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내면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계선 Jan 29. 2016

글씨, 숨길수 없는 영혼

누구나 손끝에서 전해오는 숨길 수 없는 고유한 영혼의 흔적을 가진다.

어릴 적 펜글씨 교본을 썼던 적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가 싶은데, 글씨를 잘 쓰고 싶어 제법 집착 아닌 집착을 했다. 어린 마음으로 생각했을 때에 잘 쓰인 글씨를 보면 매번 따라 쓰기 위해 유심히 살펴보고 또 따라 쓰는 일을 의식적으로 많이 반복했다. 어른들에게 칭찬을 받기 시작하면서 더 많이 그렇게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때 담임선생님의 말씀은 "너무 어른처럼 쓰려고 하지 말거라."였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잘 썼다./ 못썼다."라고 대답을 해주신 반면 나의 펜글씨를 보시고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씀의 뜻을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부끄러웠다. 내가 누군가의 글씨를 따라 했다는 것을 선생님께서는 바로 알아보신 것 같았다. 무언가를 따라 해보는 일, 어린 시절에는 누구에게나 흔히 있는 현상이지만 누구에게도 내가 따라 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은 자존심 같은 것이 있다. 지금 뒤돌아 생각해보면 나는 어린 시절부터 조금은 '애어른'같은 성미가 있었던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그리고 얼른 어른이 되고 싶은, 정말 간절하게도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였는지도 모르겠다. 모습만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이 얼른 자라는 그런 어른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도 나는 내가 존경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의 글씨를  궁금해한 적이 많다. 어떤 필체는 내가 갖고 싶다고 생각했던적도 있다. 중학교 때에는 좋아하는 선생님의 칠판 글씨를 따라 썼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누군가의 글씨를 보면 조금은 그 사람의 성격이나 내면이  짐작될 때도 있다. 물론 이건 어떤  증명된 사실도 아니고, 누구에게 일반화하여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며 지극히 나의 입장에서 나의 언어로만 이해할 수 있는, 그러니까 그냥 나만 알 수 있는 부분이긴 하다. 그리하여 이런 이야기들을 글로 써놓아도, 쓰고 나서도 이 글이 누군가에게 이해될 수 있을지도 알 수가 없다. 게다가 그 짐작이 모두 다 맞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실 누군가에게 이야기 한들 별 의미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글씨, 필체라는 단어보다도 더 진한 느낌의 '육필(肉筆)'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무게감을 생각한다. 사람의 몸으로 할 수 있는 수많은 흔적 중에 가장 고유한 것이 필체가 아닐까 했다. 글씨가 글자 하나하나의 생김을 말한다면, 필체는 어떤 문장이나 문단 전체를 보고 판단하는 느낌이다.(사전적 의미를 거론하는 것이 아니다.) 똑같이 생긴 사람이 이 세상에 아무도 없듯이 똑같은 글씨를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서.(필사나 모사는 흡사한 것의 극대화이지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니므로.)


육필.

굳이 필체, 글씨, 이런 단어를 두고도 "육肉"을 붙여 진한 느낌을 자아낸다는 것은, 진실로 어떤 글을 통해 나의 글씨를 노출함으로써 생기는 고유함과도 관련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모든 글을 '쓰는'게 아니라 '치는(두드리는)'것이 되어 버렸지만, 육필의 고유함과 정성을 알고 있다. 특히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그 부분은 더 진하게 몸으로 체득하고 있으리라.


조선시대 임금 영조의 글씨 / 국립중앙박물관

영조의 글씨를 보면 무언가 화려하면서도 유려한 느낌이 있다. 위 글씨 옆에 해설에도 그리 써놓은 것을 읽었다. 또한 부드러운 획을 보면 붓의 힘 조절도 자연스럽고 거침없는 손놀림에 빠른 속도로 써 내려갔을 느낌이 든다. 글씨에 정성이 들어갔다기보다 멋을 살린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진달까. 물론 매우 '즉흥적인 멋'이다. 인위로 연출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영조의 성품도 그러했을까를 상상해보곤 하는데 노론 강경파들에게 둘러싸여(혹은 그들에게 빚이 있는 임금으로서) 가져야 할 처세의 실력마저 감돈다. 조선의 군왕은 다른 역사/나라의 왕들과는 다르게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제도적으로 잘 갖추어진 편이어서 왕 노릇이 쉽지 않았으므로.(왕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도 없었던 나라가 조선이었으므로.) 신하들에게 밀리지 않을 실력 있고 권위 있는 왕으로서의 모습이 중요했을 조선 후기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성군(聖君)으로 칭송받을만한 영조의 필체는 여러 면에서 사뭇 어울린달까. 물론 이 표현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나의 생각일 뿐이다. 영조에 대한 생각도 전적으로 어떤 역사가의 연구결과나 역사적 사실(fact)이라기보다 어쩌면 나의 관점에서 짐작한 것일 뿐이다.


