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Robert Lehman Collection'
'리먼(Lehman)?'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 우리에게는 아마도 '리먼 사태'가 아닐까 싶다.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를 촉발시키면서 파산한 금융그룹.
우리 기억에도 선명한 '리먼 브라더스'의 그 '리먼'말이다.
그런데 세계적 뮤지엄에서도 그 이름을 볼 수 있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이다.
'리먼'이란 이름으로 기부된 작품이라거나 '리먼'소유라는 설명이 붙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건물 하나에 그 이름이 붙었다.
'로버트 리먼 컬렉션(Robert Lehman Collection)'.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1층, 매년 12월 초면 멋진 크리스마스 츄리가 설치되는 중세 조각관(Medieval Sculpture Hall)을 지나 더 안쪽으로 들어간 곳에 위치한 'Robert Lehman Collection'.
뮤지엄을 처음 찾는 이들이라면 놓치기 쉬운 장소다.
그러나 절대로 그냥 지나쳐선 안 될 곳이기도 하다.
이 전시실만을 위한 뮤지엄의 가이드 투어가 운영되고 있으니 그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리먼 컬렉션'을 위해 특별히 지은 이 건물(간단히 '리먼 윙(wing)'이라 부른다.)은 지하 1층은 특별전을 위한 공간으로, 그리고 1층은 '리먼 컬렉션'만을 위한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리먼 컬렉션'은 미국 내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개인 컬렉션으로 뮤지엄 측이 컬렉션을 기증받기 위해 건물을 지었을 정도다.
이 컬렉션을 기증한 주인공 '로버트 리먼(Robert Lehman:1891~1969)'은 '리먼 브라더스'의 마지막 '리먼' 패밀리 CEO로 그의 아버지 대(1910년경)부터 60여 년간 예술작품들을 모았다고 한다.
아트 수집가로서도 상당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던 그는 오랜 기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보드 멤버로도 활동했으며 나중에는 의장까지 지냈다.
그의 컬렉션은 파리의 루브르와 오랑쥬리에서도 특별전을 열 정도로 다양하면서도 가치 있는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1969년, 그의 유언대로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3,000여 점에 달하는 자신의 소장품을 모두 기부하기로 하는 데 단 조건을 하나 걸었다.
자신의 컬렉션만 따로 전시할 수 있는 전시 공간을 요구한 것이다.
뮤지엄 측에서는 처음에는 뮤지엄 내의 일정 부분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하고 이 건물을 증축하여 그의 요구에 화답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리먼 컬렉션'은 1975년부터 대중에 공개되었다.
여기서 잠깐.
'리먼 윙'으로 가다 보면 빨간 벽돌과 5개의 라임스톤 아취로 장식된 벽을 지나가야 하는데 전체 분위기가 상당히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벽은 100여 년 전 지어진 센트럴파크를 바라보는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서쪽 외벽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Robert Lehman Collection'이라 부르는 곳은 그 후 증축이 된 공간임을 암암리에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백악관(White House)' 수십 개의 크기라는 이 방대한 뮤지엄이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란 건 쉽게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럼 언제부터?
이야기는 19세기말 센트럴파크가 건설되던 시절로 올라간다.
미국 최초의 인공 공원인 센트럴 파크는 두 조경 건축가 '칼버트 보(Calvert Vaux:1824-1895)'와 '프레데릭 로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1822–1903)'가 디자인하고 건설했다.
1880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은 '칼버트 보'와 또 한 명의 건축가 '제이콥 레이 몰드(Jacob Wrey Mould:1825-1886)'에 의해 현재의 자리에 지어졌는데 영국 건축가이며 미국에 빅토리아 양식을 소개한 '제이콥 레이 몰드'는 센트럴파크 안에 명소 '벨베데레 궁(Belvedere Castle)'을 비롯 많은 건물과 다리를 지은 건축가다.
당시 그들이 디자인한 100년이 넘은 뮤지엄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리먼 윙'이다.
이 고풍스럽고 독특한 옛 모습은 다른 공간에도 남아있는데 바로 여기다.
