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만나지 못한 산은 미래에서 나를 기다린다.
정상이라서 간다기보다, 눈이 덮인 설악산의 가장 꼭대기점엔 무엇이 있을까에 대해 궁금했다.
누구나 바라는 정상, 누구나 바라는 어떤 끝, 누구나 바라는 꼭짓점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심지어는 가본 사람들은 모두가 별 것이 없더라고 말하더라도. 내가 가보지 않고서 '별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수는 없어서, 그래도 정상에 오를까 생각을 했다. 그 별것 없음을 느껴보고 헛헛한 마음을 가져보는 것도 삶의 한 토막일까 상상을 하면서.
실은 벌써 올라봤던 대청봉이다. 그렇지만 겨울의 대청봉은 그때의 대청봉과는 다를 것이다. 산은 어디 가지 않지만, 어느 순간의 산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아직 만나지 못한 산은 미래에서 나를 기다린다.
소청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내려온 지 한 달이 되지 않았을 시점에 다시 대청봉으로 길을 잡았다. 빠르게 대청봉에 오르는 길은 오색약수터에서 시작하여 오르는 길. 그리고 원점으로 다시 회귀하기로 계획을 잡고 올랐다. 대청봉으로 오르는 최단거리이지만 다른 등산로에 비해 끝도 없는 가파른 오르막만 3시간 넘게 올라야 했다. 발이 느린 우리는 4시간여를 소요해 올라갔다. 눈에 보일만한 풍경도 없어 더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길이 길게만 느껴졌다. 말없는 한 걸음 한 걸음의 과정 후에 정상에 다다랐다. 눈이 덮인 정상은 다행히 큰 바람이 없었고, 시야는 맑았다. 깨끗한 공기가 평화로웠다.
꼭대기에는 너덧의 사람들이 정상석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숨을 몰아쉬고 다리의 힘을 풀며 그들을 바라본다. 멀리 속초바다를 조망하고 정상석 주위를 세심히 살핀다. 그 어느 높다란 봉우리도 우리가 선 곳보다 높지 않다. 정상석을 중심으로 모든 방향에 서서 본다. 탁 트인 느낌이다.
정상석 앞에서 찍는 셀카는 완전하지 못한 느낌이란 게 있다. 여기에서 남길 수 있는 사진은 이 순간뿐이다. 셀카로는 부족한 느낌이다. 그래서 정상석에서는 혼자 온 사람들도 누군가에게 사진을 부탁한다. 정상이란 그런 곳이다.
정상석 앞에서 사진을 찍다 보면 오는 길에 무엇을 보았는지 오는 길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 모든 것들이 아득해진다. 10분 전의 가파른 마지막 고비 위의 가시밭길 같던 마음을 감쪽같이 잃어버리는 마법도 있다. 정상은 그 모든 것들을 보상한다. 그렇게 충만한 자신감과 뿌듯함으로 산 허리를 감고 있는 구름 위에서 잠시 취한다. 그렇게 산 아래에 있었던 어떤 고통의 시간을 잊게 한다. 그래서 나는 누구나 스스로의 정상에 올라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고통과 그 후의 보상, 정직한 한 걸음으로 이룩해 내는 어떤 결실. 그 경험들이 일상을 아름답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스로가 정한 정상에 올라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삶을 버티는 힘의 두께가 같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설악산 대청봉 정상에 선 사람들은 각자 서로를 뿌듯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걸어준 반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의 밝은 모습도 보기가 좋았다. 낯선 이의 얼굴이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정상에서 만났기 때문이었다.
정상에서 얼마나 오래 머물 수 있을까. 제 아무리 여유 있는 산행을 한다고 하더라도 한 시간을 머무르기 어렵다. 정상은 내려가기 위한 출발점이다.
그런데 살면서 단 한 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그렇지만 정상에 오른 사람이 산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건 매우 이상할 일이다.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은 길어야 십분이다. 적게는 서너 시간, 많게는 다섯 시간 이상 소요해서 오르는 설악산 정상에서 말이다. 이 모든 것들을 해내었다는 성취감으로 이미 마음속의 축포는 터졌다. 축제가 끝나면 이 장을 정리하는 시간이 기다린다. 고요하고, 심심하게.
함께 걸었던 사람들의 목소리에는 피로가 묻어난다. 다리의 힘도 풀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가파른 돌길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 때로는 너무 빨리 축포를 터뜨렸다 싶을 만큼 앞으로의 길이 막막하다. 축포를 터뜨리는 시간이 길었다면 더욱 그렇다. 정상에서의 흥분이 가라앉으면 풍경은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하산하는 사람들은 풍경에 더 이상 환호하지는 않는다. 어릴 적 놀이터에서 흙장난하고 하루 종일 놀다 해 질 무렵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어 조용히 손 털고 일어나는 친구들을 생각했다. 동행했더라도 각자의 외로움이 하산의 발걸음에 묻어있다.
하산하는 길에는 자칫 다치기 쉽다. 대체로 등산길보다는 하산 길에 사고가 많다. 그래서 산행을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끝까지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등산은 정상이나 목표점까지 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야 한다. 목적은 안전하게 산 아래로 회귀하는 일이다. 등산을 자주 하는 사람들은 안다. 어둑해지는 시간에 하산 이후 벗어 놓은 등산화에 가장 완벽한 성취가 있다는 것을. 하산 후 둘러앉아 밥 한 술 뜨고 하산주를 마시는 땀으로 얼룩진 얼굴에 있다는 것을. 좋은 소설책의 완결된 이야기를 모두 이해했을 때에 오는 삶의 다른 국면 같은 시간에 있다는 것을. 고민 많고 복잡한 일상 속으로 무사히 다시 뛰어드는 일이 등산의 완결이다.
내려와야 하는데 왜 올라가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죽을 걸 알면서도 사는 것과 같고,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전하는 것과 같다고.
공룡능선을 타고난 뒤에 무너미 고개의 가파른 하산길에서, 대청봉을 오르고 난 뒤의 오색약수터로 내려오는 길 위에서, 봉정암까지 오른 뒤 내려와 백담사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나는 언젠가의 마지막 하산이 가장 아름답기를 바라게 되었다.
브런치북 <정상까지 1.1km>를 마칩니다.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