조선시대 임금 정조의 글씨 / 국립중앙박물관

나는 사실 힘 있고 대담한 정조의 필체를 좋아한다. 정조라는 왕의 여러 업적을 알아보아도 성군(聖君) 임에는 분명하지만 그의 숨결을 직접 느껴볼 수 있는 건 역시나 필체이다. 할아버지였던 영조만큼 유려한 느낌이 들지는 않으나 필체에 어떤 의지가 담겨있는 듯 느껴진다.(정조의 업적이나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글씨를 보아서 더 그런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아들로서 반듯하고자 한 성격이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 그럼에도 자신의 내면에 귀기울이며 자유롭고자 했을까, 상상을 하게 되기도 한다. 멋을 알고 있되, 과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능력이나 멋을 숨기려는 듯한 느낌의 글씨체는 제법 공력이 엿보인다. 매사에 아마도 그러하지  않았을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아버지의 죽음을 보아왔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딛고도, 성군이 되어야만 했던 그는 아주 작은 삶의 문턱도 쉽게 넘길 수 없었으리라 생각하게 된다. 필체에서 영조의 그것도 약간 묻어나는 느낌이 드는건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할아버지인 영조의 입김에서 누구보다 자유롭고 싶었으나, 영조를 닮고도 싶지 않았을까, 그 선상에서 제법 균형 잡힌 줄다리기를 잘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나는 이런 것들을 역사책이 아닌 필체를 통해 느끼게 된다.



유치환 시인에게 쓴 작곡가 윤이상의 편지 / 경남 통영 청마문학관

청마 문학관에서 유치환에게 윤이상이 보낸 편지를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윤이상과 유치환이 친분관계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먼저 놀라게 되었고, 유치환의 글씨와 책 내용보다도 어쩌면 그때의 나는 윤이상의 글씨에 더 마음이 이끌렸던 것 같다. "음악가의 글씨체는 역시 다르다!" 라며 상투적으로 내뱉었지만, 자세히 보면서 작곡가 윤이상에게 주목해본다. 세로 쓰기로 쓰인 필체에는 줄이 비뚤어지지 않고 쓰인 모양을 보며 성품에 제법 강단이 있었을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이상과 높이를 알고 있었을 성품일지도 모르겠다. 재미있는 글씨라는 느낌도 들었고, 자유를 갈망하나 굶주려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수려하거나 멋진 글씨라기보다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는, 숨김없고 솔직한 느낌의 글씨가 아닐까 생각했다. 성품도 그러했으리라 근거 없는 짐작을 해본다.



시인 윤동주의 글씨 / 윤동주 문학관

문학관이나 여러 박물관 등을 다니며 사람들의 글씨체를 유심히 보아왔지만, 어느 누구의 글씨보다도 보호본능(!)을 불러오는 글씨가 아닐까 생각했다. 윤동주의 시는 대단하고 매우 많은 잘 알려진 시인이지만, 그 글씨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많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그의 글씨를 보면 그의 시가 다시 읽힌다.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시의 내용을 필체가 더 진하게 전해줄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강하게 보여주는 시인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의 글씨를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다. 글씨에서 슬픔이 묻어나는, 깊숙한 어느 곳에서부터 솟아오는 마알간 슬픔이 그의 영혼의 바닥을 이루지는 않았을까 생각해본 적도 있다. 조용하고 단아할 것 같은 성품, 모든 고뇌를 짊어지고 있는 그야말로 그의 시 '서시'를 그대로 닮은 필체가 아닐까 생각했다.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누르지도 못하고 안 누를 수도 없고 조심스럽게 써 내려간 것을 보며, 줄이 흐트러지지 않게 안간힘을 쓴 건 아닐까 상상하게 된다.



필체 속에 숨겨진 필자의 삶은 해독하지 못한 크레타섬의 상형문자들을 연상케 한다. 영영 봉인 해제되지 못할 무언가를. 그러나 비슷한 필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저 필체들을 해독할 수 있을까, 저들의 삶을 오롯이 이해하고 기억해줄 수 있을까, 하는 기대도 해보게 된다. 누구에게나 "육필"이 있다. 좋은 필체와 나쁜 필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누구나 손끝에서 전해오는 숨길 수 없는 고유한 영혼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나는 가족들과 친구들의 글씨체를 기억한다. 가끔 그들이 어느 가게에서 신용카드를 긁고 '서명'을 하거나, 어느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 '회원가입'을 위해 주소란을 쓸 때의 글씨체 마저도 대수롭지 않게 보일 때도 있다. 엄마의 글씨에는 세월이 묻어 있다. 모나미 볼펜으로 쓴 글이 십수 년이 지나 종이에 진하게 스며 필체가 굵어진 그런 느낌이다. 나는 그렇게 세월이 묻어나는, 줄 간격 글자 간격도 흐트러지지 않는 엄마의 글씨를 볼 때마다 뭉클해진다. 엄마의 영혼을 몰래 나만 알아보는 느낌이 들기 때문일까.


연하장도 편지도 쓰지 않는 시간들을 보내면서 숱하게 써서 보내고 받았던 시간들을 새삼 돌아보며, 요즘의 나는 도통 글씨로 무언가를 쓰는 일에 멀어져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아무것도 달라질 것 없는 하루들을 보내면서도 쌓아둔 시간들을 뒤돌아보면 다 바뀐 것만 같다."라고 써놓고 제법 오래 무어라 문장을 이어야 할지 몰랐던 시간의 공백이 있었다. 그 시간이 글씨에 묻어날 때도 있다. 그리고 이어 썼던 문장은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오래 생각해본들 꾸며진 문장은 그저 꾸며진 것일 뿐.

게다가 꽁꽁 언 손으로 눌러썼다한들 안 써 본 지 너무도 오래되어 그럴까, 마음에 들지 않는 글씨에 심란한 마음으로 그리고 어색한 마음으로 썼던 얼마 전의 편지 한 통. 무언가를 들켜버린 사람처럼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고 나서도 내내 노심초사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얼마전의 나는 어쩔 수 없는 이 정도일 뿐이었는데.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과 혁명에 관한 짧은 생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