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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 Bleu Jul 21. 2024

69. 돌로미테! 다시 가야 할 이유.

아름다운 풍광에 깃든 마녀 이야기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이탈리아 북부의 알프스, 돌로미테.

카메라 앵글을 어디에 맞춰도 작가 수준의 사진이 어렵지 않게 얻어지는 곳이다.

입틀막의 멋진 풍광에 저절로 탄성이 나오는 것은 이곳에선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들레 산군과 산타 막달레나 마을의 아름다운 전경

우리가 '알프스'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풍광에서 벗어나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곳이라 더더욱 많은 이들의 선택을 받는지도 모르겠다.

'악마의 발톱'으로 불리는 세체다(seceda) 전경

너무나 독특해서일까?

지형적 생긴 모양이 예사스럽지 않아서일까?

그런 풍광과 함께 전해오는 지역 민담은 아름다운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닌 듯 하니 말이다.


웅장하면서 험난 해 보이는 돌산과 계곡들.

가지각색의 모양으로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는 예리한 봉우리들.

세계적 판타지 소설의 대명사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J.R.R.Tolkien:1892-1973)도 어릴 적 보았던 이곳의 풍광을 보고 마음에 담고 있다가 소설 속 악의 총본산인 '모르도르(Mordor)'를 구상했다고 하니 누구나 보고 느끼는 감정은 비슷한 듯하다.

돌로미테 최고의 전망대 라가주오이(Lagazuoi)에서 바라보는 전경

돌로미테의 랜드마크 격인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 '가 있다.

높이만 1km에 달하는 세 개의 거대한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 가히 입틀막의 돌로미테 대표 풍광이다.

돌로미테를 찾는 많은 이들이 이 거대 바위군을 보기 위해 내리막과 오르막 길을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열심히 트래킹 한다.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

그런데 잠시 숨을 돌리며 뒤를 돌아보면 바로 뒤에는 이런 풍광이 쓱 다가와 있다.

처음엔 '우아!' 하며 감탄사를 지르다가 초자연적인 생김생김에 살짝 오싹한 기운마저 느끼게 된다.

아마도 톨킨도 어린 나이에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다.

라바레도 산장에서 보이는 미주리나(cadini di misurina) 전경(위키미디어)

그런가 하면 아름다운 들꽃들과 웅장한 바위 산군들이 자태를 뽐내며 끝없이 펼쳐저 있는 초원 '알페 디 시우시(Alpe di Siusi)'도 있다.

드넓은 초원은 이름 모를 갖가지 야생화들이 저마다 자태를 뽐내고 있어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한다.

알페 디 시우시의 야생화 향연

그런가 하면 이 거대한 초원은 3,000m 이상의 여러 산군들에 둘러 싸여 '이거 실화냐?' 하는 감탄사를 절로 나오게 하는 대 장관을 만들어 내고 있다.

셀라(sella) 산군과 야생화
알페 디 시우시의 또 다른 멋진 풍광

축구장 8,000여 개의 넓이를 자랑한다는 '알페 디 시우시'의 들판을 꽃의 향기와 그림 같은 풍광에 취해 걷다 잠시 뒤를 돌아보면 마녀들의 이야기로 유명한 쉴리아르(Sciliar) 산군이 저 평원 너머에 우뚝 서 있는 모습도 보게 된다.

알페 디 시우시에서 바라보는 마녀들의 집합 장소 쉴리아르 산군

뭐 아름다운 풍경에 찬물을 끼얹을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나 독특하고 기이한 지형을 보면서 인간이 생각하는 상상의 세계는 다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지역 민속 신화에는 요정도 있고 난쟁이도 있고, 거인도 있고, 마녀도 있다.

쉴리아르 산군의 쉴레른(Schlern) 산은 매주 목요일 밤마다 마녀들이 모이는 모임 장소로  옛날부터 유명한 장소라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우리가 아름다운 풍광에 감탄을 하고 있을 때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자연에는 이런 류의 이야기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알페 디 시우시'의 작은 마을 카스텔로토(Castelrotto)나 콤파치(Compacci)에서 시작하는 트래킹 코스에는 '마녀의 벤치'로 가는 트래킹 코스가 제일 인기가 있을 정도로 돌로미테의 마녀 화는 현재도 이어지는 듯하다.


'마녀의 벤치(Hexenbänke am Puflatsch)'와 '마녀의 의자(Hexenstühle)' 같은 자연 모뉴먼트를 만날 수 있으니 민화의 사실 여부를 떠나 대자연과 판타지라는 묘한 조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면이 독특함을 더해준다.

굵은 나무와 돌로 만들어진 '마녀의 벤치' (위키미디어)
정교하게 다듬어진 것 같은 '마녀의 의자'(위키미디어)

'마녀의 벤치'로 불리는 곳은 바위와 나무들이 만들고 있는 형상이 마치 벤치 같이 보이는데 이곳은 목요일 밤마다 열리는 마녀들의 모임에서 대장 마녀가 앉았던 자리였을 거라고 이 지역 사람들은 믿는다.

근처의 '마녀의 의자'라고 불리는 바위는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라고 하긴엔 너무나 정교 하여 이것 또한 마녀들의 작품일 거라는 이야기다.

마치 우리가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할 것 같은 일에는 마법사나 마녀의 힘으로 만들었을 것이라는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과 마찬가지 생각인 듯하다.


