장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짐을 진 자의 이야기다. 단 하나의 쓰임조차 없다면 효용 없이 쓰레기를 짊어지고 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제 꺼낼 이야기는 사람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짐과 쓰레기에 대한 이야기다.

간단하게 집 밖으로 산보를 나가는 경우에도 몇 가지의 짐이 필요하다. 하물며 몇 달 간의 장기여행에 필요한 짐이 조금밖에 없을까. 미래에 있을 일을 대비하여, 훗날의 쓰임을 대비하여 하나 둘 챙기다 보면 내 어깨에 짊어지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짐이 모이기 마련이다. 하여 최대한 줄이고 줄여 꼭 필요하다 생각되는 것만 챙기고 집을 떠났었다. 


이미 수십 번 짐을 쌌다 풀었다 해 보았지만 비행기의 수하물 한도 때문에 무엇을 줄여야 할지 고민하던 그 날은 집에서 나온 지 네 달이 훨씬 넘은 후의 일이었다. 어떤 짐을 정리해야 할지 모든 것을 바닥에 풀어놓고 찬찬히 둘러보는데 한번도 쓰지 않은 물건들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예비로 가져온 카메라였으며, 우의였으며, 담요였고, 물티슈 외 기타 자잘한 것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쓰지 않은 것들이며, 남은 여행기간에도 쓰지 않을 것 같은 물건들이었다. 만약에 혹시라도 필요한 일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물건들이지만 그 물건들을 아무런 수고 없이 가지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적어도 나에게 그 물건들은 짐이 되기에는 조금은 부족한 것들이었다. 말하자면 쓰레기를 짊어지고 다닌 것이다. 미리 알아채지 못하고 100일도 훨씬 넘은 다음에야 깨달은 나의 부족함을 탓하지만 하소연할 데는 없다. 남은 것은 그 쓰레기를 정리하는 것뿐이다. 나에겐 쓰레기지만 누군가에게는 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호스텔 스탶에게 처분을 맡겼다. 그렇게 쓰레기를 정리하고 나니 가방엔 여유가 생겼으며 들었을 때도 훨씬 가벼웠다. 


많은 정리를 했지만 쓰레기는 더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아쉬움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짊어지고 가는 것일까? 그것이 비단 물건뿐일까? 사람을 짐과 쓰레기에 비유하면 너무 몰인정하지만 결국 사람까지도 그 분류에 해당하는 것은 아닐까? 가끔 어떤 쓰레기들은 쓸모가 없을 뿐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위해를 가하기도 한다. 붙잡지 못할 미련은 빨리 정리하고 쓰레기들을 적당히 치워야 한다.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공항에서 체크인을 하며 비워야 하는 것보다 더 많이 비우게 됐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아쉽지는 않았다.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에, 홀가분한 가방에 더욱 많은 추억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앞섰다. 적절히 비울 줄 알아야 한다. 늘 듣는 말이지만 쉬이 망각하게 마련이고 뒤늦게 다시 깨닫고는 한다. 하나하나 사례를 맞이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알아간다. 다음 여행에서는 쓸모 없는 미련으로 가방이 무거워지는 일은 없겠지. 적어도 무엇이 짐이고 무엇이 쓰레기인지 조금은 빨리 알아챌 수 있겠지.


내가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들만 가져가기에도 나의 가방은 벅차다.


무릎담요, 모기기피제, 수첩, 면도기, 물티슈, 우의, 카메라, 수경, 충전기, 알람시계, 썬블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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