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서른다섯이면 인생 경주에서 물러나야 한다. 인생이 경주라면 말이다. 직장 일이라면 나는 신물이 났다." 외젠 이오네스코가 쓴 소설 <<외로운 남자>>는 이렇게 시작한다. 왜 하필 서른다섯인지는 알 수 없다. 어림해보건대 서른다섯이 되면 일상은 속박이 되고 삶은 부박해진다.
서른다섯 언저리에 증발해버린 남자 세 명의 이야기를 읽었다. 아베 고보의 소설 <<불타버린 지도>>다. ‘대연상사’ 판매촉진과장 네무로 하루는 서른네살에 사라진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자취를 감췄다. 충실하고 순종적인 자동판매기 같은 남자, ‘중력과 싸우며 내장을 담은 무거운 살주머니를 열심히 운반하던’ 직장인의 실종이다.
또 한 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네무로 하루와 비슷한 나이 또래로 추정되는 흥신소 직원이면서 소설 속 화자인 ‘나’다. ‘나’는 네무로 하루를 뒤쫓는다. 이 남자는 어쩌다 흥신소 직원이 됐을까. ‘나’의 부인은 ‘나’를 향해 비아냥거린다. ‘밀고 당기는 온갖 술수, 외줄타기 같은 긴장감, 구명대 빼앗기 같은 끝도 없는 경쟁’에서 도망쳐 흥신소 직원이 된 것이라고.
‘나’는 어떻게든 네무로를 찾아보려 하지만, 네무로의 부인은 심드렁하다. 남편을 찾아도 그만, 찾지 않아도 그만이라는 태도인데 실종 경위를 알려줄만한 단서를 속시원하게 말하지 않는다. ‘나’는 실마리가 될 것 같은 몇 장의 지도를 손에 얻지만, 그 지도는 무용하다. 추적은 벽에 부딪히고, ‘나’는 미궁에 빠진다. ‘나’는 심지어 폭행을 당해 기억을 잃는다. 종국엔 내가 누구인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실종자를 찾던 ‘나’가 실종된다.
세번째 실종자는 네무로의 부하 직원 다시로다. 다시로는 네무로가 사라질 때의 모습을 목격했다고 주장한다. 다시로는 네무로의 마지막을 ‘삶의 의욕이 솟구쳐오르는 발걸음’으로 기억한다. 삶의 유일한 지도를 불태워버리고 탈주하던 네무로를 동경하는 듯한 눈치다. 다시로는 아침의 만원 전철 속에서 절임처럼 꾹꾹 짓누르는 사람들이 알고보면 모두 낯선 타인이라는게 두렵다고 ‘나’에게 맥락없는 말을 늘어놓기도 한다. 다시로는 자살을 한다. ‘나’는 다시로의 자살에 대해 자기가 과연 생각하는 방식대로 존재하는지 증명해주는 건 타인인데 자기를 돌아봐주는 타인이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죽음의 이유를 헤아려본다.
소설 속 배경은 1967년 2월. 일본 경제는 성장하고, 일본 사회는 팽창하던 시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기에 일본에서 행방불명된 사람이 8만 명에 달한다. 소설 속에 그런 내용의 신문 기사가 등장한다. ‘인생 경주’에서 물러나는 유일한 방법은 이 사회의 불법 체류자가 되는 것 뿐이다. 8만 명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은 이런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다.
소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은 맥주병에서 맥주가 흘러나오는 장면이었다. 액체와 공기의 그 독특한 마찰음은 맥주가 쓸쓸하게 흐느끼는 듯한 소리라고 ‘나’는 묘사한다. 그러고보면, 그게 슬픈 소리였다.