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초기 스타트업을 다닌다면 피봇팅을 경험할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초기 스타트업을 다닌다면 피봇팅(Pivoting)을 경험할 수도 있다. 피봇팅이란, 사업 모델의 성과가 부족하거나 시장의 변화, 기업의 상황에 따라 운영 중인 사업 또는 서비스, 브랜드의 방향을 바꾸는 것을 뜻한다. 우리 회사도 명확한 캐시카우를 찾지 못해 기존 플랫폼 서비스를 종료하고, 새로운 서비스로 피봇팅을 진행했다. 갑작스러운 결정에 한동안 회사는 혼돈의 카오스였다. 나와 비비는 서둘러 기존 서비스 운영을 마무리하고, CEO, CTO, 팀 리더분들은 새로운 서비스 구상으로 정신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사람들은 바로 자신의 업무가 사라진 팀원들이었다. 마케팅 팀은 기존 업무를 멈추고 서비스 종료 작업에 집중했지만, 콘텐츠를 제작하는 에디터나 콘텐츠 바이럴 담당, 디자이너 등은 일이 사라져 막막해했다. 점심시간에 한 동료가 말했다.
"출근하면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갑자기 일이 사라져 혼란스럽네요."
그 말을 들으며, 나 또한 같은 마음이었다.
다른 회사들은 피봇팅에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한 달을 넘기지 않았다. 대략적인 큰 틀이 만들어지기까지 거의 2주 정도 걸렸던 것 같다. 큰 틀이 완성되니 각 팀별로 분주해지기 시작했고, 나와 비비는 서비스 니즈를 파악하고, 운영 방향과 디테일한 기획을 위해 FGI (Focus Group Interview)를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포커스 그룹 인터뷰 (FGI)
FGI는 소규모 인원으로 진행하는 단체 인터뷰 형식이다. 짧은 시간에 여러 의견을 수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기획부터 진행, 데이터 정량화까지 모든 과정에서 신경 쓸 부분이 많다. 나와 비비 둘 다 처음 접해본 터라 개념 정의부터 자료 조사에 많은 시간을 쏟았었다. 인터뷰의 목적은 명확히 해야 하며, 논의할 주제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인터뷰 대상자를 선정하고 모집하는데 지원자가 많다면 한 그룹에 10명이 넘지 않도록 분배하고, 여러 번 단체 인터뷰를 진행하면 된다. 그리고 참가자들이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지 않도록 사전 질문지를 공유하고, 진행자는 질문을 하며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진행과 기록은 각각 한 명씩 담당하며, 수기로 기록을 하다 놓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녹음도 했다. 비비의 안정적인 진행으로 FGI를 무사히 마무리하고, 데이터를 정량화했다. 이 데이터는 서비스 기획부터 명확한 사업 모델의 방향성을 정하는데 좋은 기준이 되어주었다.
페르소나 설정
그다음 단계는 페르소나 설정이었다. Persona는 구체적인 고객을 타겟 함으로써 그들의 니즈에 맞는 브랜드 컨셉과 마케팅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보통 한두 명의 고객 페르소나를 만들지만, 우리는 도저히 2~3명의 페르소나로 한정할 수 없어서 집단 페르소나를 만들기로 했다. 집단 페르소나는 고객 페르소나와 다르게 타겟들을 그룹화하여 정의하는 방법인데 처음에 고생하며 만들었던 고객 페르소나의 공통점을 묶어 설정하면 어떨까 해서 시작했다.
다양성을 담고자 하는 새로운 서비스의 그룹 페르소나는 6가지로 정의했다. 기록가, Talkative, 탐험가, 활자 중독자, 디지털 인사이터, 라이프 드라이버. 이렇게 완성된 페르소나는 콘텐츠를 제작할 때, 프로모션 이벤트를 진행할 때, 굿즈를 제작할 때,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등 다양한 기준점이 되어주었다.
뉴스레터 기획
새로운 서비스가 완성되고, 나는 뉴스레터 채널을 맡게 되었다. 이 업무를 통해 처음으로 브랜딩이라는 것을 살짝 경험해 볼 수 있었다. 빈 페이지에 어떤 구성으로 레이아웃을 만들 것이며, 어떤 내용을 작성할 것인지 여러 가지 그림을 수도 없이 그려봤다.
서비스명이 빵 이름이었기에, 뉴스레터는 '빵집 메뉴판'이라는 컨셉으로 구성했다. 매주 업로드된 콘텐츠를 이주의 메뉴로 소개했고, 뉴스레터 헤더를 포함해 모든 디자인을 직접 제작했다.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메뉴판 디자인의 해더로 메뉴 이름은 콘텐츠 제목, 가격은 업로드 날짜로 설정했다. 뉴스레터 운영자는 제빵사, 구독자는 손님이라는 애칭을 부여해 컨셉을 확고히 했다.
커피챗
서비스를 론칭하고 14주가 흘렀다. 우리는 사용자 피드백을 얻기 위해 커피챗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서비스에 애정이 있는 사용자, 지금까지 인터뷰이로서 참여해 주셨던 분들을 대상으로 커피를 마시며 한두 시간 짧게 대화할 사람들을 모집해 일주일에 약 2~3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커피챗의 목적은 분명했다. 서비스 정의와 컨셉이 명확한지 확인하고, 기능적 불편 사항과 개선 아이디어를 수집하는 것. 커피챗은 시간과 인력이 많이 요구되지만, 사용자 의견을 토대로 UI/UX 개선이 빠르게 이루어졌고, 콘텐츠의 구성이나 방향성도 굳게 다잡을 수 있었다.
물론, 커피챗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가능하지만, 주니어 마케터라면 유저 의견을 직접 전달함으로써 실행력을 높일 수 있기에 커피챗을 실행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직접 겪은 경험상 내가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제안해도 우선순위에서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에 클릭 버튼이 없어서 다음으로 넘겨지는지 모르는 거 같아요. 화살표 같은 클릭 유도 버튼이 있었으면 웹사이트에 머무르는 시간이 더 증가하고, 유저들에게 우리 콘텐츠를 더 많이 노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유저의 의견을 가지고 전달했을 땐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특히 타 부서와 협업할 때라면 더더욱. ‘커피챗을 진행했을 때 결과 다수의 인터뷰이가 이 탭 부분에 다음 페이지가 있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세 번째 콘텐츠 조회수도 다소 낮았던 것 같아요. 만약 이 부분에 화살표 아이콘 버튼을 추가한다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는데요. 인터뷰이 분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습니다. 만약 가능하다면 이번 주 주 내로 작업을 시도해 보고, 다음 주 데이터랑 비교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피봇팅은 한 번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한 브랜드에서 여러 번 이루어질 수도 있다. 내가 애정하는 브랜드가 사라지는 것은 너무 아쉽지만, 마케터로서 피봇팅은 굉장하고 소중한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