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되면 추위를 피하고자 하는 목적 1번 , 한 해 동안 수고한 나를 위한 선물이라는 핑계 2번, 두 가지 이유를 대가면서 동남아 여행을 준비한다. 벌써 베트남은 네 번째 , 필리핀은 두 번째다.
올해 필리핀 여행은 조금 특별했다. 7박 8일을 오로지 보라카이에서만 보내기로 한 것. 대부분의 보라카이 여행후기들을 보면 3박 4일 일정이다. 크게 관광할 것이 화이트비치 밖에 없어서 일 것이다. 그곳에서 7박 8일이 너무 길지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
걱정은 무색하게도 하루하루가 가는 게 아깝다. 작년에 화이트비치와 숙소가 너무 멀어서 뚝뚝이를 타고 다니던 게 너무 후회스러워서 이번 숙소는 완전 화이트 비치 앞으로 잡았다.
첫 번째 숙소인 Nigi Nigi Noo Noos는 보라카이의 중심지 D몰과 가깝다는 것, 현지인의 감성을 듬뿍 느낄 수 있는 원두막 스타일이라는 것, 내가 좋아하는 초록초록이 여기저기 많다는 것 등등 여러모로 나를 기대하게 했던 숙소였다. 장차 12시간에 걸쳐서 비행기 타고 배 타고 또 차까지 타고 도착한지라 모두를 지쳐있었다. 정말 오랜 시간 끝에 도착한 숙소는... 아.. 너무 원두막스타일이다.. 드라이기도 없고 심지어는 인터폰도 없다. 천편일률적인 호텔 같지는 않다. 특이점에 높은 점수를 주겠다.
그런데 이 숙소의 비밀은 밤에서야 서서히 드러났다. 아침 3시부터 움직였던 우리는 하루 종일 너무 피곤했기에 잠을 청하러 숙소에 들어갔는데 이게 웬걸... 침대가 울린다. 소음이다. 니기니기 누누스는 애초에 숙소보다 라이브공연으로 더 유명했던 곳. 라이브 공연이 마치 내 숙소 옆 에서 하는 냥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관객의 호응도가 얼마나 있는지를 다 알만큼 모든 소리가 다 들린다. 꿍꿍꿍! 아무리 이어폰을 끼어보아도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사용해보아도 소용없다. 소리는 진동이라는 게 마구 느껴진다. 이 진동을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 따위가 막을 수 있으려나.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하루 종일 저기압이었던, 컨디션이 안 좋았던, 엄마 아빠가 걱정되어서 프런트로 달려가 방변경을 요청했으나 두 방 모두 바꿔줄 순 없단 대답이다. 그나마 방하나는 바꿔줄 수 있다고 하여 재빨리 확인하고 엄마아빠 짐을 옮겨드렸다. 다시 아무리 잠을 청해보려고 해도 이건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 도대체 언제 끝나냐는 나의 컴플레인에 너무나도 태평하게 12시면 끝나니까 기다리라는 대답뿐이다. 이건 말도 안되지않나. 어떻게 숙소를 여기에 지을 수가 있지. 완전 빵점이다 빵점!!
12시가 지나니 거짓말처럼 모든 음악이 조용해지고 나를 잘 수 있게 만드는 환경이 되었다. 내일은 기필코 12시까지 밖에서 놀리라. 내가 저얼대 그전에 이 방에 들어오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두 번째 날에는 전략을 바꾸었다. 일찍 잠든 아이는 그나마 조용한 엄마아빠 방에 맡기고 남편과 나는 비치에 늦게까지 연 옆호텔 바로 향한다. 들려오는 음악이 흥겹다. 12시에 마감한다고 하니 졸려도 끝까지 있어볼 셈이다. 오랜만에 둘이 갖는 시간이 좋기도 하고 분위기도 제법 좋은 밤이다. 12시가 넘어 슬금슬금 숙소로 향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한 잠자리가 날 기다리고 있다. 기가 막힌 선택이었음이 틀림없다.
이렇게 나의 태도를 바꾸기만 해도 밤의 풍경이 바뀐다. 최악의 숙소였는데 그래도 슬금슬금 점수를 올려볼까.라는 생각도 든다. 뭐 이쯤이면 괜찮잖아. 최고급 호텔도 좋지만 가끔씩 도마뱀도 나오는 감성. 서울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풍경 속에서 있는 모습. 필리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니라.
내점수는 70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