창밖으로는 이집트의 오벨리스크가 보이고 많은 조각상들이 진열되어 있는 'European Sculpture & Decorative Arts' 홀의 한쪽 벽.
역시 '칼버트 보'와 '제이콥 레이 몰드'의 작품이다.
이런 옛 자취들을 보면서 이 거대한 뮤지엄의 발전사를 짚어 보는 기분도 색다른 감흥을 준다.
그 뒤 여러 차례 증축에 증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
'리먼 컬렉션'의 전시실 내부는 일반 전시실과는 다른 분위기다.
이는 '로버트 리만'이 자신의 저택과 같은 분위기에 작품이 전시되길 원해서란다.
뉴욕의 '7 West 54th Street'에는 로버트 리먼 저택이 뉴욕시 보존 건물로 남아 있다.
벨벳 벽지, 커튼, 가구 및 러그는 리먼 저택의 실내 분위기를 최대한 재현하여 특별한 컬렉션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리먼 패밀리'와 같은 환경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전시실을 조성해 놓았다.
전시실 입구를 장식하는 철제문은 리먼 저택에서 가져온 것이고 스카이라이트 갤러리라 불리는 전시실에는 티파니가 디자인한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샹들리에가 시선을 잡는데 이 또한 리먼 저택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런가 하면 푹신한 소파에 앉아 렘브란트의 그림을 '리먼 패밀리'처럼 편안하게 감상할 수도 있다.
마치 리먼 저택을 그대로 옮겨 온 듯한 전시실.
이것이 기증자 '로버트 리만'이 자신의 컬렉션을 안전하게, 영구히 보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한 방법이었다.
20세기 초에는 '리먼'말고도 아트 컬렉션에 관심을 보인 재벌들이 많았는데 '금융재벌 JP모건', '사탕 산업 재벌 헨리 오스본 하베마이어(Henry Osborne Havemeyer:1847-1907)', 그리고 'The Flick Collection'의 '헨리 클레이 프릭( Henry Clay Frick :1849-1919)'등이 대표적 인물들이다.
메트로폴리탄 창립에 막강한 영향을 끼친 'JP모건'은 맨해튼에 'Morgan Library'를 남겼고 (*금융 재벌의 특별한 서재:https://brunch.co.kr/@cielbleu/289 참조), '헨리 오스본 하베마이어'는 에드가 드가와 친분이 두터웠던 인상파 여류 화가 '매리 카셋(Mary Cassett:1844-1926)'의 도움으로 미국에 알려져 있지 않던 인상파 그림을 소개하고 많이 수집한 재벌로 유명하다.
그는 2,000여 점에 달하는 자신의 컬렉션을 모두 메트로폴리탄에 기증했다.
메트로폴리탄의 인상파 작품들 중 많은 작품이 그의 기증 작품임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뮤지엄 곳곳에 전시되어 있는 그의 기증 작품들은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들로 가득하다.
'프릭 컬렉션'의 '헨리 클레이 프릭'은 아예 자신의 집을 뮤지엄으로 만들어 버린 '아트 후원자(Art Patron)'였다.
그의 집은 1935년부터 뮤지엄으로 대중에게 개방하였고 1,500여 점의 걸작들을 소장하고 있다.
뉴욕 '1 East 70th Street'에 있는 '프릭 컬렉션'은 4년여의 리모델링을 마치고 2025년 4월 17일 재개장을 준비 중으로 많은 애호가들이 기대하고 있다.
뛰어난 개인 소장 미술 컬렉션 중 하나로 뽑히는 '리먼 컬렉션'은 14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700여 년 동안의 서유럽 미술을 대표하는 3,000여 점의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한번에 전시가 어려워 '리먼 컬렉션'에서는 소장품을 순환하면서 전시하고 있다.
14,15세기의 플로렌스와 시에나 화파 작품들, 15,16세기 북부 유럽의 걸작들, 18,19세기 프랑스와 영국의 걸작등 '리먼 컬렉션'의 주요 전시 작품들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된다.
로 Robert Lehman Colle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