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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Nov 12. 2017

잘츠부르크 페스티벌:비엔나 필과 말러 9번.

이번 여행의 동선動線은 이 공연 때문에 복잡해졌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공연을 빼고는, 이 여름에 잘츠부르크에 갈 이유가 없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런데 이 공연을 우리 여행 일정에 포함시키는 일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유럽에 도착하는 도시와 출국하는 도시마저 바뀌는 사태에까지 이르렀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과감하게 이 공연을 우리 여행에 포함시키고 조금 더 고생스럽고 수고스러운 일정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잘츠부르크는 그 모습 그대로 아름다운 도시이고 사랑스러운 도시이다. 잘츠부르크가 사랑스러운 이유는 차고 넘친다. 지명 그대로 '소금의 산'이 둘러싸고 있는 도시. 모차르트의 도시. 카라얀의 도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도시. 호엔 잘츠부르크 성과 잘자흐 강이 수려한 도시. 겨울에는 스키의 도시. 여러 가지로 잘츠부르크는 매력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비엔나 필하모닉의 공연을 보게 된다는 것은 내게 최고의 사랑스러움(!) 이겠다.


그러나 여름의 잘츠부르크는 조금 더 특별하다. 모든 유럽의 클래식 역량이 이 곳으로 집중되는 느낌이랄까. 우리나라의 대도시를 포함하여 전 세계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여름에 클래식 공연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잘츠부르크에서는 1920년부터 모차르트 출생을 기념하여 여름마다 클래식 페스티벌을 한다. 그리고 여기에 전 세계의 유명한 클래식 오케스트라와 연주자들이 많이 모인다. 그들의 연주를 보기 위해 전 세계의 클래식 애호가들과 유명인사들 까지도 이를 위한 여행을 준비하기도 하며, 마을의 주민들도 이 페스티벌을 즐기기 위해 연미복을 준비하고 이브닝드레스를 맞추기도 한다. 그야말로 페스티벌 기간의 잘츠부르크에서는 문화와 정통적인 클래식 공연 문화를 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된다.


오스트리아에 온 목적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클래식은.

클래식에 대해 많이 알지도 못하지만, 언제나 음악에 빚이 있다고 생각하는 내게 이런 기회는 정말이지 영광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언제나 깔끔하고 밸런스가 훌륭한 레코딩을 들려줬던 비엔나 필하모닉의 공연을 본다는 일은 내게 이루지 못할 꿈처럼 여겨왔다. 그래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익숙지 않은 언어와 홈페이지 분위기에서 공연을 헤매듯 찾아 예매하고 티켓을 수령하기까지, 나는 긴장했으며 실감이 나지 않았다.

2017 잘츠부르크페스티벌 비엔나 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공연 티켓

여행을 계획하며 급하게(?! 보통은 페스티벌 계획이 알려짐과 동시에 연초에 1차 예매를 한다.) 세운 계획이었기에 예매를 위해 홈페이지에 들어갔을 때에는 이미 오페라 공연이나 기타 유명한 공연들은 매진인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여행자인 우리에게 격식을 제대로 갖춘 오페라는 무리가 있고(또한 오페라를 그렇게 즐기는 편은 아니고) 평소에도 주로 오케스트라 공연을 접하던 편이었으므로 비엔나 필하모닉의 공연에 많지 않은 여유좌석 중에 두 좌석을 구할 수 있었다. 늦게 구한 터라 좋은 좌석은 놓쳤지만 말이다.


여행 일정뿐 아니라, 여행 가방도 조금 복잡해지기도 했는데 이 날 입을 원피스와 재킷, 구두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문화에 맞는 페스티벌 드레스 코드를 준비하는 것도 경험이고 여행이겠다. 여행자라 해서 무조건 간편한 복장만을 고집하기보다 경험을 한다면 적어도 그 나라에 맞는 예의는 필요하지 않겠나 싶었던 마음이 들었다. 적어도 슬리퍼에 반바지 차림은 부끄러울 수 있다는 관람 후기를 참고했다.


공연시간은 오전 11시. 우리는 새벽 일찍 비엔나에서 기차를 타고 잘츠부르크로 넘어왔다. 덕분에 아침의 잘츠부르크를 만날 수 있었는데, 자그마한 도시는 기품이 묻어나는 한적하고 조용한 분위기였다. 오전 9시에 잘츠부르크에 도착하여 간단하게 아침을 먹으려 기웃했다. 잘츠부르크와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잘츠부르크 "게트라이데 거리" 간판 모양이 아름답다.

