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데 하는 게 아닌 것, 그게 요가예요!
오늘 요가원에서 처음으로 아쉬탕가 마이솔 수련을 시작했다. 시퀀스도 제대로 외우지 못한 상태에서 앞 수련이 끝나길 기다리자니 긴장이 잔뜩 되었다. 옆에 앉아 계신 분이 매우 요가 고수의 느낌이 풍기길래 슬쩍 말을 걸어 보았다.
"저... 오늘 마이솔 처음인데, 혹시 뭐 준비해야 할 게 있을까요?"
그 선생님은 '아니요'로 이야길 시작하셨다. 매우 인자한 미소와 목소리, 그리고 그을린 피부가 참 매력적인 분이었다. 요가를 시작하신 지는 20년이 넘은 것 같고, 아쉬탕가는 아마 2018년부터 하셨다고 했던 것 같다. 현재 우리 요가원의 아쉬탕가 지도자 선생님을 만나 아쉬탕가를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는 요가 말라 이야기부터 코로나로 인한 타격과 지병의 악화로 인해 3년 간 요가지도와 수련을 아예 하지 못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시작하게 된 이야기까지. 인생 자체가 요가 그 자체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쉬탕가는 막대기도 할 수 있어요."
이 말에 난 웃으며 대답했다.
"전 막대기보다 더할 수도 있어서요."
"처음에 전 아쉬탕가를 하지 말아야 할 요가라고 생각했어요. 분명히 다칠 것 같았거든요."
난 매우 공감했다. 내가 아쉬탕가를 섣불리 시작하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그거였으니까. 난 오른쪽 손목과 왼쪽 천장관절에 고질병이 있지 않은가. 아쉬탕가를 가끔 수련하면 언제나 그랬듯 통증이 심해지지 않았던가. 아쉬탕가는 내 몸에 좋지 않은 요가인 것 같으니 난 하타와 아헹가 위주로만 수련할 거야.
이렇게 생각하며 3개월을 수련해 오다 언젠가 우연히 12시 아쉬탕가 마이솔 수련 현장을 목격했다. 수련원 전체를 꽉 채운 수련생들이 말없이 수련을 시작하고 집중하며 땀을 흠뻑 흘리는 모습을 보니, 저게 뭐길래 저렇게까지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길로 집에서 아쉬탕가 시퀀스를 프린트해 매트 앞에 두고 혼자 수련을 시작했다. 오히려 지도자의 큐잉에 맞추어 수련하는 것보다 마이솔 스타일로 수련을 하니 나에게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고, 자세와 호흡을 스스로 정렬해 나가는 것도 수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퀀스를 따라가는 여정, 즉 하나의 아사나로 몸을 준비시키고 또 다른 아사나를 맞이하는 그 과정이 참 흥미진진했다.
"그런데요, 해보니까 그렇지 않더라고요. 너무 열심히만 안 하면 돼요. 너무 열심히 하면 다칠 수 있거든요."
"하하하. 맞아요. 전 어차피 겁이 많아서 아마 다치진 않을 것 같아요."
"하는데 하는 게 아닌 거. 그게 요가예요!"
욕심내지 말란 이야기였다. 하고 있지만 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굳이 너무 애써서 하지 않아도, 지금 내가 하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참 마음수련이 아니고 무엇인가. 자신의 한계치를 인식하고 거기서 멈출 줄 아는 자세. 그러나 같은 아사나라도 다음번에 또, 그리고 그 다음번에 또 도전할 줄 아는 자세. 이렇게 해나가다 보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6단계를 모두 수련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