중세 이전, 그러니까 1500년 이전에는 이 지역의 마녀는 약초로 사람의 병을 낫게 해 준다던가 들판에 예쁜 꽃들을 피어나게 한다든가 하는 좋은 의미의 마녀들이었다.

가끔은 뇌우와 심한 비바람을 일으켜 인간에게 심술궂은 장난도 하면서.

실제로 3,000m에 이르는 고산지대이다 보니 날씨가 변화무쌍한데 수 백 년 전 이곳의 사람들은 이것 또한 마녀들의 심술이라고 여겼단다.


그런데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중세를 회오리바람 속에 몰아치게 했던 마녀사냥이 시행되었고.

이 외딴 지역도 예외가 되진 않아 많은 무고한 주민이 마녀 사냥으로 희생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재판은 1500년대 초반에 시작되었는데 1505년에는 여자 7명과 남자 1명이 마녀라는 이유로 화형에 처해진 것을 시작으로 사망자 수가 급증했다고 한다

당시 마녀 사냥에 앞장섰던 독일인 성직자 하인리히 크라머(Heinrich Kramer)가 쓴 '마녀 사냥'에 관한 책 '말레우스 말레피카룸(Malleus Maleficarum)'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으로 이름을 올렸지만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된 200여 년이 지난 후에야 금지서가 되었다는 씁쓸한 기록도 있다.


그림 같은 풍경 속에 진행된 마녀 사냥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런 아름답고 신비로움을 주는 자연이 만들어내는 초자연적인 현상 들이 인간들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여 오히려 폐해가 된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브라이에스 호수 전경

그림 같은 브라이에스(Lago di Braies) 호수.

우리는 그곳에서 보트 타기에 열심인데 민화에서는 호수 밑에 지하 세계로 통하는 출입구가 있다고 한다.

알고 나니 보트 타기가 살짝 머뭇거려지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트래킹 코스 이름 치고는 조금 특이하다고 생각했던 '로젠가르텐(Rosengarten)'.

돌산을  '장미의 정원'이라 부르다니.

그러나 그들의 전설을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곳은 라우린(King Laurin)이라는 난쟁이 왕이 가꾸던 장미 정원이었단다.

적이 쳐들어오자 숨어있던 그는 그만 꽃들이 움직이는 바람에 발각이 되어 잡히는 신세가 되었고 이에 배신감을 느낀 라우린은 꽃들을 모두 돌로 만드는 저주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밤이나 낮이나 돌이 되거라!' 했는데 그만 새벽과 석양이 빠지는 바람에 지금도 그 시간대에는 하얀 백운암들은 일출과 일몰의 태양 빛을 받아 빨간 돌로 변하니 마치 활짝 핀 장미꽃처럼 보인다.

자연현상에 어울리게 잘 만들어진 전설이지 싶다.

로젠가르텐(위키미디어)

이 지역 주민들이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헨젤(Hansel) 이야기라고 한다.

평범한 농부였던 헨젤은 성수(Holy water)를 바른 자신의 총알로 마녀를 물리 쳤으나 죽은 마녀의 저주에 걸려 죽을 때까지 괴롭게 살았다는 이야기란다. 마녀를 해하지 말라는 뜻인지?


그런가 하면 꽃으로 변한 아름다운 요정 살린겐(salingen), 숲에 산다는 엘프 살반(salvans) 이야기 등 돌로미테의 자연은 마녀나 요정들과 불가분의 관계인 듯하다.


마녀인지 요정인지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가운데 이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민화와 함께 이 지역 문화의 일부로 남아 있다.

여행 중 마녀를 모티브로 한 간판이나 사인이 많았던 것도 이런 이야기가 배경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돌로미테 지역에서 'hexen'이나 'schlern'이 들어가면 마녀와 관련된 것이라 간주하면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항상 진리다.


쉴레른 산을 가장 가까이 바라볼 수 있는 레스토랑(Ristorante Bullaccia) 앞에는 자이언트 빗자루가 전시되어 있다. 성인 10여 명은 족히 앉을 수 있을 거 같은 길이다.

금방이라도 바로 건너편 쉴레른 산의 마녀들의 모임 장소로 날아갈 듯하다.

하기야 축구장 8,000여 개의 넓이를 자랑하는 거대한 초원을 누비고 다니려면 이 정도 빗자루는 타고 다녀야 하지 않을까 싶다.

Ristorante Bullaccia 전경(레스토랑 홈 페이지)

레스토랑 벽면에 장식해 놓은 그림을 보니 절로 고개가 끄떡여지며 이곳의 음식이 어떻다 하는 평보다 더 신나는 여행의 한 자락을 잡은 거 같아 보는 눈이 좋다.

빗자루를 탄 마녀가 마녀들의 집합 장소인 쉴레른 산을 배경으로 날아가는 모습.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레스토랑의 벽면을 장식한 쉴레른 산을 배경으로 한 마녀의 빗자루와 모자 로고(Puflatsch는 지역이름이다.)


돌로미테!

산을 타는 트래킹으로 거대한 풍광 앞에 입틀막을 했다면 다음엔 이야기 따라 가보는 돌로미테 트래킹은 어떨까.

아름다우면서도 초자연적인 지역의 삶에서 나왔을 것 같은 이야기들을 들으며 이야기의 실제 본산을 찾아가 보는 여행.

멋진 이곳을 다시 찾아야 하는 아주 흥미진진한 이유다.

신비스러운 쉴레른 산 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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