게트라이데 거리를 기웃거리며 겨우 문을 연 식당에서 요기를 하고 스니커즈를 벗고 구두로 갈아신었다. 시간이 오전 10시가 좀 넘었을 때 우리는 걸어서 대축제장으로 이동했다.

페스티벌의 대축제장 앞 거리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고, 연미복이나 드레스로 한껏 멋을 낸 사람들도 있었다. 오전 시간이라 그런지 그래도 대부분은 간편한 원피스 복장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동양인들도 제법 많이 눈에 띄었다.(일본인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건 보관소에 신발 등이 든 짐을 맡기고 로비에서 분위기를 살폈다. 우리뿐만 아니라, 페스티벌이라는 사실이 실감 나게 모두 들뜬 표정이었고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았다. 와인을 한잔씩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이야기를 나누며 공연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나는 사진을 많이 찍지는 못했다. 제법 흥분된 분위기에서 공연에 대한 기대감과 새벽 일찍 나서 약간은 피로한 느낌이 동시에 몰려들어 그랬던 듯싶다.

대축제장 앞

공연장의 로비에는 카라얀의 두상이 놓여 있었다. 나는 카라얀의 연주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대단한 지휘자임에는 동의한다. 그에 대해서는 왈가왈부 말하고 싶어 하는 클래식 전문가들도 많이 있지만 말이다.


공연 프로그램은 단 한 곡이었다. 더 이상 다른 프로그램을 함께 붙일 수 없는 그 작곡가의 곡.

말러의 9번이었다. 지휘는 버나드 하이팅크. 지휘자가 누가 오더라도 비엔나는 비엔나 필만의 음악을 한다는 그 느낌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나이 든 지휘자의 묵직함을 한번 느껴보기에 좋을 듯했다.


말러는 사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작곡가이다. 일부러 안 듣고 있기도 했다. 아껴두고 있기를 벌써 7년이다. 마흔이 되면 들어야지 했다. 자꾸 듣다 보면 멜로디가 익숙해질지는 몰라도 왜 말러인지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런데, 이번 공연을 위해서라도 한 번은 들어봐야겠다 싶어 공연에 예매를 하고 여러 번 들었다. 처음 들었을 때에는,


"뭐 어쩌라는 거냐."라고 말해버렸다.


매우 서정적인 멜로디에서 불협화음으로 천연덕스럽게(!) 넘어가는 구성에 일단 너무 놀랬달까. 화음과 불협화음을 비롯하여 곡의 흐름이 너무 창조적(!)인 느낌이 들어 적응이 안되었다. 다시 한번 느낀다. 말러가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 앞에서 베토벤 9번 4악장을 관악 편성 편곡으로 연주할 만큼 기존 체제에 저항했던 작곡가(!)라는 것을.("베토벤 프리즈"와 관련한 글 - 제체시온(secession):새로운 시대를 위해.)


공연장 내부 연주 시작 전의 모습

비엔나 필의 연주는 말이 필요 없었다. 내 귀를 의심했다, 여러 번. 지역에서 시향 공연을 자주 접하는 나로서 다른 오케스트라를 접할 기회가 크게 없기도 하거니와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공연에 막귀인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다만, 나는 여기에서 또 하나의 온몸으로 담아간다고 말할 수밖에. 예상대로 공연에서는 앙코르도 없었다. 앙코르를 할 수 없는 레퍼토리이다. 여기에 뭘 더 갖다 붙이겠나 싶었다. 앙코르를 안 하는 게 맞지. 말러 뒤에 뭘 더 갖다 댈 수 있겠나.

연주가 끝나고 공연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기립하여 박수를 치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큰 전율을 느꼈다. 음악이 주는 위로와 감동을 말로 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객석에서의 인상적인 장면 하나는 내가 앉은 좌석 바로 앞에 미취학 아동으로 보이는 여자 어린이 한 명이 아버지로 보이는 보호자와 함께 온 것이었는데, 집중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끝까지 진지하게 음악을 듣는 모습이었다. 연주는 오케스트라가 하지만 연주의 완성은 객석의 분위기와 반응이 마무리지어준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축제장 근처의 모습. 공연을 마치고 나왔을 때.

연주회장을 나와서 우리의 일정은 잘츠부르크를 둘러보는 것이었으나, 사실 무얼 보았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들이 하루 종일 이어졌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다시 비엔나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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